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는 자신을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소개했다. ⓒ이대웅 기자

지난 11일 국내에서 열린 종말론에 대한 최초의 국제적 행사인 ‘역사적 전천년주의 국제학술대회’가 화제다. 최근 신천지 등 이단의 득세가 한국교회의 종말론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종말론 4가지 학설에 대한 논쟁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히 美 덴버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강의를 하고 있는 정성욱 교수가 이날 “역사적 전천년주의로의 종말론 통합”을 주장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한국 신학계에는 무천년주의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미국 하버드 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하고, 영국 옥스퍼드로 건너가 알리스터 맥그라스에게 지도를 받았으며(D.Phil),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가 종말론 관련 이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시점에서 학술대회가 열려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신천지를 비롯한 종말론과 계시록 관련 이단들이 한국교회를 엄청나게 위협하고 실제로 상당 부분 힘들게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계시록이나 종말신앙에 한국교회가 그동안 적극 대응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종말론이 통합되지 못하고 네 가지 분파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통합된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안 되고 있어 종말론과 계시록 관련 공격에 대응할 시기를 놓쳤다. 네 분파가 각자 각개전투를 하는 상황인데 이마저 안 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기존 네 파가 있지만 분명히 거부할 수 있는 학설은 후천년설이고, 세대주의도 징조를 강조하는 등 좋은 점이 있지만 대체로 문제가 있다. 그러면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이 남는데, 개인적 소신도 그렇지만 교회 역사적으로도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대세였고 지금도 복음주의권에서 대세다. 미국 복음주의권에서 현재 훈련된 신학자들 중 60% 정도가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다.


그렇다면, 역사적 전천년주의라는 큰 틀 속에서 무천년주의가 가진 강점, 세대주의가 가진 강점들을 통합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 시대 한국교회가 이단의 공격에 적절히 대응하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역사적 전천년주의자와 무천년주의자가 협력하면서 종말론 관련 이단에 공동 대처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학술대회가 개최됐고, 제 주장은 역사적 전천년주의라는 큰 틀에서 합의하면서 무천년주의의 강점을 수용하자는 것이다.”


-평신도들도 알기 쉽도록 네 가지 종말론 학설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먼저 전천년주의가 있는데, 단어를 거꾸로 해야 이해가 쉽다. ‘천년왕국 전 재림설’이 바로 전천년설이다. 전천년주의에는 세대주의와 역사적 두 학설이 있고, 후천년주의는 ‘천년왕국 후 재림설’, 즉 천년왕국이 지상에 이뤄지고 나서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위 ‘역사적 황금시대’인데, 이것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에덴동산에서 누렸어야 할 복을 우리가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뤘어야 할 하나님 나라를 천년왕국에서 회복하는 것이다.


후천년주의는 황금기가 역사의 마지막에 온 다음 재림이 온다는 것이라 너무 낙관적이 아닌가 한다. 역사가 진보한다고 보고 마지막에 황금시대가 온 후 재림하신다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무천년주의는 지상에 천년왕국이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교회 시대에 예수님과 이미 죽어 영혼으로 낙원에 간 성도들이 하늘에서 다스리고 있다는 학설이다.


두 전천년설 중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교회가 환란을 통과하느냐, 즉 휴거에 대한 것이다.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고 끝나는 시점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교회가 휴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는 환란을 통과하기 전 교회가 먼저 휴거되고, 유대인만 환란을 통과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두 번 재림하셔야 한다. 휴거와 재림은 동시 사건이어야 한다. 휴거될 때 하늘에서 예수님을 맞이했는데 땅으로 또 재림을 하신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다면, 세대주의적 주장은 왜 나왔나.


“이 주장은 19세기 초·중반이 돼서야 나왔다.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변종으로, 유대인에 대한 시오니즘 운동, 회복 운동 측면에서 나오게 됐다.”


-교수님께서 주장하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에는 약점이 없는가.


“무천년주의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핵심 약점이 있는데, 부활하고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인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는 주장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최후 심판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의 재림 심판이 불완전한 것이 된다. ‘어떻게 재림 이후 천년왕국이라는 영화로운 에덴동산의 축복된 시대로 의인과 악인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가’를 무천년주의자들이 가장 공격한다.


하지만 저는 천년왕국에 죄인은 못 들어간다고 본다. 천년왕국에는 의인만 들어간다. 그래서 무천년주의자들이 이 약점을 비판하더라도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비판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과 합의가 된 것인가.


“아니다. 함께 방한한 블롬버그 교수님도 그렇고, 대부분 의인과 악인이 함께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다르게 보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학술대회를 주최한) 이광복 목사님도 그러시더라. 하지만 그 부분이 해결되지 못해도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다. 재림 전 대환란이 있고, 그 대환란을 성도들이 통과한 후 끝나면 예수님이 오시고 우리가 들려 올라가면서 그 분을 맞고 함께 땅으로 와서, (천년이라는 숫자가) 문자적이든 상징적이든 천년왕국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교회에 남아있는 성도들이 변화하고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며, 천년왕국이 끝나고 예수 믿지 않았던 모든 죽은 자들도 부활해 백보좌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계 20-21장 참조).”


-역사적 전천년주의 중심으로 통합되면 세대주의자들이 거기에 편승하리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런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고 본다. 두 주장이 완전히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휴거 부분부터 다르고, 해석에 있어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언약사적 해석이면서 개혁파적 해석과 일관성이 유지된다. 그래서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개혁주의와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언약사적이지 않고, 신약 시대의 하나님 백성을 교회로 보지도 않는다. 여전히 유대인이라 보는 것이다. 개혁주의나 언약사적 관점에서 구약의 모든 예언은 신약의 교회를 통해 성취되는 것 아닌가?”


-무천년주의자들은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천년왕국만 상징적으로 해석한다는 비판도 있다.


“정확한 지적이다. 천년왕국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어거스틴 전까지 초대교회 교부들 대부분이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틀에서 계시록과 종말론을 해석했다. 이는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한계시록은 가장 마지막에 요한에 의해 쓰여졌는데, 요한의 제자들인 폴리캅이나 폴리캅의 제자 이레니우스 모두 철저한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었다. 초대 교부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어거스틴과 칼빈이 무천년주의자였다. 개혁주의자들은 그것 때문에 무천년주의로 넘어가는데, 학술대회에서 밝혔듯 개혁주의자라고 다 무천년주의자는 아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작성에 참여했던 토머스 굿윈 같은 사람도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지지했고, 신대륙으로 넘어온 청교도들 상당수도 그러했다. 청교도들 사이에서도 무천년주의와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공존했던 것이다.”


-왜 교수님 주장처럼 역사적 전천년주의로 통합이 일어나야 하나.


“개인적인 확신이지만 성경에 가장 부합한다고 믿고, 두번째로는 현재 한국을 논외로 치더라도 복음주의권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견고할 뿐 아니라 복음주의 신학자들 대다수가 이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역사적 전천년주의를 받아들일 때만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이 적절히 고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세대주의와 무천년주의가 가진 약점이 심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점은 수용할 수 있지만, 약점이 심대하기 때문에 이 두 주장으로 종말론이 통합되긴 힘들다.


그렇다면, 통합하지 않고 그저 있어도 되는가? 그렇다. 하지만 이단자들에 대한 대응이나 재림 신앙 고취 등에서 결국 교회의 증언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지금 그 폐해를 한국교회가 입고 있지 않나. 그렇다고 무천년주의자들이 제대로 교육을 한 것도 아니다. 물론 서로 존중해야 하지만, 지금은 통합된 목소리를 내야 할 역사적인 시점이라 이렇게 제안하는 것이다. 못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 이번에 이한수 교수님(총신대)도 입장을 바꿨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성욱 교수는 “종말론에 있어 통합된 목소리를 갖고 이단에 적극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웅 기자
-목회자들이 종말론에 대해 섣불리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이 작성된 목적이 있다. 읽어보면 다 나오지만, 먼저 목적을 바르게, 그리고 본문의 성격과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편견을 깨는 게 먼저다. 먼저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데, 결코 어렵지 않다.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려운 책이 아니다(계 1:3). 어려운 책을 왜 주셨겠는가?


두번째는 두렵다는 편견이다. 잘못 해석했다간 이단이 될 수 있고, 심판에 대한 내용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려운 책이 아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보장된 최종 승리에 대한 확인이 목적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영광스럽고 황홀한 미래와 소망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건 사탄의 전략이다. 영적인 의미에서는 오히려 소망을 주고, 예수님에 대한 강렬한 기대를 주는 책이다. 재림이 가져다 줄 환희와 기쁨을 소망하게 하는 책이기 때문에 ‘밝은 종말론’이라 할 수 있다.”


정성욱 교수는 이와 관련, ‘요한계시록의 목회적 독법’에 대해 “칼빈이 ‘어렵고 난해한 책’이라는 이유로 주석을 쓰지 않은 이후 개신교와 개혁교회는 계시록에 대해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왔다”며 “요한계시록에 대한 근거없는 선입견과 편견을 타파하고, 지난 1992년 다미선교회를 중심으로 한 시한부 종말론 운동, 신천지나 하나님의교회와 같은 ‘어둡고 두려운 종말론’ 대신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다시 오셔서 신부인 교회를 맞이해 혼인잔치를 베푸실 것을 고대하고 대망하는 ‘밝은 종말론’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목회와신학 7월호).


-종말론에 침묵하니, 종말신앙까지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동의한다. 기독교 3대 신앙은 창조신앙과 구속신앙, 그리고 종말신앙이다. 종말신앙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개인적 종말신앙이다. 오늘이라도 부르시면 주님께 가야 한다는, 당장 불러가실 수 있으니 오늘 하루를 주님 앞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신앙이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두번째 역사적 종말신앙도 있다. 예수님이 장차 영광스럽게 재림하실 것이고, 그 직전에 큰 환란이 오는데 이를 극복하라고 명령하신다. 이기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현재 삶 속에서 영적으로 무장하고 깨어 준비하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한국처럼 종말론이나 종말신앙에 침묵하는 분위기인가.


“그렇지 않다. 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등 신생 기독교 국가들에서는 종말신앙이 굉장히 이야기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지하교회나 가정교회에서는 종말신앙의 강력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그런 곳에서는 대체로 계시록을 있는 그대로 읽기 때문에,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흐름이 강하다. 이런 곳에서는 뭐랄까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역사적 전천년주의의 종말론 신앙을 갖고 있다. 모두 핍박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의 주 메시지가 핍박을 이기라는 것 아닌가. 그게 역사적 전천년주의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시나.


“좋은 질문이다. 저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본다. 그 구름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실제적이고 문자적인 의미도 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면서 오신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면 이 세계가 혼비백산하게 되지 않겠나.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하겠지만, 우리가 볼 때는 구름을 타고 오시면서 놀라운 영광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구름은 아니고(웃음).”


-지옥이 없다고 주장했던 롭 벨의 <사랑이 이긴다>도 종말론과 연관이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옥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설교하신 분이 누구신가? 예수님이다. 복음서에서 비유나 설교를 보면 천국과 지옥을 가장 강력히 선포하셨다. 지옥이 없다거나, 모두 구원받는다고 하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반대된다.”


-심판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사랑이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예수님을 보내주신 걸로 다 표현됐다.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것이 최고의 표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 이미 드러났는데, 죄 가운데서 그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최고의 죄악이다.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최고의 죄악이므로 심판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강조돼야 하지만, 거룩하심도 균형있게 강조돼야 한다. 죄에 대한 심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