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멕시코 불법 이민자의 월경 루트인 미국 서남부 캘리포니아주,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 텍사스주 등 4개주 국경 지역이 요즘 한산하다. 멕시코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과 계곡, 숲과 사막을 건너 미국으로 숨어들어오던 멕시코인 불법 월경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미국 국경순찰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1개월 동안 이들 4개주 국경을 통해 몰래 미국으로 건너오다 붙잡힌 멕시코인은 3만4천755명에 그쳤다고 15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보도했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다 잡힌 사람은 지난 2000년에는 무려 164만4천명이었다. 불법 월경자는 빠르게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44만8천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멕시코인의 미국 밀입국이 줄어든 것은 미국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애써 건너와 봤자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진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프린스턴대학에서 오랫동안 이민자 사회를 연구해온 더글러스 매시 교수는 최근 몇년 동안 불법 체류 멕시코인 거주 지역을 관찰한 결과 신규 유입 인구가 정체 상태라고 밝혔다. 밀입국 멕시코인들은 주로 건설 노동자, 식당 종업원으로 많이 취업하는데 최근 경기 침체로 이런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 주된 이유다.


멕시코대학 게노베바 롤단 교수는 "미국 내 멕시코 불법 체류자 사회에서 '미국 오지 마라. 일거리가 없다'는 메시지를 본국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된 반이민 정서와 이에 따른 불법 체류자 단속 강화도 한몫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멕시코인은 줄어드는 반면 미국에서 멕시코로 돌아가는 불법 체류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멕시코 과나후아토주는 오랜 세월 동안 미국으로 건너가려는 밀입국자들로 붐볐지만 요즘은 미국에서 귀환한 사람이 수천명에 이른다.


미국 유타주에서 폐기 철로 철거 작업장에서 3개월 동안 일했지만 제대로 된 급료도 받지 못했다는 호엘 부소(35)는 6개월 동안 미국에서 버텼지만 포기하고 멕시코로 돌아왔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부소는 "일거리가 없기는 미국이나 멕시코나 마찬가지지만 멕시코에서는 (쫓기는 일 없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면서 다시는 미국에 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불법 월경자가 줄고 멕시코로 귀환하는 불법 체류자가 증가하면서 한때 700만명을 웃돌던 멕시코인 불법 체류자가 지난해에는 650만명으로 감소했다. 매시 교수는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인구 이동이 결정적인 변화의 시점을 맞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일시적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 불법 월경이 다시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나후토주 마누엘 도블라도에 사는 카를로스 미렐레스는 "6개월 전에 시카고의 식당에서 일하던 조카 2명이 식당 문을 닫자 멕시코로 돌아왔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시카고로 가겠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