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피하여 도망치려고 한 곳, 다시스입니다. 다시스는 신약에 이르러서는 로마 사람의 행정구역인 “히스패니아”라고 불리던 로마제국의 가장 서쪽 땅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동쪽 행정구역인 터키 남부, 길리기아에서부터 시작하여 당시의 땅끝 스페인, 히스패니아에 이르는 전 로마의 판도를 전도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이것이 로마서 16:23, 28에 나와 있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실제로 바울 사도가 스페인에까지 복음을 들고 갔으리라고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바울의 선교가 있었다 하더라도 스페인은 아랍권의 오랜 지배를 통하여 기독교적인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습니다. 711년에 들어온 이슬람 세력은 8년만에 전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정복하였습니다. 그 이슬람은 15세기 말까지 물러가지 아니하였습니다. 8년만에 전쟁을 통해 나라를 잃었는데, 나라를 회복하는데는 1492년 1월 2일에 이르기까지 약 800년이 걸렸습니다. 나라를 회복하고 통일을 이루고, 이어서 중남미로 진출한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기 까지 300년 동안을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많은 식민지 자원의 수입과 무역을 통하여 스페인은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로마, 프랑스와 함께 라틴계에 속한 스페인은 종교개혁의 영향을 그리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페인은 반동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영적 훈련을 통하여 구교를 개혁한 신앙운동의 본산지에 들르지는 못했지만, 그 근처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1000년 정도의 전통을 가진 몬세라트 수도원까지는 가 볼 수 있었습니다. 수백년이 된 건축물은 깊은 전통을 가진 이 나라에서 명함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1200 피트의 몬세라트산(톱니산)에는 속세를 떠난 80명의 수도사들이 먹고 자고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조각하여 놓은 산중턱의 절벽길을 몇몇 목회자 부부와 함께 걸어 가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되새김합니다.

스페인에는 약 5천명의 한국 이민자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한국 사람들은 즐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스페인 사람들과 경쟁하여 결코 지지 않는다는 것이 교민사회의 자신감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한국의 세계 최고 조선업과 2002년 축구 4강 이야기에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자동차와 전자제품은 이곳에서도 인기입니다.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에는 1992년 황영조 선수의 마라톤 금메달의 추억이 서려 있습니다. 그곳 올림픽 운동장 앞에는 황 선수의 달리는 모습이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당시의 이민자들이 얼마나 감동 속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이민자가 애국자”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