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나님의 원대하신 섭리를 따라 한국기독교기도원총연합회와 세계기독교기도원연합총회가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가 되게 하심을 축하드리며 이 땅의 모든 기도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관심과 기대를 보이심에 대해 더욱 감사드리는 바이다.
본문의 내용에서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심으로(5~6절) 무자하였고 브닌나는 해산하여 득의 한 듯 한나를 몹시 괴롭혔다. 그래서 한나는 울며 먹지도 않고 슬퍼할 때마다 남편 엘가나가 그를 사랑하여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더 낫지 아니하냐(8절)”하며 위로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엘리 제사장이 있는 실로에 갔을 때 한나는 괴로운 심정으로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여종을 불쌍히 여기사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고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늙은 제사장 엘리가 한나의 모습을 보고 오해하여 술주정 떨지 말라고 책망한 것에서 비로소 목양지간의 상담이 시작된다. 이로써 한나의 괴롭고 서러운 사정을 알게 된 엘리는 한나를 위하여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최고의 영권 지도자 사무엘을 낳게 하셨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자랐고 마지막 사사이면서 이스라엘의 왕정정치를 시작하게 하는 선지자로서 70여 년 간 영권통치의 지대한 공을 남겼다. 이와 같이 실로의 기도원이 한나의 죽은 신앙을 산 믿음으로, 불행했던 한나를 행복의 주인공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군 사무엘을 낳아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가 되게 하는 위대한 역할을 한 것같이 오늘날 한국의 모든 기도원들도 이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이 세워져 있으나 믿음이 기대에 미흡하여 쓰임받을 기회가 늦어지거나 놓치고 있지 않은지 각자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영적 위기
과거 일제는 착취와 유린에 더해 교회를 없애려고 갖은 만행을 일삼고 교회당에 불 지르고 신도를 총살시켰다. 당시 많은 순교자도 있었지만 그때 한국 교회의 신앙은 풀뿌리 믿음으로 강직했다. 옥중성도들이 잔악한 고문과 행패를 믿음과 기도로 이겨냈으며 오늘의 부흥은 과거 순교자들의 피를 밑거름으로 피어난 향기로운 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제 부흥에 편승한 한국 교회는 교회의 본질마저 희석 내지, 변질시켜 가는 중 어느덧 신앙은 생활과 상관없이 신자, 불신자를 구별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실상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요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도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도리어 자기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예수님께 갖가지 기대와 부담만 더 지우려는 모습들이 아닌가?
입으로는 너도 나도 성령을 받았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떠들며 자랑하지만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중심으로 섬기려는 충성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롬8:16~17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셨다.
세속적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이나 직분을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성령님에 이끌려 우리 주님 앞에 서게 될 그 때의 입장을 위해서라도 내게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도록 힘쓰고 전도와 봉사로 충성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나라 확장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육적 욕구를 절제하고 영적 승리자가 되어 영적 혼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이단의 선동에 의한 구원 교리의 혼란
1970년대는 한국 교회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양적 부흥에 열중하며 개교회주의로 예배당을 더 크게, 더 고급으로, 더 잘 세우기 경쟁은 교회 안팎을 막론하고 비판의 소리와 지탄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질적 신앙지도가 소홀했고 영적 소망의 정통한 진리복음의 교리적 신조를 바로 깨닫지 못한 육적 기복 신앙이나 비성경적 신비주의의 기대 심리에 들뜬 사람들은 이단들의 감언이설에 미혹되어 교회를 떠나는가 하면 어처구니 없는 엉터리 주장에도 심취하여 열정적으로 추종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그 책임을 통감하며 용서를 빌고 있다.
교회 부흥의 이면에는 사탄의 무리들이 이단 사설로 선동하고 자칭 재림주가 속출하는가 하면 엉터리 휴거설로 시한부 종말론이 정통 교회에 치명타를 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서둘러 교회나 기도원은 진리 정통하고 성령 충만하여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로서의 본분을 감당해야할 것이다.
요 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으니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가 되시며 영생의 양식이 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심을 확실히 믿게 하여 하늘 소망의 영광을 바라보고 은혜 분위기 조성을 힘써 그리스도의 나라 확장에 합심 전력하노라면 이단 사설이 침투하지 못할 것이다. 성령이 충만하여 영적 소망의 신령한 기쁨이 넘치고 감사와 찬송이 뜨거워지며 힘있는 영적 생활이 땅 위에서 미리 누리는 하늘 복이 아니겠는가? 말씀에 붙잡히고 성령에 이끌리는 믿어지는 믿음이야말로 하늘로 통하는 구원의 지름길이요 영적 승리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직통계시에 의한 영적 혼란의 시정
산업화 시대로의 진전에 따른 경제 부흥이 물질문명의 이기를 누리게 했고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물질기대심리가 급속히 고조되고 있다.
인간의 물욕은 한이 없어서 가지면 더 갖고 싶어하는 속물근성이 신앙마저 변질시켜 심지어 교회의 중직을 맡은 분 중에도 자기 욕심을 앞세워 무속인(점쟁이)을 찾아 거금을 주고 점을 보는가 하면 또 예언 잘한다는 기도원이나 가정제단을 찾아 복채와 같은 거금을 아낌없이 주면서 길흉성패를 물어봐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또는 저렇게 말씀하셨다”면서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엉터리 예언에 영계가 극도로 혼란해 가고 있다.
이같이 혹세무민하는 거짓 속임수의 예언들에 의해 설상가상 격인 피해와 심지어 가산 전몰의 수탈로 가정이 파괴되는 불행도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곧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무서운 죄악일 것이며 음흉한 이속 기대를 위한 사기극임을 본인의 양심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렘 23:25~26에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30절 이하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를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가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으니 직통계시를 주장하며 마치 자기만 하나님과 잘 통하는 것처럼 거짓 예언을 일삼는 데는 필히 노리는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있어 왔기에 언제부터인가 기도원에 대한 불안과 피해의식이 결국 기도원에 대한 기피현상을 빚어 온 것이 사실이다. 어떤 기도원에서는 헌금을 잘 나오게 하는 전문 상사를 자주 세워서 여러 모양으로 힘들고 지쳐 하나님과의 담판을 목적하고 찾아온 신도들에게 주머니를 털게 하는가 하면 자기 차 구입대금을 하나님의 지시라면서 거짓예언으로 순진한 신도에게 월부금을 물리게 하는 웃지 못할 사기극도 있다니 이같은 행패가 곧 기도원 무용론을 재촉함이 아닐까!
오늘 기도원협의회 두 단체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하나가 되게 하심은 모든 기도원들에게 각성 분발하여 올바른 경영을 위한 일대 혁신을 촉구하심이다. 정통한 진리의 말씀만 전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오로지 주님만을 위한 주님의 기도원으로 거듭나자. 신도들로 신앙을 바르게 하여 치유와 회복과 결의, 응답을 통하여 개인과 가정과 사업이 힘을 얻어 자기 목자의 목회 방침에 깊은 이해와 적극적인 협력 봉사를 통하여 교회 부흥에 앞장서게 하면 모든 교회의 목자들이 자기 양떼를 이끌고 수시로 그 기도원을 찾아들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기도원이 바른 신학과 신앙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며 거짓된 사기 수단의 직통계시 운운하는 속임수 행패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위하여 세워진 기도원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기도원이 될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경영하실 터인즉 아무리 규모가 작고 또는 영세성에 의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차제에 더욱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기도원으로 사용되어지도록 개혁되면 형통케 하시는 주님의 무한하신 가능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믿음이 모자라거나 방법이 잘못된 인위적 인본주의 수단이나 방법으로는 그 기도원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마치 한탕주의로 끝내겠다는 식의 주머니털기같은 횡포는 서둘러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실로의 기도원 역할과 같이 개인 신앙 바로세우기 운동과 교회본질 회복을 위한 역할과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로 하는 요긴한 기도원의 역할이 실현될 때 비로소 전국 교회와 기도원과의 상생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며 바른 역할을 힘쓰는 기도원들을 주님께서도 한국 교회 부흥의 불쏘시개로 사용하실 것이다.
본문의 내용에서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심으로(5~6절) 무자하였고 브닌나는 해산하여 득의 한 듯 한나를 몹시 괴롭혔다. 그래서 한나는 울며 먹지도 않고 슬퍼할 때마다 남편 엘가나가 그를 사랑하여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더 낫지 아니하냐(8절)”하며 위로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엘리 제사장이 있는 실로에 갔을 때 한나는 괴로운 심정으로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여종을 불쌍히 여기사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고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늙은 제사장 엘리가 한나의 모습을 보고 오해하여 술주정 떨지 말라고 책망한 것에서 비로소 목양지간의 상담이 시작된다. 이로써 한나의 괴롭고 서러운 사정을 알게 된 엘리는 한나를 위하여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최고의 영권 지도자 사무엘을 낳게 하셨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자랐고 마지막 사사이면서 이스라엘의 왕정정치를 시작하게 하는 선지자로서 70여 년 간 영권통치의 지대한 공을 남겼다. 이와 같이 실로의 기도원이 한나의 죽은 신앙을 산 믿음으로, 불행했던 한나를 행복의 주인공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역군 사무엘을 낳아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가 되게 하는 위대한 역할을 한 것같이 오늘날 한국의 모든 기도원들도 이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의 엄청난 계획이 세워져 있으나 믿음이 기대에 미흡하여 쓰임받을 기회가 늦어지거나 놓치고 있지 않은지 각자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영적 위기
과거 일제는 착취와 유린에 더해 교회를 없애려고 갖은 만행을 일삼고 교회당에 불 지르고 신도를 총살시켰다. 당시 많은 순교자도 있었지만 그때 한국 교회의 신앙은 풀뿌리 믿음으로 강직했다. 옥중성도들이 잔악한 고문과 행패를 믿음과 기도로 이겨냈으며 오늘의 부흥은 과거 순교자들의 피를 밑거름으로 피어난 향기로운 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제 부흥에 편승한 한국 교회는 교회의 본질마저 희석 내지, 변질시켜 가는 중 어느덧 신앙은 생활과 상관없이 신자, 불신자를 구별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실상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요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도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도리어 자기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예수님께 갖가지 기대와 부담만 더 지우려는 모습들이 아닌가?
입으로는 너도 나도 성령을 받았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떠들며 자랑하지만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중심으로 섬기려는 충성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롬8:16~17에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셨다.
세속적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이나 직분을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성령님에 이끌려 우리 주님 앞에 서게 될 그 때의 입장을 위해서라도 내게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도록 힘쓰고 전도와 봉사로 충성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나라 확장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육적 욕구를 절제하고 영적 승리자가 되어 영적 혼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이단의 선동에 의한 구원 교리의 혼란
1970년대는 한국 교회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양적 부흥에 열중하며 개교회주의로 예배당을 더 크게, 더 고급으로, 더 잘 세우기 경쟁은 교회 안팎을 막론하고 비판의 소리와 지탄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질적 신앙지도가 소홀했고 영적 소망의 정통한 진리복음의 교리적 신조를 바로 깨닫지 못한 육적 기복 신앙이나 비성경적 신비주의의 기대 심리에 들뜬 사람들은 이단들의 감언이설에 미혹되어 교회를 떠나는가 하면 어처구니 없는 엉터리 주장에도 심취하여 열정적으로 추종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그 책임을 통감하며 용서를 빌고 있다.
교회 부흥의 이면에는 사탄의 무리들이 이단 사설로 선동하고 자칭 재림주가 속출하는가 하면 엉터리 휴거설로 시한부 종말론이 정통 교회에 치명타를 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서둘러 교회나 기도원은 진리 정통하고 성령 충만하여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로서의 본분을 감당해야할 것이다.
요 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으니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가 되시며 영생의 양식이 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심을 확실히 믿게 하여 하늘 소망의 영광을 바라보고 은혜 분위기 조성을 힘써 그리스도의 나라 확장에 합심 전력하노라면 이단 사설이 침투하지 못할 것이다. 성령이 충만하여 영적 소망의 신령한 기쁨이 넘치고 감사와 찬송이 뜨거워지며 힘있는 영적 생활이 땅 위에서 미리 누리는 하늘 복이 아니겠는가? 말씀에 붙잡히고 성령에 이끌리는 믿어지는 믿음이야말로 하늘로 통하는 구원의 지름길이요 영적 승리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직통계시에 의한 영적 혼란의 시정
산업화 시대로의 진전에 따른 경제 부흥이 물질문명의 이기를 누리게 했고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물질기대심리가 급속히 고조되고 있다.
인간의 물욕은 한이 없어서 가지면 더 갖고 싶어하는 속물근성이 신앙마저 변질시켜 심지어 교회의 중직을 맡은 분 중에도 자기 욕심을 앞세워 무속인(점쟁이)을 찾아 거금을 주고 점을 보는가 하면 또 예언 잘한다는 기도원이나 가정제단을 찾아 복채와 같은 거금을 아낌없이 주면서 길흉성패를 물어봐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또는 저렇게 말씀하셨다”면서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엉터리 예언에 영계가 극도로 혼란해 가고 있다.
이같이 혹세무민하는 거짓 속임수의 예언들에 의해 설상가상 격인 피해와 심지어 가산 전몰의 수탈로 가정이 파괴되는 불행도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곧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무서운 죄악일 것이며 음흉한 이속 기대를 위한 사기극임을 본인의 양심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렘 23:25~26에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30절 이하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를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가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으니 직통계시를 주장하며 마치 자기만 하나님과 잘 통하는 것처럼 거짓 예언을 일삼는 데는 필히 노리는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있어 왔기에 언제부터인가 기도원에 대한 불안과 피해의식이 결국 기도원에 대한 기피현상을 빚어 온 것이 사실이다. 어떤 기도원에서는 헌금을 잘 나오게 하는 전문 상사를 자주 세워서 여러 모양으로 힘들고 지쳐 하나님과의 담판을 목적하고 찾아온 신도들에게 주머니를 털게 하는가 하면 자기 차 구입대금을 하나님의 지시라면서 거짓예언으로 순진한 신도에게 월부금을 물리게 하는 웃지 못할 사기극도 있다니 이같은 행패가 곧 기도원 무용론을 재촉함이 아닐까!
오늘 기도원협의회 두 단체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하나가 되게 하심은 모든 기도원들에게 각성 분발하여 올바른 경영을 위한 일대 혁신을 촉구하심이다. 정통한 진리의 말씀만 전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오로지 주님만을 위한 주님의 기도원으로 거듭나자. 신도들로 신앙을 바르게 하여 치유와 회복과 결의, 응답을 통하여 개인과 가정과 사업이 힘을 얻어 자기 목자의 목회 방침에 깊은 이해와 적극적인 협력 봉사를 통하여 교회 부흥에 앞장서게 하면 모든 교회의 목자들이 자기 양떼를 이끌고 수시로 그 기도원을 찾아들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기도원이 바른 신학과 신앙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며 거짓된 사기 수단의 직통계시 운운하는 속임수 행패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위하여 세워진 기도원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기도원이 될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경영하실 터인즉 아무리 규모가 작고 또는 영세성에 의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차제에 더욱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기도원으로 사용되어지도록 개혁되면 형통케 하시는 주님의 무한하신 가능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믿음이 모자라거나 방법이 잘못된 인위적 인본주의 수단이나 방법으로는 그 기도원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마치 한탕주의로 끝내겠다는 식의 주머니털기같은 횡포는 서둘러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실로의 기도원 역할과 같이 개인 신앙 바로세우기 운동과 교회본질 회복을 위한 역할과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로 하는 요긴한 기도원의 역할이 실현될 때 비로소 전국 교회와 기도원과의 상생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며 바른 역할을 힘쓰는 기도원들을 주님께서도 한국 교회 부흥의 불쏘시개로 사용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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