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예배를 드리려고 하이웨이를 운전하고 오는데, 라디오에서 “숲”이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예전 청년 시절에 즐겨 부르던 노래입니다. 원래는 시인과촌장이라는 포크 그룹 가수들이 불렀는데, 저는 미안하지만, 가수 양희은 씨가 맑고 영롱한 목소리로 부르던 것을 더 좋아합니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참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숲을 보려고 숲 속에 들어갔는데 도무지 숲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숲에서 나오니 비로서 숲이 보이더라는 가사말입니다. 숲 속을 헤맬 때는 숲이 그렇게 푸르고 아름다운 줄을 몰랐습니다. 숲 속에서는 돌과 자갈만이 발 뿌리를 붙잡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무릎에 힘이 빠지고 허벅지에서 쥐가 납니다. 흐르는 비지땀과 가쁜 숨 때문에 말이 산행이지 실제로는 피곤한 노동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하산을 해서 멀리쯤 가다가 뒤돌아 보니 푸르른 산 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옵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왜 산 속에 있을 때는 그 밟고 있던 산이 그토록 아름다운 줄을 몰랐을까요? 어찌보면 이 노랫말이 우리 인생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은퇴하신 목사님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서 목회가 뭔지를 알 것 같은데 이미 은퇴를 하고 말았다”는 아쉬움입니다.

그런 하소연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도 언제고 그 말을 내 입술로 되풀이 하는 날이 오고 말 것”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히곤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너무 집착이 강하고, 목적하는 바가 분명해서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들입니다. 천성이 근시안(近視眼)이라서 당장 앞에 있는 것 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서 “아뿔사! 그게 아니었구나!” 탄식하면서 애꿎은 턱만 비비게 됩니다.

나를 닮은 자식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인생의 동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그리고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변덕맞은 이 인생길이 얼마나 달콤한 비단길인지, 간과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분명 사람이 먹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닐진데, 어리석게도 평생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누릴까?”에만 집중하다가 소중한 인생산행을 다 마치고 맙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가 대단한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남발하며 살아갑니다. 가끔, 병원이나 양로원에 가 보면, “다시 한 번만 살 수 있다면 이전과는 다르게 살겠다”고 고백하는 노인들을 자주 봅니다.

아직도 산 중에 있다고 생각되시면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힘든 순간이라도 먼 훗날 뒤돌아 보면, 그것은 당신이 그리워할 아름다운 숲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