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자들은 1980년대 말 산업사회가 완료되고 새로운 사회가 등장했다고 말한다.

새로운 사회를 다니엘 벨(Daniel Bell)은 후기산업사회(post industrial society),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정보사회(information society),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라는 말로 산업사회와 구분한다.

1969년 드러커는 󰡔단절의 시대󰡕(The Age of Discontinuity)라는 유명한 책에서 처음으로 「지식사회」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1993년 저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Post Capitalist Society)에서 지식사회의 개념과 경영방식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다. 인간사회는 채집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사회가 변할 때마다 그 시대와 사회의 성공자는, 「과거와 단절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들이다. 생산요소의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인류의 모델은, 채집수렵사회의 사냥꾼에서 시작하여, 농경사회의 농사꾼으로, 산업사회의 기계공과 사무원으로, 그리고 정보․지식사회의 글로벌 지식근로자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지식사회에서 유능한 인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은 3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지식과 정보의 수집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오래 전에는 전쟁에 필요한 정보를 한발 앞서 전달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비둘기를 날려보냈지만, 지금은 브리타니카 사전 33권 1질을 단 2초만에 전송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연기 신호를 이용하여 일기 예보를 설명하는 53개의 단어를 만드는 데는 약 7분이 소요된다. 2시간짜리 영화를 연기 신호로 만들어 보낸다고 가정하면 약 반세기가 걸릴 것이다. 오늘의 전화는 연기 신호보다 6만배 더 빠르고, 동축 케이블과 인공위성을 연결하면 5십만배 더 빠르다. 현재 실험 중에 있는 최상의 광섬유는 1조배나 더 빠르다고 한다. 대역폭(bandwidth)이 지니는 이와 같은 기술적인 한계는 압축(compression)이라는 기술을 통해 극복되고 이런 시대에는 정보의 소재파악능력(know-where)과 정보에 대한 접근능력(access ability)이 중요하다.

둘째, 수집된 정보와 지식들을 가공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지식가공 능력이 요구된다.

피터 드러커 교수는 “한국은 땀과 근육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모두 달성했으므로, 앞으로는 지식을 이용하여 선진국을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제는 뛰어난 기억력이 아니라 창의력과 응용력이 더 강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디지털 라이프스타일로 첨단화되고 있다. 스케줄 관리에서부터 쇼핑,정보검색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다. 앞으로 삶의 디지털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음악 사진 영화 감상은 물론 친구와의 교제도 인터넷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식의 순환도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의 자원화가 되었다. 이젠 지식의 소유는 가치가 없다. 새로운 지식을 가공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지배할 것이다.

셋째. 끊임없이 배우는 학습능력을 가져야 한다.

오늘 만들어낸 최첨단 기술이 내일이면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이다. 사무용 기기를 예로 들면, 30년 전 직장인들은 주판으로 일을 했지만, 그후 전자계산기로, 컴퓨터로, 휴대용 컴퓨터로 하고 있다. 매년 신제품이 나오는데, 가격은 더 싸고 성능은 더 좋아지고 있다. 성능이 뛰어난 기기들이 필요한 지식을 얻고 학습하는 과정을 단축시키고 지식의 대중화 보편화를 이룩했다. 지식의 보편화 시대에서 지속적인 학습자로서의 능력을 키우지못한다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지식사회의 거대한 구조 속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성장해야 한다. 게리 토머스는 아홉 가지 영성의 개괄을 그의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연주의 영성이 있다. 오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감각주의 영성이 있다. 의식과 상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전통주의 영성이 있다. 고독과 단순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금욕주의 영성이 있다. 참여와 대결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동주의 영성이 있다.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박애주의 영성이 있다. 신비와 축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주의 영성이 있다.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묵상주의 영성이 있다. 또 생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성주의 영성이 있다. 영성은 지성주의를 포함하고 지성을 갖고 있다.

성경은 영성과 지성이 하나가 되라고 말한다. 성경은 신앙과 지식이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신앙은 지식적이어야 하고, 지식은 신앙적이어야 한다. 신앙과 지식이 하나가 될 때까지 끊임없는 성경에 대한 학습능력을 키워가야 한다.

주일에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는 신앙의 지성을 갖출 수 없다. 성경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따라 진지한 학습자의 노력과 희생이 없이 신앙의 지성주의를 자신의 내면에 세워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