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시각장애로 앞을 보지 못하는 니콜스 씨 부부는 여느 가정 못지 않게 크리스마스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매주 목요일 지인이 와서 데리고 가 주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쇼핑이지만, 올망졸망한 손자들을 위해 조금씩 선물을 사 트리 밑에 포장까지 마쳤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니콜스 씨 부부는 벌써부터 들떠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꼭 불행한 것이 아니듯, 보인다고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세상에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 될 때도 있다는 걸 니콜스 부부는 삶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들의 크리스마스는 특별하다. 다른 가정들처럼 손자들, 자식들과 모여앉아 크리스마스 책을 읽고, 저녁을 먹고 게임을 하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그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한국인 자녀들 4명이 총출동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니콜스 부부는 시각장애를 앓는 4명의 한국 아이들을 입양해 대학까지 보냈고 이제는 모두 어엿한 성인이 되어 3명의 귀여운 손자까지 두고 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시각장애인을 키운다는 것이 말만큼 쉬웠을까? 갓난아기 발에 종을 매달아 기저귀를 갈아 주고, 정신지체를 앓는 넷째의 수발을 들면서도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난보다는 기쁨이 더 커졌다”고 고백한다.
뉴욕맹인학교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니콜스 부부는 원했던 아이가 생기지 않자 입양을 결심했지만, ‘앞도 보지 못하면서, 아이를 어떻게 기르냐’며 어떤 단체에서도 입양수속을 거절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다 홀트재단을 알게 되고, ‘킴’이라는 한국 아이를 입양할 수 있었다. 킴 역시 시각장애가 있어 그를 입양하려는 부모가 없었다. 홀트재단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부모를 위해 직접 아이를 미국까지 보내줬다.
킴을 입양한 후 예수를 영접한 이들 부부는 갈 곳 없이 외롭게 살 수 밖에 없는 시각장애 아동들을 더 입양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알게 된 한 미네소타주 여성이 한국 입양기관을 통해 ‘마크, 엘렌, 세라’의 입양절차를 도왔다. 킴은 2살 반 때, 마크는 11개월 때, 엘렌은 4살 때, 세라는 2살 때 입양됐다. 4명 모두 시각장애를 앓았고, 막내 세라는 정신지체까지 있었지만 모두 선뜻 입양을 결정했다.
이 중 세번째로 입양한 엘렌은 4살 때 재래시장에서 버려졌다. 엘렌은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친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해 힘든 시기를 보내지만 늘 성경을 읽어주며 하나님을 전했던 니콜스 부인 덕택에 5살 때 예수를 영접했다. 이제 그녀는 "주님이 내 곁을 떠나시지 않고 변함없이 날 사랑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말한다. 넷째 사라는 정신지체를 앓고 있지만 니콜스 부부는 한번도 입양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없었다면 이 아이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 지 모르잖아요? 제가 눈이 보였다면 아내도, 이런 사랑하는 아이들도 만날 수 없었겠죠.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는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니 그 뜻을 다 알 수 없지만…” 흔들의자에 앉아 연신 미소를 짓는 니콜스 씨는 행복해 보였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앓다 1년 후 완전히 시력이 상실된 올스 니콜스 씨와 1살 때 안암으로 눈을 적출한 메리 니콜스 씨는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잊어버렸지만 그래서 감사한 게 더 많아졌다.”
▲니콜스 부부 손자들의 사진.
현재 아이들은 모두 장성해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킴은 입양 후 수술을 해서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회복, 현재는 락빌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마크는 플로리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링링서커스에서 음향 기술자로, 엘렌은 결혼해서 뉴욕 재향군인병원 전화교환원으로 일한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세라는 주중에는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메릴랜드스쿨 기숙사 안에 있다가 주말이나 휴일에 집으로 온다.
“비록 서로를 볼 수 없지만 목소리와 체취만으로 서로를 보살피고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니콜스 부부. 누가 와서 데려가 주지 않으면 쇼핑도, 산책도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답답하다는 생각보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성경읽기와 집안일을 즐기며 서로를 돕는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그들. 그들은 시력은 잃었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을 얻었고, 예수의 사랑을 알았으며 누구보다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니콜스 씨는 마지막으로 바흐의 ‘Prelude in C Major’를 연주해 들려줬다. 점자로 된 악보를 보고 외워야만 칠 수 있는 피아노지만 이미 머릿 속에는 수십개의 악보가 저장돼 있다고 한다. 빨간색 스웨터에 크리스마스 장식 브로치를 예쁘게 매치한 니콜스 부인이 옆에 앉아 ‘꼭 다시 오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보이지 않는다고 꼭 불행한 것이 아니듯, 보인다고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세상에 눈을 감고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 될 때도 있다는 걸 니콜스 부부는 삶으로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