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때문에 우주는 제대로 돌아가고 만물은 활기차고 인간은 살맛이 난다. 사랑이 있으면 초막이나 사막이나 천국이 되고 반대로 궁궐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지옥이라고 한다. 고대 희랍인들은 사랑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부모와 자녀 간의 혈연적인 사랑, 남녀 간의 이성적인 사랑, 친구 간의 끈끈한 사랑, 자기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적인 사랑으로. 훗날 니크린같은 신학자는 성경을 중심으로 사랑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에로스, 이와 반대로 아무 이용가치가 없는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아가페라고 분류하면서 하나님을 정점에 놓았다.

모든 동물은 생존하고 번식하는 데 필요한 대상을 찾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의식주나 짝짓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좀더 많이 소유하려고 욕망하며 더 나아가서 발전하고 향상하려고 노력한다. 그 욕망과 노력이 오늘의 찬란한 문명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그것이 가치를 추구하는 에로스적인 사랑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문제가 내재해 있다. 즉 모든 활동이나 판단의 기준이 가치추구에 있다 보니 이기적인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심지어 자신을 낳아 키워주신 부모라도 지금 자신에게 도움이 안되고 부담이 될 때는 학대하고 심하면 빨리 세상을 떠나기를 바란다. 또 한평생 같이 살기로 맹세했던 반려자라도 지금 내 주위에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마음이 흔들리고 심지어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남남으로 갈라선다.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어떤 매력에 끌렸기 때문에 새롭고 신선한 매력을 지닌 사람을 만나면 그 새로운 사람에게로 마음이 옮겨 간다. 오랜 친구나 선후배나 사제 간의 의리, 하물며 과거에 맺은 정(情)도 오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미련이 없이 버린다. 여기에 에로스적인 사랑의 약점이 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또 다른 면의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어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다. 사랑의 열매로 새 생명이 태중에 생기기 시작하면 자기가 취한 영양분을 태아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의 몸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만삭이 되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세상에 그 아이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어지고 그 아이 때문에 살게 된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어린 핏덩이를 위해 자신은 지치지만, 불평이나 원망이 없이 희생한다. 잘 커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어머니의 일은 계속된다. 학교에 보내 공부시키고 때가 되면 시집 장가보내고 심지어 손자 손녀들까지 돌보고 기회가 되는대로 자녀들이 잘 먹던 음식을 해다 바치는 그 정성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만일에 자녀가 잘못돼 불구가 돼도 어머니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신 자녀의 아픔을 안고 싶어한다.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아가페 사랑이다. 성경은 내 자녀에게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가르친다.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사랑이 더 값진 것이며 아가페적인 사랑을 쫓아 사는 사람은 더 멋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곳은 에덴동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