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토스장로교회에 부임한 지 6년 6개월만에 6개월의 안식년을 보내고 돌아온 김한요 목사를 만났다. 지난 15일 그의 목양실에서다. ‘남가주에서 가장 잘 나가는 1.5세 목회자’, ‘탁월한 설교가’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 그는, 안식 기간 중에 터진 언론들의 두 차례 청빙 보도로 인해 본의 아니게 곤욕을 치뤘다.
“(청빙 관련 기사가 보도됐을 당시) 제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안 믿더라구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장로교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말이에요. 본인(청빙 대상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공동의회를 열고 노회를 통해 통보가 왔어요. 물론 우리 노회에서도 다 놀랬죠. 미국교회에선 상상도 못하는 일인데….”
“제가 여기(세리토스장로교회) 비전을 내려놓고 다른 교회에 간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나요? 덕분에 신문에 나서 유명해졌죠. 다행히 금방 잊혀져서 감사해요. 누가 그러는데, 지금도 제가 뉴욕에 있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데요.(웃음)”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고 코네티컷 하트포드장로교회에서 10년간 목회한 김 목사는 2005년 9월 황보연준 목사 후임으로 세리토스장로교회 담임으로 취임해 교인수 2배 이상의 규모로 부흥시켰다. 그는 구속사적인 설교에 남다른 열정이 있으며, 소그룹 사역으로 건강한 교회상을 이루는 비전을 지니고 있다. 개혁주의 신앙의 관점에서 ‘갈등’과 ‘본질’이라는 명제를 놓고 해마다 열띤 토론을 펼쳐온 ‘열린말씀컨퍼런스’의 주강사이기도 하다.
지난 10월말 ‘소통’이란 주제로 열린 제8회 열린말씀 컨퍼런스에서 그는 ‘소통의 관점에서 본 복음적 원리’에 대해 발제했다.
김 목사는 인터뷰에서 “소통의 관점에서 1세와 2세대간 거리를 좁히는 해법은 뭐냐”는 질문에 “설교자 입장에서 ‘소통’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런데 언어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라고 운을 뗏다. 그러면서 “대체로 영어를 잘 구사하면 영어권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신뢰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며 “1세와 2세 목회자간 상호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리토스장로교회는 지난해 11월 2세 영어권 회중(헤럴드 김 목사)이 부흥함에 따라 EM을 하나의 독립 교회로 세웠다. 이로 인해 한 캠퍼스 내에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구분된 두 교회가 모이는 형태를 띠게 된 것. 영어권 교회의 이름은 Christ Central of Southern California, 줄여서 CCSC다.
전에는 ‘한어권 교회(KM)의 부서로서 존재하는 2세 사역’에 그쳤지만, 이제는 2세들이 자율적으로 자체 예산을 편성하고 당회와 제직회를 운영하는 차원으로 비약한 셈이다. 그간 1세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독립한 EM, 즉 CCSC는 5년 전 120여명에서 현재 5백여명으로 4배 이상 교인이 늘어나는 눈부신 성장을 경험했다. 그리고 최근엔 세리토스장로교회가 CCSC에 교회 본당을 넘겨줬다. 남가주 한인교회 역사상 첫 사례다.
이민교회의 중요한 과제인 2세 사역을 위해 많은 1세 목회자들이 2세들을 보듬어 안고 영적 부흥에 대한 갈급함을 지녀 왔지만, 정작 현실은 어떠한가. 1세들의 경직성으로 인해 ‘소리없는 탈출’이 가시화 되면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메아리만 반복돼 온 것이 사실이다.
1세 목회자들은 2세 목회자들과의 문화와 사고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기도 했고, 2세들을 향한 공감대의 다리를 놓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심지어 1세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갖는 갈등과 어려움으로 2세 사역자가 목회지를 떠나는 현상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KM이 EM에 본당을 내어준 모습은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는 평가다.
김 목사가 안식 기간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맨 먼저 한 일이 ‘공간’에 대한 의논이었다. “지난 3-4년간 우리 캠퍼스가 과포화상태를 경험해 왔어요. EM은 친교실이 없어 서서 환영하더라고요. 뙤약볕에 텐트 하나 친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자꾸 부흥하니….” 그간 주일 정오에 세리토스장로교회 본당에서 예배를 드려온 CCSC는 계속되는 성장으로 한 번의 예배로는 모든 교인을 수용하기 어려워 예배를 한 번 더 드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공간이 부족한 건 KM도 매한가지. 주일마다 주차공간이 부족해 그냥 돌아가는 교인들이 늘어만 갔다.
이런 찰나에 대안을 놓고 궁리하다 김 목사의 제안으로 KM은 인근 놀웍에 위치한 고등학교 강당 ‘미러클센터’로 예배 장소를 옮기고, 기존 본당을 CCSC가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서로 ‘윈-윈(win-win)’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한 성도는 “KM도 장소가 좁아 고민하던 중”이었다며 “‘김한요 목사님이 굳이 다른 곳으로 갈 것 없이 우리가 양보하자’고 제안해 성사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엔 무엇보다 ‘KM과 EM이 한 지붕 두 교회로 존재하더라도 교회학교는 하나로 섬긴다’는 비전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EM이 만약 밖으로 나가게 되면, 틀림없이 밖에 나가서 드리는 예배가 더 중심이 될 것이라 봐요. EM이 떨어지게 되면 자기네 교회학교가 있어야 하고, 우리 KM도 어린 자녀들이 있으니 교회학교가 필요하거든요. 1-2년 그렇게 가다보면 불편하니까 교회학교를 하나로 통합 운영하는 게 어려워질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죠.”
당초 두 교회는 보다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한 교회학교’를 지향하며 서로가 의존하는 ‘패밀리’ 컨셉을 지향하기로 했다. 비록 지금은 교회학교 중에서 유아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서는 KM이 맡고 있지만, EM이 성장해 감에 따라 10-20년 뒤에는 EM이 교회학교 전체를 운영해 나가는 로드맵이다. 35년의 역사를 지닌 세리토스장로교회는 KM의 자녀들이 EM의 첫 구성원이 됐고, 이제 두 교회의 자녀들은 한 교회학교 내에서 함께 어우러져 신앙을 배워나간다.
“우리 자녀죠. 독립했다고 해서 남남이 아니듯 말이에요.”
이들은 실제 가족관계이면서 동시에 ‘영적 가족’ 관계이기도 하다. 한편, KM 성도들은 그간 자체 예배당을 아무런 제약없이 사용하다 외부 시설을 빌려 써 보니 아무래도 내 집 같지 않을 터. 한 성도는 “왜 우리가 집 놔두고 사글세 든 마냥 불편을 겪어야 하냐”며 볼멘 소리를 한다. 새로 빌린 건물 측에서 “내부 출입시 물을 반입해선 안 된다”는 룰을 적용한 것. 이에 “강대상에 물도 못 가지고 가냐”고 항의하자 “그것만 허락해 주겠다”고 통보해 왔다.
김 목사는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감사하죠. 불편하면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뭔가를 하시겠구나 싶어요. 다행히 아직까지 우리 성도님들이 잘 인내해 주고 계세요. 좀 불편해도 여기서 CCSC가 1천명 넘어갈 것을 기대해요. CCSC가 건강하게 성장해 주는 게 보답이구요.”
KM은 지난 4일부터 새로 찾은 예배 장소인 ‘미러클 센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10여년 전 은혜한인교회가 사용하던 장소이기도 한 ‘미러클 센터’는 좌석수 1800석을 보유하고 있어 한 번에 1500여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김 목사는 “종전 4백명 수용가능한 본당에서 예배를 다섯 번 나눠 드리다 세 번으로 줄이게 돼 편해졌다”고 말했다. 주차 가능 대수는 600대. “공간은 널널한데 들어오고 나가는 데만 30-40분 걸려요. 한 예배에 1천명이 왔는데 예전엔 한 번도 그런 다이내믹한 예배를 준비해 본 적이 없었어요. 1천 명이 동시에 움직이니 주차장에서 트래픽 잼이 되는 상황을 전에는 미처 상상도 못했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트래픽 잼을 해결할까’ 하는 또 하나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죠.”
CCSC는 기존 본당에서 오전 10시와 정오 예배를 두 번 드리게 됐다. “(EM은) 너무 좋아하죠. 그렇지, 저거 볼려고 했지. 감사한 일이죠.” 헤럴드 김 목사는 본당을 내어준다는 소식에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고.
일각에선 KM이 본당을 EM에 내준 건 1.5세 김한요 목사와 2세 헤럴드 김 목사와의 두터운 신뢰관계가 한몫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목사는 본인 스스로는 1세에 보다 가깝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2세 사역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남다르다.
“제가 신학생 시절부터 사역을 시작했는데, 당시 2세 사역이라고 하면 다 대학생들이었어요. 대학 캠퍼스였으니. 그간 2세 사역을 해 오면서 제 나름대로 발견한 원리는 2세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KM과 EM 담당 사역자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거에요.”
동부에서 김한요 목사가 10년간 함께 사역했던 2세 사역자들이 헤럴드 김 목사의 친구들이기도 하다.
헤럴드 김 목사의 한국명은 김형윤. 2000년 고든콘웰신학교 M.Div. 과정을 졸업하고, 프린스톤신학교에서 Th.M.을 수료했으며, 동부 워싱턴중앙장로교회에서 EM 목사로 사역하는 동안 이원상 목사로부터 멘토링을 받으며 목회 경험을 쌓았다. 남가주로 이동함에 따라 교단 소속이 종전 PCA에서 세리토스장로교회가 속한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로 바뀐 헤럴드 김 목사는, 현재 교단 내 영어노회를 조직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김한요 목사는 헤럴드 김 목사에 대해 “말씀 사역이 탁월하고, 겸손할 뿐 아니라 관계성에 있어 훌륭한 사역자”라고 치켜 세운다. “목양실 문을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나서 보면, 헤럴드 목사에요. 일주일에 꼭 한두 번씩 찾아와 소파에 앉아 30분씩 대화하고 가고 그랬죠. 물론 사역자 미팅에서도 만나지만, 그런 걸 잘 하더라구요. 그러니 더욱 정이 갈 수 밖에요. 서로 얘기하면서 ‘뭘 도와주면 좋겠냐’고 묻기도 하고 이런 저런 대화를 통해 (사역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가는 거죠. 2세 사역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데엔 별다른 비법이 있었다기보다 그저 서로 믿고 좋아하니 가능했던 거 같아요.”
이렇듯 목회자간 서로 오랫동안 신뢰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게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로 드러난 것. 두 교회 목회자 뿐 아니라 당회간 소통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CCSC는 독립 이후 지난해 3명의 장로가 세워졌고, 이들과 KM의 3명의 장로들이 함께 모여 교회의 비전을 논하는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름하여 ‘미래발전위원회’다. 한 캠퍼스를 공유하니 시간 배정과 행사 스케쥴 등을 조율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만나 소통한다.
“교인간의 소통은 그럼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김 목사는 “예배를 통한 세대간의 연합”을 꼽았다. 매주 토요일 새벽예배를 통해 세대간의 갈등을 막고 성령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맛보며 소통함으로 참된 ‘소통’을 경험한다.
이 예배에는 1세와 2세를 넘어 주일학교까지 더해 그야말로 3세대가 연결되는 자리다. 이 예배의 특징은 각 세대가 돌아가면서 호스팅한다는 것. 경우에 따라 초등부가 전체 예배를 주관하기도 한다.
끝으로 그는 “1세들의 밑거름 위에 2, 3세들이 우뚝 서서 교계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성경적 영향력을 미치는 주역들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청빙 관련 기사가 보도됐을 당시) 제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안 믿더라구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장로교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걸 말이에요. 본인(청빙 대상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공동의회를 열고 노회를 통해 통보가 왔어요. 물론 우리 노회에서도 다 놀랬죠. 미국교회에선 상상도 못하는 일인데….”
“제가 여기(세리토스장로교회) 비전을 내려놓고 다른 교회에 간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나요? 덕분에 신문에 나서 유명해졌죠. 다행히 금방 잊혀져서 감사해요. 누가 그러는데, 지금도 제가 뉴욕에 있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데요.(웃음)”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고 코네티컷 하트포드장로교회에서 10년간 목회한 김 목사는 2005년 9월 황보연준 목사 후임으로 세리토스장로교회 담임으로 취임해 교인수 2배 이상의 규모로 부흥시켰다. 그는 구속사적인 설교에 남다른 열정이 있으며, 소그룹 사역으로 건강한 교회상을 이루는 비전을 지니고 있다. 개혁주의 신앙의 관점에서 ‘갈등’과 ‘본질’이라는 명제를 놓고 해마다 열띤 토론을 펼쳐온 ‘열린말씀컨퍼런스’의 주강사이기도 하다.
지난 10월말 ‘소통’이란 주제로 열린 제8회 열린말씀 컨퍼런스에서 그는 ‘소통의 관점에서 본 복음적 원리’에 대해 발제했다.
김 목사는 인터뷰에서 “소통의 관점에서 1세와 2세대간 거리를 좁히는 해법은 뭐냐”는 질문에 “설교자 입장에서 ‘소통’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런데 언어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라고 운을 뗏다. 그러면서 “대체로 영어를 잘 구사하면 영어권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신뢰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며 “1세와 2세 목회자간 상호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리토스장로교회는 지난해 11월 2세 영어권 회중(헤럴드 김 목사)이 부흥함에 따라 EM을 하나의 독립 교회로 세웠다. 이로 인해 한 캠퍼스 내에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구분된 두 교회가 모이는 형태를 띠게 된 것. 영어권 교회의 이름은 Christ Central of Southern California, 줄여서 CCSC다.
전에는 ‘한어권 교회(KM)의 부서로서 존재하는 2세 사역’에 그쳤지만, 이제는 2세들이 자율적으로 자체 예산을 편성하고 당회와 제직회를 운영하는 차원으로 비약한 셈이다. 그간 1세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독립한 EM, 즉 CCSC는 5년 전 120여명에서 현재 5백여명으로 4배 이상 교인이 늘어나는 눈부신 성장을 경험했다. 그리고 최근엔 세리토스장로교회가 CCSC에 교회 본당을 넘겨줬다. 남가주 한인교회 역사상 첫 사례다.
이민교회의 중요한 과제인 2세 사역을 위해 많은 1세 목회자들이 2세들을 보듬어 안고 영적 부흥에 대한 갈급함을 지녀 왔지만, 정작 현실은 어떠한가. 1세들의 경직성으로 인해 ‘소리없는 탈출’이 가시화 되면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메아리만 반복돼 온 것이 사실이다.
1세 목회자들은 2세 목회자들과의 문화와 사고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기도 했고, 2세들을 향한 공감대의 다리를 놓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심지어 1세 목회자와의 관계에서 갖는 갈등과 어려움으로 2세 사역자가 목회지를 떠나는 현상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KM이 EM에 본당을 내어준 모습은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는 평가다.
김 목사가 안식 기간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맨 먼저 한 일이 ‘공간’에 대한 의논이었다. “지난 3-4년간 우리 캠퍼스가 과포화상태를 경험해 왔어요. EM은 친교실이 없어 서서 환영하더라고요. 뙤약볕에 텐트 하나 친 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자꾸 부흥하니….” 그간 주일 정오에 세리토스장로교회 본당에서 예배를 드려온 CCSC는 계속되는 성장으로 한 번의 예배로는 모든 교인을 수용하기 어려워 예배를 한 번 더 드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공간이 부족한 건 KM도 매한가지. 주일마다 주차공간이 부족해 그냥 돌아가는 교인들이 늘어만 갔다.
이런 찰나에 대안을 놓고 궁리하다 김 목사의 제안으로 KM은 인근 놀웍에 위치한 고등학교 강당 ‘미러클센터’로 예배 장소를 옮기고, 기존 본당을 CCSC가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서로 ‘윈-윈(win-win)’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한 성도는 “KM도 장소가 좁아 고민하던 중”이었다며 “‘김한요 목사님이 굳이 다른 곳으로 갈 것 없이 우리가 양보하자’고 제안해 성사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엔 무엇보다 ‘KM과 EM이 한 지붕 두 교회로 존재하더라도 교회학교는 하나로 섬긴다’는 비전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EM이 만약 밖으로 나가게 되면, 틀림없이 밖에 나가서 드리는 예배가 더 중심이 될 것이라 봐요. EM이 떨어지게 되면 자기네 교회학교가 있어야 하고, 우리 KM도 어린 자녀들이 있으니 교회학교가 필요하거든요. 1-2년 그렇게 가다보면 불편하니까 교회학교를 하나로 통합 운영하는 게 어려워질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죠.”
당초 두 교회는 보다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한 교회학교’를 지향하며 서로가 의존하는 ‘패밀리’ 컨셉을 지향하기로 했다. 비록 지금은 교회학교 중에서 유아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서는 KM이 맡고 있지만, EM이 성장해 감에 따라 10-20년 뒤에는 EM이 교회학교 전체를 운영해 나가는 로드맵이다. 35년의 역사를 지닌 세리토스장로교회는 KM의 자녀들이 EM의 첫 구성원이 됐고, 이제 두 교회의 자녀들은 한 교회학교 내에서 함께 어우러져 신앙을 배워나간다.
“우리 자녀죠. 독립했다고 해서 남남이 아니듯 말이에요.”
이들은 실제 가족관계이면서 동시에 ‘영적 가족’ 관계이기도 하다. 한편, KM 성도들은 그간 자체 예배당을 아무런 제약없이 사용하다 외부 시설을 빌려 써 보니 아무래도 내 집 같지 않을 터. 한 성도는 “왜 우리가 집 놔두고 사글세 든 마냥 불편을 겪어야 하냐”며 볼멘 소리를 한다. 새로 빌린 건물 측에서 “내부 출입시 물을 반입해선 안 된다”는 룰을 적용한 것. 이에 “강대상에 물도 못 가지고 가냐”고 항의하자 “그것만 허락해 주겠다”고 통보해 왔다.
김 목사는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감사하죠. 불편하면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뭔가를 하시겠구나 싶어요. 다행히 아직까지 우리 성도님들이 잘 인내해 주고 계세요. 좀 불편해도 여기서 CCSC가 1천명 넘어갈 것을 기대해요. CCSC가 건강하게 성장해 주는 게 보답이구요.”
KM은 지난 4일부터 새로 찾은 예배 장소인 ‘미러클 센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10여년 전 은혜한인교회가 사용하던 장소이기도 한 ‘미러클 센터’는 좌석수 1800석을 보유하고 있어 한 번에 1500여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김 목사는 “종전 4백명 수용가능한 본당에서 예배를 다섯 번 나눠 드리다 세 번으로 줄이게 돼 편해졌다”고 말했다. 주차 가능 대수는 600대. “공간은 널널한데 들어오고 나가는 데만 30-40분 걸려요. 한 예배에 1천명이 왔는데 예전엔 한 번도 그런 다이내믹한 예배를 준비해 본 적이 없었어요. 1천 명이 동시에 움직이니 주차장에서 트래픽 잼이 되는 상황을 전에는 미처 상상도 못했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트래픽 잼을 해결할까’ 하는 또 하나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죠.”
CCSC는 기존 본당에서 오전 10시와 정오 예배를 두 번 드리게 됐다. “(EM은) 너무 좋아하죠. 그렇지, 저거 볼려고 했지. 감사한 일이죠.” 헤럴드 김 목사는 본당을 내어준다는 소식에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고.
일각에선 KM이 본당을 EM에 내준 건 1.5세 김한요 목사와 2세 헤럴드 김 목사와의 두터운 신뢰관계가 한몫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목사는 본인 스스로는 1세에 보다 가깝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2세 사역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남다르다.
“제가 신학생 시절부터 사역을 시작했는데, 당시 2세 사역이라고 하면 다 대학생들이었어요. 대학 캠퍼스였으니. 그간 2세 사역을 해 오면서 제 나름대로 발견한 원리는 2세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KM과 EM 담당 사역자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거에요.”
동부에서 김한요 목사가 10년간 함께 사역했던 2세 사역자들이 헤럴드 김 목사의 친구들이기도 하다.
헤럴드 김 목사의 한국명은 김형윤. 2000년 고든콘웰신학교 M.Div. 과정을 졸업하고, 프린스톤신학교에서 Th.M.을 수료했으며, 동부 워싱턴중앙장로교회에서 EM 목사로 사역하는 동안 이원상 목사로부터 멘토링을 받으며 목회 경험을 쌓았다. 남가주로 이동함에 따라 교단 소속이 종전 PCA에서 세리토스장로교회가 속한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로 바뀐 헤럴드 김 목사는, 현재 교단 내 영어노회를 조직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김한요 목사는 헤럴드 김 목사에 대해 “말씀 사역이 탁월하고, 겸손할 뿐 아니라 관계성에 있어 훌륭한 사역자”라고 치켜 세운다. “목양실 문을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나서 보면, 헤럴드 목사에요. 일주일에 꼭 한두 번씩 찾아와 소파에 앉아 30분씩 대화하고 가고 그랬죠. 물론 사역자 미팅에서도 만나지만, 그런 걸 잘 하더라구요. 그러니 더욱 정이 갈 수 밖에요. 서로 얘기하면서 ‘뭘 도와주면 좋겠냐’고 묻기도 하고 이런 저런 대화를 통해 (사역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가는 거죠. 2세 사역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데엔 별다른 비법이 있었다기보다 그저 서로 믿고 좋아하니 가능했던 거 같아요.”
이렇듯 목회자간 서로 오랫동안 신뢰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게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로 드러난 것. 두 교회 목회자 뿐 아니라 당회간 소통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CCSC는 독립 이후 지난해 3명의 장로가 세워졌고, 이들과 KM의 3명의 장로들이 함께 모여 교회의 비전을 논하는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름하여 ‘미래발전위원회’다. 한 캠퍼스를 공유하니 시간 배정과 행사 스케쥴 등을 조율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만나 소통한다.
“교인간의 소통은 그럼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김 목사는 “예배를 통한 세대간의 연합”을 꼽았다. 매주 토요일 새벽예배를 통해 세대간의 갈등을 막고 성령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맛보며 소통함으로 참된 ‘소통’을 경험한다.
이 예배에는 1세와 2세를 넘어 주일학교까지 더해 그야말로 3세대가 연결되는 자리다. 이 예배의 특징은 각 세대가 돌아가면서 호스팅한다는 것. 경우에 따라 초등부가 전체 예배를 주관하기도 한다.
끝으로 그는 “1세들의 밑거름 위에 2, 3세들이 우뚝 서서 교계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성경적 영향력을 미치는 주역들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 2023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