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부터 노안(老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약병을 들고 복용법을 읽어보려는데 글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히고 팔을 멀리 뻗어 약병을 최대한 눈에서 멀리 띄우고 읽어보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아내가 깜짝 놀라며 왜 그러느냐고 했습니다. 혹시 노안이 시작된 거냐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시력이 좋았던 저는(2.0이었던 적도 있음) 몹시 당황했습니다.

인간의 노화현상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 눈이며, 노안은 42-45세 사이에 시작됩니다. 의학적으로는 안구 안쪽에 있는 모양체근의 탄력이 떨어져서 수정체를 조절해주지 못해 가까이 있는 물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원시(遠視)와는 다른 질병이지만,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현상은 비슷합니다.

벌써 5년이 지났는데 저는 아직도 돋보기 안경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무실에 하나 구비해 놓았고, 예배를 인도하러 올라갈 때도 가지고 가기는 하는데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얼굴이 크다보니 안경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안경 쓰는 걸 싫어합니다. 같은 이유로 운전 중이나 야외활동 때에 선글라스도 착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아마도 제게 시작된 노화(老化) 현상을 인정하기 싫은 심리적인 이유가 더 클 것입니다. 내 삶의 한계들이 보이는 걸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이지요.

그런데 왜 노안이 오면 가까운 것을 보지 못하고 멀리 있는 것을 보게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인생을 좀 더 멀리서 보고, 객관적이고 폭넓게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젊어서는 자기중심적이고 근시안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다보니 큰 그림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한 발짝 떨어져서 큰 그림을 보게 되는가 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육체의 눈은 노안이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내면에서는 근시안적이고 주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거겠죠?

노안으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이 생겼지만 오히려 내 안의 한계들을 인정하면서 인생을 좀 더 멀리, 객관적으로,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경륜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