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1년 공동사설을 통해 본 북한의 정세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을 보면 김정일 정권의 한해가 보인다. 그만큼 북한에서 신년공동사설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김일성이 죽기 전까지 한해 중 단 한번만 주민들에게 들려주던 육성이었기 때문에 신격화와 맞물려 절대적 의미를 가진다.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김일성 사후에도 그의 육성신년 공동사설은 계속된다는 의미에서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동맹 공동사설이란 포괄적 형식을 취했다. 실제로 북한에서 공동사설은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처럼 개인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 지침서로 신성시 되고 있다.

과거 북한 주민들은 당 생활총화를 할 때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를 먼저 인용하고 거기에 근거하여 자기 생활을 반성했는데 김일성 사후부터는 공동사설로 대체하도록 했다. 또한 신년공동사설에 명시된 사회 각 분야의 평가와 과업들은 곧 해당 분야의 한해 총 목표이기도 하다.

이렇듯 공동사설은 이념국가인 북한에선 한 해 이념이나 같다. 이런 이유로 북한은 공개문서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사설에서만큼은 솔직해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동사설은 누가? 어떻게? 무슨 근거로? 만들며, 그 최종 결정자는 누구일까?

공동사설 집필 주체는 노동신문 정론부서이다. 조선인민군, 청년동맹은 단지 명의만 빌렸을 뿐, 그들은 아무 권한도 실무도 갖지 못한다. 노동신문 정론가가 되자면 김정일 안목에 있는 북한 최고의 필진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12월 중순이면 자동적으로 공동사설 집필팀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때부터 그들은 출퇴근이 아니라 중앙당 선전선동부 산하 강서 초대소에서 보안숙식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서 완성된 원고는 당 선전선동부를 걸쳐 김정일의 최종사인을 받게 되며 그러고 나서야 1월 1일 북한의 모든 신문사들에 배포가 되는 것이다.

북한의 공동사설을 보면 알겠지만 지난해 성과와 새해 과업이라고 지칭하면서도 숫자화 된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경제성과란 것도 ‘자력갱생’, ‘강계정신’, 하는 따위의 추상적인 구호들만 있을 뿐이다. 이는 이념국가의 정체성을 떠나 북한의 매해 목표가 오직 김정일 체제유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경제관리가 계획적으로 체계화 할 수준이 못 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공동사설 집필 근거자료는 김정일의 별도 지침과, 김정일 비준을 받은 당 조직부의 당 과업, 당 경제부의 경제성과 자료들, 당국제부 대외문건, 당 통전부가 작성한 대남분야 자료들이다. 그 자료들을 근거로 집필팀은 공동사설을 구성하고 논리를 전개한다.

공동사설은 제목과 서두, 지난해 평가, 올해 과업, 3단계로 나누어진다. 공동사설에서 시종일관하게 관통되어야 할 내용은 김정일이 별도로 내려 보낸 지침서들이다. 그 내용들은 김정일 신격화 차원에서 서두에 언급된다. 우선 제목이자 곧 김정일의 새해 의중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의 이번 공동사설 제목은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자!’이다. 이는 김정일이 올해에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 다음은 국가행사를 어떤 기념일에 정 조준하였고, 그것을 통해 주민들에게 주입하려는 정서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해 기념일 행사를 당 창건 65돌에 맞추었고, 당대표자회의도 진행했다. 시장의 확대로 당의 권위가 실추되자 주민정서를 당 충성으로 유인하는 한편 김정은 3대 세습을 공언하기 위해서였다. 북한의 올해 공동사설에선 기념일 국가행사 지정일이 없다. 대신 다음 해 김일성 생일 100돌 기념을 위해 올해를 준비하는 해로 선언했다.

▲신년공동사설에 제시된 대중선전화.
이는 올해 국가정서를 김부자 신격화에 초점을 맞추고 3대 세습 구도를 좀 더 굳히기 위한 뜻으로 풀이된다. 즉 김일성 생일 100돌을 계기로 김정은에게 좀 더 명시적인 권력을 넘겨주기 전에 대내정세를 안정시키려는 완충기로 잡은 셈이다.

일각에선 올해 2월 16일에 김정은에게 최고사령관 직함을 넘겨줄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듯 싶다. 그러자면 최고사령관 추대에 어울리는 광신적인 선군분위기 조성을 꾀할 것인데 전혀 그런 감은 없다. 오히려 3대 세습의 악재인 경제난 회복을 위해 인민경제 부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올해의 총공격전은 거창한 인민생활향상대진군의 계속이며 새로운 높은 단계다’라고 했으며 ‘경공업은 올해 총공격전의 주공전선’이라고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오늘 경공업을 대하는 립장은 인민에 대한 태도, 당을 받드는 자세, 혁명에 대한 관점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이다.’라는 문구로 김정일 정권의 초조한 경제 불안 심리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시장정책과 같은 큰 틀의 변화는 없이 ‘지방공업발전’, ‘1차소비품’과 같은 구태의연한 소리들과 ‘김철의 신념’이란 자력갱생 노동정신을 그 해결방도로 내세웠다. 인민경제 부문에 이어 북한 특유의 반복성, 호소성, 구체성의 문법을 통해 특별히 강조한 것은 당의 영도 강화와 선군부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올해의 북한 선군부문은 ‘훈련’과 ‘중대’를 강조한 매우 구체적 성격을 보였다. 연평도 포격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의지를 의식한 듯 ‘오늘의 훈련은 래일의 전투영웅을 키우는 용광로이다’는 문장으로 전쟁준비의 만전을 강조했고, 기본전투 단위인 중대강화를 역설했다.

북한은 ‘우리의 하늘과 땅, 바다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자들을 추호도 용서치 않을 것이며 무적의 총대로 조국과 민족 앞에 지닌 력사적 사명을 기어이 수행할 것이다’고 전제한 뒤 대남부문에서 ‘대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 언론들과 일부 북한학 학자들은 그 ‘대화’라는 단어만 중시할 뿐 그 전제조건으로 밝힌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리행하는 길로 나와야 한다’는 문구는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대외 부분에서 눈에 띄는 문구는 ‘비핵화’이다. 이는 한반도는 물론 북한을 겨눈 외국주둔 미군사기지의 모든 핵들과 맞바꾸겠다는 사실상의 핵 완성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로서 북한의 2011년 한해 국가목표는 크게 다섯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세습 환경을 위한 정치적 완충기, 둘째는 경제 안정으로 대내결속을 유도, 셋째는 ‘훈련'과 ‘중대’를 강조한 전쟁 준비 업그레이드, 넷째는 6·15 선언 존중을 전제로 하는 남북대화, 다섯째는 한반도 비핵화, 평화지대 구축, 정권담보를 조건으로 하는 6자회담 참여이다.

▲2011년 상반기 북한의 대남공세 일지(데일리NK 제공)

2.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대남전략

첫째,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구상정책’을 전쟁정책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도발수위를 계속적으로 높일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장기독재 국가로서 이명박 정부의 5년이 아니라 다음번 대선까지 계산한다. 일각에선 현 정부의 대북핵심 부서들인 국정원과 통일부가 과연 뭘 했는가? 고 추궁하는데 바로 그래서 잘한 것이다. 대북정책은 결과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남한 정부는 5년에 한 번씩 바뀌지만 북한은 3대까지 세습이 이어지는 장기독재 정권이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 차이로 우리가 결과를 원할수록 북한의 전략적 요구는 더 높아질 뿐이며, 우리가 단기성 욕구에 집착할수록 북한에겐 전략적 다양성만 넓혀주는 꼴이 된다.

지난 십년 동안은 우리 정부가 스스로의 5년 근성으로 북한의 5년만 보려 했기 때문에 금강산 관광이요, 개성공단이요, 하며 벌려놓은 것도, 퍼준 것도 많았지만 그렇게 짝사랑하고도 얻어맞기만 했다. 천안함, 연평도 포격이야말로 우리가 북한의 5년만 계산해선 안 된다는 반증이며, 또 뼈아픈 체험인 셈이다.

우리는 북한이란 상대 실정에 맞게 멀리 보고, 멀리 가야 한다. 북한은 독재가 장기적이라면 우리는 안목이 장기적이어야 한다. 노화된 김정일 정권은 과거가 길었던 만큼 대신 오늘은 매우 조급하다. 그런 북한이어서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에 무엇인가 체제존재감을 과시하려 할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다음번 대선에서 햇볕정책 계승세력에게 유리한 정치적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현 정부 집권 기간에 남북평화관리 책임을 최대한 넘겨씌우려 할 것이다.

즉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쟁정책으로, 햇볕정책을 평화정책으로 비교 부각시키는 차원에서 서해교전, DMZ에서의 도발과 같은 국지전 형태의 강경전략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을 “청와대 불바다” 폭언으로까지 수위를 높인 것도 바로 우리 국민들의 평화불안을 극대화하고 말로 하는 공갈협박에 이르기까지 최대한의 강경수단과 방법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둘째, 현 정부를 고립시키고 야당, 시민단체, 좌익들과의 연대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패정책으로 부각시키는 차원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정부 차원의 대화는 철저히 차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명박 정부를 고립시키기 위해 야당과 시민단체, 좌익들과의 연대를 보다 추진함으로써 반정부 대연합을 반보수대연합으로 발전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우리 어민을 납치하고, 그 대화 상대를 정부가 아닌 야당이나 좌익단체들로 정하고, 송환 시점을 다음번 대선까지 지연시키는 방법으로 햇볕정책과 그 지지 세력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은 미국 기자들을 억류하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성사시켜 미북 협상의 인질로 활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음번 유력 대선 후보자에 대한 지원으로 어민납치 및 송환 시나리오를 실행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우리 어민들을 노리는 특별한 목적이 있다. 지난해 32명의 어민들의 배가 표류됐을 때 북한은 4명이 귀순의사를 밝히자 나머지 27명 송환에 대해서도 거부했다. 그것은 한국에 남기로 한 4명에 대한 자국민 보호 차원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돌아올 27명 때문이다. 종이삐라에도 겁먹는 북한 정권이어서 27명의 인간삐라가 부담스럽기만 한 것이다.

31명 중 비어있는 4명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 4명이란 숫자는 남한으로의 귀순을 결심할 경우 지위여하를 떠나 누구든 탈북 가능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된다. 그것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질 경우 지금껏 중국행으로만 알던 비좁은 탈출구가 북한 내륙 황해지역 서해는 물론 강원, 함북 동해로 넓어지게 된다.

그러면 북한 해군은 남한이 아니라 자국민 탈출을 감시하는 용병 수준이 되고 만다. 기름이 없어 고작 경비함 하나만 띄우고, 그마저 순찰이 아니라 NLL지역에 세워놓는 수준의 북한 해군이 그 넓은 바다를 지킬 능력은 없다.

더 나아가 대외적으로는 북핵정치를, 대내적으로는 NLL정치로 대북지원을 유도하던 북한 정권의 이중전략에도 혼란은 불가피하게 된다. 북한은 대내통제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인질로 삼기 위해서라도 우리 어민들에 대한 납치를 반드시 감행할 것으로 보인다.

/탈북시인 장진성(<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저자, 전 북한 통일전선부 근무, 월간 Jesus Army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