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시인 T.S. 엘리오트는 말하였지만 금년 4월의 자연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보고 느끼고 감상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해가 거듭할 수록 더 경이롭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되어 그 아름다움이 어두움이란 베일에 가리워지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만발한 꽃들, 그 이름을 일일이 알지 못하기에 들꽃이라 부르기가 미안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주어진 환경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본연의 모습을 봅니다. 꽃들은 피기 전에 많은 세월을 기다리고 인내하다 주어진 짧은 시간 피었다가 때가 되어 떨어집니다.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꽃은 지면서까지 미소를 잃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시드는 꽃도 사랑하고 낙하한 꽃도 다시 보아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꽃들이 한 계절만 동시에 피었다가 지게 하신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꽃들의 피고 지는 시기를 정하셔서 꽃이 사시사철 존재하게 하심이 놀랍습니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여름 그리고 늦은 가을에서야 피는 꽃 또는 추운 겨울에 피는 꽃들을 생각하며 저의 막내 딸아이가 때 늦게 필 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저의 막내아이가 저에게 학교에서 금년 졸업생 중에 자기가 제 일인자로 뽑혔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아이들 모두가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고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에 의아스러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중학교 3학년 때도 뽑혔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저의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분명히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아이가 가장 부끄러움을 잘 타는 아이로 투표에 의하여 단연 1위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친구는 눈이 가장 예쁜 아이라든지 또는 머리스타일이 가장 좋다든지 등 다른 여러 가지로 졸업생들 중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는 부끄러움을 가장 잘 타는 일인자가 되기 싫은데 중학교 졸업 때에 이어서 또 다시 뽑힌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초등학교 때 8주 코스 수영 레슨을 받는데 그 기간 내내 몸만 물에 담그고 수영장 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아이입니다. 무엇이든 새로운 도전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입니다. 지금 고등학교 졸업반의 나이면 운전도 벌써 하고도 남았을 터인데 지금도 운전 연습하자고 하면 이리 저리 핑계를 댑니다. 그런 아이를 억지로 연습을 시키고 있는데 워낙 겁이 많으니까 배움이 마냥 느리기만 합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 아이의 꿈은 CCM가수가 되는 것입니다. 아니 부끄러움의 제 일인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입이 작아서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지만 소리도 작습니다. 그러나 한 번 정하면 포기하지 않는 성격을 알기에 발성법을 배우고 싶어해서 전문 선생님께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제가 오히려 선생님을 위로합니다. 이 아이는 배우는 속도가 느리니까 선생님께서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해 주시라고.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이 아이는 저보다 훨씬 낫다고.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이런 가엾은 부모가 있을까 하는 어정쩡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별 진전이 없는 것을 그 누구보다 제가 먼저 느끼며 지도교습을 그만 둘까 하다가도 이대로 중지하면 아이에게 상처로 남아 그 어떤 것에도 자신감을 갖지 못할까 하여 저 역시 인내합니다. '농부가 쟁기를 지고 어디로 가나. 논 아니면 밭이지.’라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부끄럼 많고 배움이 느리기만 한 것이 저 아니면 저의 남편을 닮은 것인데 아이를 탓하는 것이 우스광스러운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처럼 아이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주니어 칼리지에 갔다가 편입하라고 합의를 보았습니다. 자기 자신도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는 실력이 미달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음대를 가서 음악을 전공하는 것이 정말 자신이 오래도록 추구하고 싶은 분야인지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첫째, 둘째 아이를 양육시키면서 저의 주장과 생각대로 아이들을 인도할 수 없음을 철저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제 자신이 얼마나 너그럽고 여유로워 졌는지 제 스스로도 놀랍습니다. 저의 생의 일거 수 일 투족을 감찰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저의 집념과 집착. 욕심의 신발과 조바심의 신발을 벗었기 때문입니다. (수5: 15)

다만 거룩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들꽃도 아름답게 입히시어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의 막내 딸에게도 아직 들어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히셨음을 믿습니다. 봄에 피지 않고 늦게 피는 꽃처럼 때가 되면 아이를 통하여 들어나지 않은 주님의 형상이 표출되어 하나님께 영광되고 이웃에게 기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며 자신에게도 정직한 삶 살기를 기대하며……꽃씨 하나 가슴에 품습니다.


꽃씨

꾹꾹 눌러 담은 그리움 터져
몽우리로 나왔지요
기다려주지 않아도

천둥 번개 비 바람 견뎌내며
환하게 웃었지요
바라보아주지 않아도

살 갗 한 겹씩 저미어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떠났지요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작년 이 맘 때도
묻어 두었던 불씨

또 다시
남깁니다
당신 곁에

정현/ 가슴에 품은 꽃씨/ 크리스찬라이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