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무료 교육을 실시하는 거북이교육센터 샘 강 원장. 시원한 인상에 늘 잔잔한 미소를 띄고있는 그는 UC 버클리 사회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국 상원 인턴, 국방성 컨트랙터 등으로 일한 수재다. 하지만 그의 눈부신 성공은 어두웠던 시절의 눈물과 시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그는 소아마비라는 육체의 가시를 갖고 있다. 생후 15개월, 이웃집 누나 손에 안겨 그네를 타다 줄이 끊어져 땅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후 급격히 약해진 몸을 타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그를 덮쳤다. 6개월을 식물인간처럼 의식 없이 지내다 2살 때쯤 앉아 있을 수 있을 만큼 회복기가 찾아왔다. 이후로는 늘 휠체어와 함께 살아왔다. 마지막 육체의 자랑으로 여기던 ‘잘생긴 치아’도 그가 20대 후반 무렵 계단에서 떨어져 턱이 세동강 나는 대형사고를 겪으면서 어금니가 모두 망가지고 빠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육체로는 아무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철저히 겸손하게 만들었다.
미국에 온 것은 92년도. 2년 간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며 한번도 A학점을 놓쳐본 적이 없다는 그는 경이로운 평점인 4.0(만점)으로 졸업, UC버클리 사회학과에 진학했고 그 곳에서도 평점 3.718로 4개 기관의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하는 영예를 안았다.
성공하려면 국회나 국방성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교육을 택했다. 그것도 가난한 아이들을 무상으로 돌봐주고 교육해주는 거북이교육이다.
“나도 학교에 가고 싶어요” 꼬마의 눈물
8살, 그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뛰고 똑같이 공부하는 평범함이 사무치도록 그리웠지만 그의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늘 문제였다. 사실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이 울고 속상해 했는 지를 그의 어머니가 기억하시고 알려주셨다.
속상했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혼자 책을 보고 그림을 그렸고, 하모니카나 기타를 치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다들 어렵다는 사춘기도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친구들이 많은 학교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공부도 혼자 매달려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패스한 그다.
그는 늘 꿈꾸는 사람이었다. 20세 후반 고향인 광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는 글쓰는 작가를 꿈꿨다. 하루 100여매 원고지를 꼬박 다 채우고도 모자를 만큼 그는 문학 활동에 몰두했다.
20대, 마주 하고 싶지 않던 시련
꿈꾸는 청년 시기, 큰 시련이 다시 한번 그를 찾아왔다.
“누나와 함께 바람쐬러 잠실운동장에 갔을 때에요. 앞에 계단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휠체어를 몰고 가다가 사람 키만한 계단에서 붕 떠서 바닥에 떨어졌는데 턱부터 떨어졌습니다. 턱 뼈가 세동강이 났어요. 제 유일한 자랑으로 여기던 치아도 다 부서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교만하지 말라고 바짝 엎드리게 하셨나봐요”
턱뼈와 어금니를 치료하다 쓰러지기도 할만큼 치료과정은 험난했다. 이후로는 아프지 않은 곳을 짚기 어려울 정도로 온 몸의 50여 군데에서 극심한 통증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목숨을 끊으려 9번이라는 시도를 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늘 가족의 넘치는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였지만 자신을 돌보느라 결혼도 하지 않는 누나, 다른 가족과 비교해 봤을 때 자유가 제한되는 것 같은 가족의 상황을 목도하며 ‘나만 없어지면 된다’는 생각에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떤 노력도 그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살리려고 작정하신 사람이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 10번째, 해도해도 되지 않자 그는 트럭에 뛰어들 마음을 먹었다. 그 무렵 시골에서 농장을 하던 형이 찾아와 던진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를 살렸다. “너 없이 사는 것은 우리 모두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형의 말은 강 원장을 ‘자살’에서 ‘살자’의 삶으로 돌려놓았다.
식어가는 세상의 사랑, 데울 연료를 찾다
가족의 사랑도 많이 받고, 친구들도 한 달에 100여명이 집을 찾아올 정도로 활발했던 그였지만 늘 마음 반 쪽이 비어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친누나의 손에 이끌려 신유은사를 바라고 다니기 시작한 교회였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가슴에 와닿으면서부터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통성기도를 하며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했어요.” 그러면서 그의 마음 속 빈 반쪽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운동경기 같아요. 잘 하다가도 조금만 잘못하면 욕을 하는 것 같이, 사회에서 피해를 입히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적대적인 시선을 많이 느꼈습니다.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서, 용서하는 사회 배려있는 사회가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자기 눈을 찌르는 사람에게 사랑의 언어를 남기신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랑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강 원장은 세상을 보며 사랑이 식어간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러나 죄인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식어가는 사랑을 뜨겁게 데울 연료를 발견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이란다.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 훨씬 기쁨이 많아지고, 감사가 늘어났다는 것을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제게 일과 사명을 주시려고 저를 살리신 것 같아요. 너무 아파 3분도 앉아있기가 힘들었던 저인데 기도하면서 몸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사라졌어요.” 이후 그의 누나는 신학교를 가고, 그는 미국에 오기 전까지 후원 받은 중고 버스 안에서 청소년 목회를 하게 됐다.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45세의 나이로 UC버클리 사회학과에 진학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인 강 원장의 뒤에는 은혜와 집념의 두 단어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게 맡기신 사명… “거북이 교육”
장애를 갖고 있기에 늘 약자의 편에 서는 법을 터득해서일까? 그는 국회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기득권 자녀들이 다시 사회의 기득권을 잡는 구조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동일한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저소득층 교육을 선택했다.
‘거북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느리지만 결국에는 더 빨리 가게 되는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를 빗댄 것이다.
거북이교육센터는 초등학교 3~6학년을 대상으로 성경과 수학, 영어를 교육하고 있으며, 경쟁보다는 협동을 강조하고 적은 양의 공부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핀란드식 학습법을 채택, 가르치고 있다. 부속 프로그램 일환으로 ‘영화 영어(1년 간 영화 여섯편 1만 대사를 익힌다)’ ‘컴퓨터(컴맹 탈출반, 퀵북 반, 컴퓨터 뮤직, 컴퓨터를 통한 기타레슨)’ ‘악기 레슨(바이올린, 기타, 드럼, 피아노, 크로마하프)’ 클래스를 열어두고 있다.
공부가 끝나고 이뤄지는 성경 읽기를 통해 늘 성경과 가깝게 지내게 하는 것이 거북이 교육의 한가지 특징이다.
강 원장은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지난 삶에서 깨달은 것은 늘 성경을 읽으며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이라며 “청소년의 4분의 3이 교회를 떠난다는 현실 속에 미래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섬기는 리더’로 키워내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불과 5~6개월이 되었지만 교육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벌써 학교에서 앞서간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소수정예로 학생 5명 당 2명의 교사가 도움을 주는 학습법이라 들어오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웨이팅 리스트에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만약 원하는 교회가 있으면 저희가 무료로 셋업을 해드릴 수 있어요.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면서 성경을 읽히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 거부감이 없어 전도에 효과적입니다. 교회에서 교사로 섬길 2명 정도를 보내주시면 2달 정도 교육한 후 돌려보내 교회에서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거북이교육센터는 현재 애난데일 2곳, 센터빌 2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정부 보조금을 늘려서 여러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큰 기관으로 자리잡을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강 원장은 “공부 조차 기도 없이는 한 발짝도 못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함께 할 수 있는 교회들이 있으면 많은 연락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의) 703-867-9020 , 703-599-9096
주소) 4423 Miniature Ln., Fairfax, VA 22033
웹사이트) www.teducenter.org
그는 소아마비라는 육체의 가시를 갖고 있다. 생후 15개월, 이웃집 누나 손에 안겨 그네를 타다 줄이 끊어져 땅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후 급격히 약해진 몸을 타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그를 덮쳤다. 6개월을 식물인간처럼 의식 없이 지내다 2살 때쯤 앉아 있을 수 있을 만큼 회복기가 찾아왔다. 이후로는 늘 휠체어와 함께 살아왔다. 마지막 육체의 자랑으로 여기던 ‘잘생긴 치아’도 그가 20대 후반 무렵 계단에서 떨어져 턱이 세동강 나는 대형사고를 겪으면서 어금니가 모두 망가지고 빠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육체로는 아무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철저히 겸손하게 만들었다.
미국에 온 것은 92년도. 2년 간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며 한번도 A학점을 놓쳐본 적이 없다는 그는 경이로운 평점인 4.0(만점)으로 졸업, UC버클리 사회학과에 진학했고 그 곳에서도 평점 3.718로 4개 기관의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하는 영예를 안았다.
성공하려면 국회나 국방성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교육을 택했다. 그것도 가난한 아이들을 무상으로 돌봐주고 교육해주는 거북이교육이다.
“나도 학교에 가고 싶어요” 꼬마의 눈물
8살, 그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뛰고 똑같이 공부하는 평범함이 사무치도록 그리웠지만 그의 움직이지 않는 다리가 늘 문제였다. 사실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이 울고 속상해 했는 지를 그의 어머니가 기억하시고 알려주셨다.
속상했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혼자 책을 보고 그림을 그렸고, 하모니카나 기타를 치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다들 어렵다는 사춘기도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친구들이 많은 학교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공부도 혼자 매달려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패스한 그다.
그는 늘 꿈꾸는 사람이었다. 20세 후반 고향인 광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는 글쓰는 작가를 꿈꿨다. 하루 100여매 원고지를 꼬박 다 채우고도 모자를 만큼 그는 문학 활동에 몰두했다.
20대, 마주 하고 싶지 않던 시련
꿈꾸는 청년 시기, 큰 시련이 다시 한번 그를 찾아왔다.
“누나와 함께 바람쐬러 잠실운동장에 갔을 때에요. 앞에 계단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휠체어를 몰고 가다가 사람 키만한 계단에서 붕 떠서 바닥에 떨어졌는데 턱부터 떨어졌습니다. 턱 뼈가 세동강이 났어요. 제 유일한 자랑으로 여기던 치아도 다 부서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교만하지 말라고 바짝 엎드리게 하셨나봐요”
턱뼈와 어금니를 치료하다 쓰러지기도 할만큼 치료과정은 험난했다. 이후로는 아프지 않은 곳을 짚기 어려울 정도로 온 몸의 50여 군데에서 극심한 통증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목숨을 끊으려 9번이라는 시도를 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늘 가족의 넘치는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였지만 자신을 돌보느라 결혼도 하지 않는 누나, 다른 가족과 비교해 봤을 때 자유가 제한되는 것 같은 가족의 상황을 목도하며 ‘나만 없어지면 된다’는 생각에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떤 노력도 그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살리려고 작정하신 사람이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 10번째, 해도해도 되지 않자 그는 트럭에 뛰어들 마음을 먹었다. 그 무렵 시골에서 농장을 하던 형이 찾아와 던진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를 살렸다. “너 없이 사는 것은 우리 모두 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형의 말은 강 원장을 ‘자살’에서 ‘살자’의 삶으로 돌려놓았다.
식어가는 세상의 사랑, 데울 연료를 찾다
가족의 사랑도 많이 받고, 친구들도 한 달에 100여명이 집을 찾아올 정도로 활발했던 그였지만 늘 마음 반 쪽이 비어있는 듯 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친누나의 손에 이끌려 신유은사를 바라고 다니기 시작한 교회였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가슴에 와닿으면서부터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통성기도를 하며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했어요.” 그러면서 그의 마음 속 빈 반쪽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운동경기 같아요. 잘 하다가도 조금만 잘못하면 욕을 하는 것 같이, 사회에서 피해를 입히는 것에 대해 사람들의 적대적인 시선을 많이 느꼈습니다. 차가운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서, 용서하는 사회 배려있는 사회가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자기 눈을 찌르는 사람에게 사랑의 언어를 남기신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랑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강 원장은 세상을 보며 사랑이 식어간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러나 죄인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식어가는 사랑을 뜨겁게 데울 연료를 발견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이란다.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 훨씬 기쁨이 많아지고, 감사가 늘어났다는 것을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제게 일과 사명을 주시려고 저를 살리신 것 같아요. 너무 아파 3분도 앉아있기가 힘들었던 저인데 기도하면서 몸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사라졌어요.” 이후 그의 누나는 신학교를 가고, 그는 미국에 오기 전까지 후원 받은 중고 버스 안에서 청소년 목회를 하게 됐다.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45세의 나이로 UC버클리 사회학과에 진학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인 강 원장의 뒤에는 은혜와 집념의 두 단어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게 맡기신 사명… “거북이 교육”
장애를 갖고 있기에 늘 약자의 편에 서는 법을 터득해서일까? 그는 국회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기득권 자녀들이 다시 사회의 기득권을 잡는 구조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동일한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저소득층 교육을 선택했다.
‘거북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느리지만 결국에는 더 빨리 가게 되는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를 빗댄 것이다.
거북이교육센터는 초등학교 3~6학년을 대상으로 성경과 수학, 영어를 교육하고 있으며, 경쟁보다는 협동을 강조하고 적은 양의 공부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핀란드식 학습법을 채택, 가르치고 있다. 부속 프로그램 일환으로 ‘영화 영어(1년 간 영화 여섯편 1만 대사를 익힌다)’ ‘컴퓨터(컴맹 탈출반, 퀵북 반, 컴퓨터 뮤직, 컴퓨터를 통한 기타레슨)’ ‘악기 레슨(바이올린, 기타, 드럼, 피아노, 크로마하프)’ 클래스를 열어두고 있다.
공부가 끝나고 이뤄지는 성경 읽기를 통해 늘 성경과 가깝게 지내게 하는 것이 거북이 교육의 한가지 특징이다.
강 원장은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지난 삶에서 깨달은 것은 늘 성경을 읽으며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이라며 “청소년의 4분의 3이 교회를 떠난다는 현실 속에 미래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섬기는 리더’로 키워내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불과 5~6개월이 되었지만 교육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벌써 학교에서 앞서간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소수정예로 학생 5명 당 2명의 교사가 도움을 주는 학습법이라 들어오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웨이팅 리스트에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만약 원하는 교회가 있으면 저희가 무료로 셋업을 해드릴 수 있어요.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면서 성경을 읽히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 거부감이 없어 전도에 효과적입니다. 교회에서 교사로 섬길 2명 정도를 보내주시면 2달 정도 교육한 후 돌려보내 교회에서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거북이교육센터는 현재 애난데일 2곳, 센터빌 2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정부 보조금을 늘려서 여러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큰 기관으로 자리잡을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강 원장은 “공부 조차 기도 없이는 한 발짝도 못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함께 할 수 있는 교회들이 있으면 많은 연락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의) 703-867-9020 , 703-599-9096
주소) 4423 Miniature Ln., Fairfax, VA 2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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