그곳에 가면 왠지 모를 편안함이 있다. 교회 문을 열면 딱딱한 장의자가 아닌, 푹신한 소파가 놓여있다. 라스베가스제일침례교회 이야기다. 일반적인 규격화된 교회 이미지에서 한참 탈피해 있는 이 교회 담임 김종수 목사는 "아무래도 이민교회는 기존의 건물 형태보다 가정적인 분위기가 더 어필할 것 같아 집을 개조하는 형식을 선호했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김종수 목사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전에, 우선 그의 이력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
1984년 로스앤젤스한인침례교회 교육목사로 재직하다 그해 12월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라스베가스에 처음 발을 내딛고 제일침례교회를 개척했다. 이후 18년간 줄곧 이곳에서 사역하다 은퇴 연령이 다가옴에 따라, 사역의 한계를 느끼고 2002년 자진해 후임자를 찾아 세우고 노스캐롤라이나로 개척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10여년간 성공적으로 목회하다 재작년 10월 다시 라스베가스로 온 것.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어떤 연유로 그는 한 번 떠났던 라스베가스에 그가 다시 돌아오게 된 걸까. 사연을 들어보니, 이렇다.
그가 사임할 당시만 해도 성도수 130여명 규모의 왠만한 중대형교회(이곳에선 이만하면 대형교회에 속한다) 뺨칠 정도로 튼실함을 자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후임 목회자가 10년간 사역하면서 교세가 점점 약해져 급기야 2011년 여름 한국인 성도수 7명에다 미국인 남편까지 합해도 10명이 채 안 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됐다. 그래서 후임 목회자로부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사역하던 김 목사에게 교회를 맡아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고, 이에 그는 하나님께 뜻을 여쭤본 뒤 기도 응답을 받고 다시 돌아온 터였다.
마침 노스캐롤나이나에서 시무하던 교회도 잘 마무리하게 해 주셨고, 이에 더해 미주남침례회(SBC) 지방회 총무부장의 권유가 한몫 했다. "뭣보다 하나님께선 제가 여기 안 오면 안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어찌 됐건 그는 다시 라스베가스로 돌아왔다. 28년 전 처음 개척하던 심경으로 말이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도 더 변했을 세월이 흘렀건만, 그의 얼굴엔 왜이리 교회가 성장하지 않느냐는 불평 한 마디, 그늘 한 점 없다. 오히려 "미력하나마 이 '할아버지' 목사가 성도들을 섬길 수 있어 감사하다"고 연신 겸손을 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라스베가스에서 교회 개척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다들 선교지라고들 하던데.
제가 라스베가스를 떠날 때만 해도 한인교회가 전체 9개 밖에 없었는데, 10년 새 도시 전반적으로 붐이 일어나면서 한때 인구가 크게 급증해 교회수가 50개로 늘어났다. 이후 붐이 가라앉자 한인들은 이곳을 많이 떠났는데, 교회수는 그대로다. 그러니 교계에 잡음이 많을 수 밖에. 교회가 태동하는 동기가 순수한 개척보다는 내부 분열로 인한 개척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아울러 라스베가스교계가 어려운 것이, 전도도 물론 어렵지만 교회간 연합이나 교제가 타도시에 비해 각박한 편이다. 교계가 그다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협이나 목사회 모임에 가도, 모이는 몇 사람만 모이는 식이다.
- 연세가 일흔이고 이곳에선 제일 어르신이라 들었다.
2011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시무할 당시 그해를 끝으로 은퇴할 작정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여기 오는 바람에 사역의 연장선을 잇고 있다.
- 남침례회에는 은퇴 연령이 없지 않은가.
물론 없다. 하지만 목회자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제일 잘 알지 않은가. 욕심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도 붙들고 있는 건 하나님 앞에서나 교인들 앞에서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0년 전에 이 교회를 내려놓고 떠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교회가)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교회가 재정적인 여건이 안 돼 목회자를 모셔올 형편도 못 된다. 저는 은퇴 연금도 받고 개인적인 생활이 감당이 되니 교회가 빌드업 될 때까지 돕는 것이다.
- 아까 말씀하신 대로 라스베가스의 경우, 갈라져서 생겨난 교회가 많은 터라 흩어진 교인들이 다시 모이기까지 쉽지 않았을 거 같다.
맞다. 저뿐 아니라 라스베가스는 교인 하나 전도되기까지 참 어려운 지역이다. 대개 교인수 늘어났다고 하면 A라는 교회에서 교인 몇명이 그룹을 이뤄 쑥 빠져나간다. 목사님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기가 원하는 교회에 가는, 수평이동이 대부분이다. 순수하게 믿지 않는 이를 전도해서 교인이 느는 경우는 거의 없다.
- 라스베가스에서 터줏대감으로 오래 목회하셨는데, 보람된 일이 있었다면.
개인적으로 이 교회를 시무하면서 느끼는 게 있다. 우리 교회는 어려운 분들이 많이 오신다. 다른 교회의 경우, 장로님 같은 분들이 헌금해서 건축도 하고 그런데, 우린 그렇게 헌금 낼 분도 없었다. 심지어 연세가 팔십이 넘은 노인 한 분이, 헌금은 해야겠는데 수입이 없으니 쓰레기통을 뒤져 깡통 수십만개를 모으셨다. 그걸 팔아 받은 돈으로 정성스레 헌금을 내시고 그러셨다. 물론 액수로 따지면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의 정성과 희생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
1984년 이래 목회하면서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 봐 왔는데, 처음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점차 경제적인 면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안정돼 가고 영육간에 건강하게 믿음 생활 잘 하는 것을 볼 때가 가장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