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외각지대 베어 마운틴(Bear Mountain)에 있는 한 산장에서 3박 4일 영성회복 수련회를 수년전에 참석하여 은혜를 많이 받은 기억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매 식사 시간이 되면 색다른 모형으로 식탁이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마치 무지개 속에서 식사를 하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고 식사 시간이 되면 식사를 준비하는 운영위원들이 나와서 재미난 꽁트의 보따리를 풀어 영성훈련을 하는 학생들의 피로를 웃움으로 풀어주는 시간이었다. 많은 웃움꽃 중에 하나는 어느 분이 나와서 시편 23편에 나오는 “쉴만한 물가”를 경상도와 평양 그리고 전라도 버전으로 암송을 하는데 배꼽잡고 웃은일이 있었다.

경상도 버전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사 답답할끼 없데이..시--퍼런 풀구디이로 낼 디미시고 쉴만한 또랑가로 끄잡아 댕긴데이, 내 정신 챙기사 올께 살아라 카심은 다 지 체면 때문이라 카네, 내 죽을 뻔한 꼴짜구디 껌껌한데서도 간띠이가 부-가 댕길 수 있슴은, 그 빽이 참말로 여간 아닌기라 주의 몸디이-와 짝대기가 낼로 지키시고, 내 라이벌인 죽일 놈 문디이 자슥 앞에서 낼로 팔팔 키워주시니, 내 인생이 아무리 복잡다 캐싸도 저 양반이 천날 만날 지키줄끼니까, 내사 우짜든가 그 옆에 딱 붙어각꼬 죽어도 안떠날끼다.”

경상도가 아닌 사람이 이것을 듣는다면 온전히 다 이해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사투리의 정감이 모든 사람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에 충분하였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웃음으로 몰고가는데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을 웃게 하기 위한 유머 이었지만 그것을 듣을면서 식사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그 속에서 느낀 것은 쉴만한 물가란 편안함 속에서 만족을 얻는 하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개 밥그릇에다 마실물과 밥을 놓고 가는데도 어떤 때는 주인이 올 때까지 밥 그릇에 그대로 놓여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되어 주인 식구들이 집에 돌아와 있거나 식사를 하면 개들도 자신의 밥그릇으로 가서 주인이 식사를 하는 것처럼 개들도 식사를 한다. 식사를 한 후 마음이 편하면 편하게 누워 있고 주인이 자신의 몸을 만져주면 너무나 반가워 하며 꼬리를 흔들고 아예 드러누워 한 없이 기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주인이 있어 마음이 편안하고 주인의 곁에 있으면 행복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가 이렇게 하는 것처럼 푸른초장에서 풀을 뜯어 먹는 양들도 들녁에서 편안하게 누워 있을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아무때나 눕는 것이 아니라 눕기에 필요한 몇가지 충족의 조건이 주워져야 한다. 첫째는 사나운 짐승의 세력으로 부터 벗어나 두려움을 가지지 아니하는 것이다. 둘째는 양들이 자신들의 서열 다툼을 하는데 인도하는 목자가 있으면 서로간의 싸움을 멈추고 마음에 평화를 찾게 된다. 셋째는 양들이 파리나 기생충으로 부터 괴로움을 받지 아니하는 상태 이어야 한다. 마지막은 배부르게 푸른초장에 있는 풀을 먹고나면 들판에 편히 드러누워 되새김질하면서 마음에 행복의 순간을 갖게 된다.

가정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는 양이나 마음의 평안과 행복한 만족을 누리는 핵심은 두려움감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그 속에는 주인이 자신들에게 존재하느냐 하지 아니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목자와 주인만이 그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필요 충족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세계 속에서도 쉴만한 물가의 삶을 살기 위해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인정하고 그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로 이땅에 오신 메시야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신선한 꼴을 양껏 먹게하시며 쉴만한 물가로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들이 주인으로부터 들판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함을 받고 이동을 하는데 이동하는 곳마다 푸른초장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이다.

때로 푸른 초장을 찾기 위해서는 민둥산을 지나가야 하기도 하고 생각지 아니하는 사나운 짐승들로 부터 공격을 받기도 할 뿐 아니라 가시가 많고 험난한 계곡과 절벽들을 만나는 어려움과 고난의 상황들도 접하게 된다. 이것을 보면 푸른 초장이 있는 언덕에 거하기 위해서는 험난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인간들의 삶도 마음의 평안이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과 그렇다고 힘든 계절의 아픔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고통의 터널이 지나면 반드시 평안과 행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그 이유는 우리의 목자로 오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누리도록 도우시기 때문이다.

나의 목자되신 여호와는 그들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하실 뿐 아니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돌보신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것은 시편23:4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역설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을 떠나 자기 길을 가다가는 더 깊은 수렁과 골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의 길을 간다는 것은 주님의 도움없이 살아가려는 인간의 교만이며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기에 사망의 늪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사는 사회가 경쟁이 심하다고 할지라도 과도한 일의 중압감에 시달려 일벌레로 한 세상을 다 소진해 버린다면 정말로 삶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 버리게 될 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대한 목적의식을 갖기 못하기에 마음에 행복을 갖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고자 하신 의도하심은 인간의 “영혼을 소생시키기 위함”이며 “의로운 자로 만들기 위한”것으로 그분의 목적하심을 아는 사람이라면 쉴만한 물가의 길이 무엇인지를 이해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주안에 거하며 자족하는 삶을 통해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것이다. 삶에 필요한 것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아니하여도 만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목자되신 여호와가 내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안에서 마음의 참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성령충만한 삶이라 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때로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때로는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성령 충만하여 주님으로 부터 그 문제를 해결 받고 그분의 도움을 통해 축복을 누리고 사는 것이다. 쉴만한 물가는 곧 주님의 전에 거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주님을 통해 평안과 행복을 가지는 삶이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전화)425-773-9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