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가 관광버스를 타고 변산반도에 놀러갔다. 오랜만에 신나게 놀고 오던 중이다. 젓갈이 유명한 곳이라 겸사해서 젓갈 직판장엘 들렸다. 같은 버스에 탔던 아줌마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한 통 두 통 샀다.

버스가 출발하던 찰나, 아줌마 한 분이 탔다. 그 때 앞에 있던 다른 아줌마가 엄청 큰소리로 소리 질렀다. “니, 젓통 챙겨 가~” 순간, 버스 안은 완전 뒤집어졌다.

그렇게 매력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한바탕 웃음을 던져주는 말이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중요하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고, 그 사람의 영적인 수준을 가늠하게 만든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은 아니다. 말 같아야 그게 진짜 말이다. 유익하지 않은 말,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 남을 속이고 해하는 악한 말은 나오면 나올수록 손해다. 자신도 손해고,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에도 손해다. 이런 말은 아끼고 침묵할수록 지혜롭다.

“막말은 관 속에서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막말을 함부로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강경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선박 검색을 강화하고, 금융 제재의 강도를 높이고, 북한 외교관에 대한 검색을 강화한다. 그러자 북한은 막말을 강경하게 퍼붓는다.

“미제가 핵무기를 휘두르면 우리는 지난날과는 완전히 달리 다종화된 우리 식의 정밀 핵 타격 수단으로 서울만이 아니라 워싱턴까지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북한은 서울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무서운 사람들의 무서운 말이다. 상대방의 입장과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식의 말을 서슴지 않고 퍼붓고 있다. 대책이 서지 않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막말이다.

“초등학교 나왔죠? 부인은 대학교 나왔다면서요?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
언뜻 듣기에도 상식 이하 수준의 말이다. 그런데 어느 현직 부장판사가 한 말이란다.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감정이 격앙되었다 하더라도, 재판 도중에 피고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이런 막말을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판사나 변호사라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신분이다. 존경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부담감을 갖는다는 말이다. 행동거지에 있어서나 말 한 마디에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사회적인 신분이 높더라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신분이 고귀하다는 것은 고결한 인품과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는 굴레를 씌워주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이들이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들을 많이 본다.

요즘 이단들이 득실거린다. 이단들이 하는 것을 보면 거짓과 사기로 얼룩져 있다. 도둑고양이나 생쥐처럼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고 교인들에게 가만히 파고든다. 아주 은밀하게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서서히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자신들은 바른 지식을 갖고 있지만, 기존 목사들은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해 교인들을 진흙탕으로 몰고 가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와서 성경을 바로 배워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짓을 보라. 성경을 들이대지만, 사실은 성경을 너무 엉터리로 왜곡시키고 있다. 늘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자기들 종파만 옳다고 말한다.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늘 신앙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만 찾아다닌다. 그것도 상처를 받은 사람들만. 야비하고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이 마치 성경에 나오는 거짓 교사와 똑같다.

교도소를 자기 집 안방처럼 들락날락하던 60세 남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90대 노인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남을 속이는 데 천부적인 재주를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능수능란한 거짓과 속임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다.

그는 90대 노인이라고 속이고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끼를 발휘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90대 노인이 놀라울 정도의 젊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인가? 경로당에서는 사람들에게 어른 대접을 받아왔다.

그는 실제 나이보다 무려 38세가 많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주민등록증에 나오는 그의 나이는 98세였다. 완벽하게 신분 세탁을 한 그는 매월 기초노령연금과 장수 수당을 받기도 했다.

작년에는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서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두 달 뒤에는 연말 결선에도 나갔다. 사회자는 그에게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이처럼 건강할 수 있는 비결이 도대체 뭐냐고 묻기조차 했다. 이후 그는 대담하게 90대 노인 행세를 하면서 TV 교양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기가 막히는 세상이다.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거짓말을 했다가 함께 비참한 개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바울은 성령으로 거듭난 에베소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부한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당당하게 남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은밀한 곳에서 뒷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남들을 비난하는 일들이 있다. 수시로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즐기는 자들이 있다. 그런데 아는가? 그는 보이지 않는 칼을 들고 세 사람을 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을 죽이고, 듣고 있는 사람을 죽인다. 급기야 자신도 살해하고 있다.

‘카더라’ 통신이 사람 잡는다. 직접 보고 듣지 않은 것은 말해서는 안 된다. 직접 보고 들었더라도, 속사정과 형편을 잘 모른다면 말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속사정을 다 안다고 할지라도 유익하지 않은 말이라면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함부로 하는 막말은 다른 사람을 찍는 도끼와 같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게 있다. 그 도끼는 결국 자기 자신을 찍는다는 사실이다. 말은 부메랑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칼이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보다 혀끝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내 혀끝으로 죽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모로코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 입술에서 나온 30초의 말이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는 30년의 상처와 아픔으로 남는다.

독수리가 제일 좋아하는 사냥감이 무엇인지 아는가? 두루미라고 한다. 조류학자들에 의하면 두루미는 잠시도 입을 쉬지 않고 떠든다고 한다. 날아가면서, 먹으면서도. 그래서 독수리에게 쉽게 노출된다. 결국 죽음이다.

사단이 노리는 자가 어떤 자인지 아는가? 함부로 말하는 자이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사단의 사냥감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사단의 수하에서 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사단이 노리는 사냥감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함부로 말하는 그리스도인.

말하고 나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기에 후회와 아픔을 남긴다. 그러나 지혜자는 생각하고 나서 말한다. 말하려면 그 말이 미칠 영향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버릇이야말로 영성 있는 그리스도인의 입이다.

내가 혀를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혀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다. 그렇기에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유익한 말, 덕스러운 말, 은혜로운 말을 골라서 해야 한다.

롱펠로우가 말했듯이 “내뱉는 말은 상대방의 가슴 속에 수십 년 동안 화살처럼 꽂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말하진 않는다. 무심코 던지는 말일지 몰라도,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어떤 목적을 갖고 말하는가? 남을 해하기 위해 하는 교묘한 말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공동체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렇기에 예수 믿는 당신은 함부로 막말을 하지 말고, 골라서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