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18-20절,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주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 다니셨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번화한 종교적인 거리를 다니시지 않았다. 그분은 유대인들이 가장 멸시하는 이방의 갈릴리와 같은 곳에 가셔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아주 촌스럽고 사람들이 멸시하는, 아주 거칠고 혼혈의 사람들이 사는 그러한 땅에서 시작됐다.
그렇다고 볼 때 저와 여러분같이 부족한 사람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주님의 부르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소망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고 하면서 ‘너희 중에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며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다’고 말했다. 이 말씀을 볼 때 주님은 이렇게 죄 많고 겉으로 보기에 좋지 않고 모자라는 사람을 부르실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주님은 안나스나 가야바를 찾아 가거나 가말리엘한테 가지 않으시고 바닷가에 오셔서 그물질 하느라고 팔뚝 근육이 많이 발달하고 얼굴도 구릿빛으로 타고 말소리도 무식했을 것 같은 어부들을 부르셨다. 아마 그들은 ‘어이, 저것 좀 주어와. 이것 좀 들게.’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를 삼으실 때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소망이 많다. 감동이 된다. 따라서 우리같은 사람들도 주님을 따를 수 있다는 용기를 갖는다.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어떤 복이 있어서 한 집에서 두 사람이 귀하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런데 어부이고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성실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모든 면이 다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생계를 유지하려고 열심히 고기를 잡고 부친과 더불어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 빈둥거리는 건달은 아니었다.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 중에서 부르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비록 비천한 직업이었지만 성실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주님이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무디는 “게으른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들은 비록 도회지에 사는 문화인들이 아니었지만 열심히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게으르고 할 일 없이 소일하는 사람은 주님 안에 들어와서도 그렇게 쓸모없이 되기가 쉽다. 이것은 우리의 견해이다.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하다. 이제 후에 요한과 야고보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다가 부르심을 받는데 주님이 부르실 때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는 앞으로 그가 어떻게 주님을 섬길 것인가와 많이 관계가 있다. 베드로는 그물 치는 사역을 했다면 결국 요한은 나중에 구멍난 사역의 그물을 깁는 사역을 했다. 그것이 요한의 글들의 특징이다. 바울은 장막을 짓던 사람이다. 그가 무얼 하는 사람인데 부르심을 받았으면 장래 그가 어떻게 주님을 섬길 것인가와 많이 관계가 있다.
여러분들이 한 번 스스로 생각해 보라. 자신이 무엇 하는 사람인데 부르심을 받았는지. 그러한 일을 하나님은 영적으로 바꿔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주 귀한 그 부분을 감당하게 하신다. 당신이 만일 교사였을 때 부르심을 받았다면 아마도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치는 데 쓰임받을지 모른다. 만일 가구를 수리하거나 만들다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어쩌면 당신은 하나님의 집에서 뭔가 부족한 어떤 지체들을 온전케 하는 일을 담당할지 모른다.
주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다니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신다. “나를 따르라. 너 지금 뭐하고 있느냐? 어, 은행에서 돈을 세고 있구나. 이제부터는 하늘에 속한 돈을 세어라. 이리 와서 나와 함께 일하자.”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무언가 보기만 하면 고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도 많은 고장난 부분을 고치는 부담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 돌이키고 주님 앞에서 주님을 섬기기만 하면 주님은 당신의 원래의 직업, 원래 갖고 있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하늘의 것으로 바꿔 주신다. 자,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주 예수님의 사도로서 수많은 사람을 인도하고 베드로 전후서를 쓰는 것이 나은가? 그건 말할 필요가 없다. 주님을 만나서 인생이 바뀐 것이다. (다음에 계속)
주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 다니셨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번화한 종교적인 거리를 다니시지 않았다. 그분은 유대인들이 가장 멸시하는 이방의 갈릴리와 같은 곳에 가셔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아주 촌스럽고 사람들이 멸시하는, 아주 거칠고 혼혈의 사람들이 사는 그러한 땅에서 시작됐다.
그렇다고 볼 때 저와 여러분같이 부족한 사람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주님의 부르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소망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고 하면서 ‘너희 중에 문벌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며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다’고 말했다. 이 말씀을 볼 때 주님은 이렇게 죄 많고 겉으로 보기에 좋지 않고 모자라는 사람을 부르실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주님은 안나스나 가야바를 찾아 가거나 가말리엘한테 가지 않으시고 바닷가에 오셔서 그물질 하느라고 팔뚝 근육이 많이 발달하고 얼굴도 구릿빛으로 타고 말소리도 무식했을 것 같은 어부들을 부르셨다. 아마 그들은 ‘어이, 저것 좀 주어와. 이것 좀 들게.’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를 삼으실 때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소망이 많다. 감동이 된다. 따라서 우리같은 사람들도 주님을 따를 수 있다는 용기를 갖는다.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어떤 복이 있어서 한 집에서 두 사람이 귀하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런데 어부이고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성실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모든 면이 다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생계를 유지하려고 열심히 고기를 잡고 부친과 더불어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 빈둥거리는 건달은 아니었다.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 중에서 부르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비록 비천한 직업이었지만 성실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주님이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무디는 “게으른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들은 비록 도회지에 사는 문화인들이 아니었지만 열심히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게으르고 할 일 없이 소일하는 사람은 주님 안에 들어와서도 그렇게 쓸모없이 되기가 쉽다. 이것은 우리의 견해이다.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하다. 이제 후에 요한과 야고보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다가 부르심을 받는데 주님이 부르실 때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는 앞으로 그가 어떻게 주님을 섬길 것인가와 많이 관계가 있다. 베드로는 그물 치는 사역을 했다면 결국 요한은 나중에 구멍난 사역의 그물을 깁는 사역을 했다. 그것이 요한의 글들의 특징이다. 바울은 장막을 짓던 사람이다. 그가 무얼 하는 사람인데 부르심을 받았으면 장래 그가 어떻게 주님을 섬길 것인가와 많이 관계가 있다.
여러분들이 한 번 스스로 생각해 보라. 자신이 무엇 하는 사람인데 부르심을 받았는지. 그러한 일을 하나님은 영적으로 바꿔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주 귀한 그 부분을 감당하게 하신다. 당신이 만일 교사였을 때 부르심을 받았다면 아마도 당신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치는 데 쓰임받을지 모른다. 만일 가구를 수리하거나 만들다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어쩌면 당신은 하나님의 집에서 뭔가 부족한 어떤 지체들을 온전케 하는 일을 담당할지 모른다.
주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다니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신다. “나를 따르라. 너 지금 뭐하고 있느냐? 어, 은행에서 돈을 세고 있구나. 이제부터는 하늘에 속한 돈을 세어라. 이리 와서 나와 함께 일하자.”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무언가 보기만 하면 고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도 많은 고장난 부분을 고치는 부담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 돌이키고 주님 앞에서 주님을 섬기기만 하면 주님은 당신의 원래의 직업, 원래 갖고 있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하늘의 것으로 바꿔 주신다. 자,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주 예수님의 사도로서 수많은 사람을 인도하고 베드로 전후서를 쓰는 것이 나은가? 그건 말할 필요가 없다. 주님을 만나서 인생이 바뀐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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