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좁힐 수 없을 것 같던 1세와 2세 사역의 갈등의 골을 좁히고, 함께 가는 상호의존 모델로 성장하고 있는 열린문장로교회(담임 김용훈 목사)는 그래서 더 주목받고 있는 지 모른다.
어느새 미주에서도 성공적인 1세 2세 협력 모델에 손꼽히는, 아니 오히려 유일하리만큼 드문 성공 사례로 꼽히는 열린문교회. 타주 한인교회는 물론 주변 타인종 교회에서도 세미나 등 협력 모델을 배우려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 열린문교회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고 현재의 자리까지 오게 된 비결은 2세를 위해 1세의 기득권은 과감히 양보하고 ‘(1세와 2세는) 살아도 죽어도 함께 하겠다는 신념’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왜 열린문교회가 주목받는가?
한인 미국 이민역사가 100여년을 훌쩍 넘었지만 본격적인 이민 붐이 불고 한인교회가 차례로 생겨나기 시작한 횟수를 따지자면 약 40여년. 소통에 서툴고, 낯선 이민 생활에 발맞춰 가기도 바빴던 한인들이 차일 피일 미뤄왔던 차세대 사역의 중요성이 이제는 발 등 앞에 떨어진 불이 됐다.
무비자 시대가 열리면서 비자 변경의 길이 줄어들고 거주 한인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한국의 눈부신 발달로 역이민이 늘고 유학생들도 졸업 후 한국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10년 전 IMF 같은 변수만 없다면 이대로 한인 1세의 숫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교회, 일본교회 등 초반에 강세를 보였던 아시안계통 교회들이 모두 유명무실해 진 현실 앞에 한인교회가 서 있다. ‘전철를 밟을 것이냐, 개혁할 것이냐’는 갈림길에 서 있는 한인교회들이 해야할 선택은 자명하다.
김용훈 목사는 “중국 교회의 경우 1세 자국의 문화나 전통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서 2세들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소통의 지혜를 잃어버림으로 자처한 실패의 타국 1세 교회를 바라보며 한인교회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에게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무엇이 가능하게 했는가?
1세 교회와 2세 교회의 협력과 건강한 의존 관계, 무엇이 가능하게 했을까? 가장 핵심 가치를 꼽는다면 “커뮤니케이션(소통)”이었다.
커뮤니케이션 1) ‘상호의존’ 명칭의 이해
먼저 상호의존이라는 명칭에 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목사는 “동일하게 ‘상호의존’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이해가 다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다.
“상호의존이란 부부 같아요.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가 아닙니다. 가장 성숙한 상호의존교회라는 것은 1세대 교회와 2세대 교회가 독립교회로서 활동할 성숙도가 있지만 하나님 나라라는 더 큰 이유를 위해 불편함을 불구하고 같이 있기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열린문교회도 완전한 상호의존교회는 아니에요. 과정에 있지요.”
커뮤니케이션 2) 2세 목회자와의 소통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면 2세 목회자와의 소통이 관건이다. 사실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실제적인 첫 소통의 단계를 거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세와 2세 사이에서도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가 다르니까 한어권 목회자는 계속 함께 가야겠다 생각해도 영어권 목회자들은 어느 시점에 가서 독립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열린문교회의 경우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처음에는 대학, 신학교 후배들을 모셔다가 2세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같은 신학교에 다니고 같은 은혜를 받았으니 마음이 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영어권 목회자들이 떠나면서 깨닫게 됐죠. 1세 목회자는 ‘2세 목회자를 잘 키워서 같이 목회해야 겠다’ 생각해도 2세 목회자는 ‘1세 교회 밑에 있을 때는 백날 해도 안된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생각이 달라서 생긴 어려움이었습니다.
김 목사는 우선 생각이 공유돼야 한다고 했다.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교회의 비전, 나아가서는 소소한 교회 결정권 까지 소통과 공유의 영역은 넓어져야 한다.
그래서 열린문교회는 2세 사역자를 청빙할 때 3C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중에서도 사역자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융화력(compatibility)’, 두번째로 ‘인격(Characteristics)’, 세번째로 ‘능력(Confidence)’을 본다. 서로의 마음을 소통하고 비전을 나누는 가운데 겸손한 성품을 가지고 잘 융화하는 사역자가 함께, 오래 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3) 신뢰 관계
소통은 존중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10년 간 분쟁 없는 교회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간의 쌓아온 신뢰를 기반으로 했다.
김 목사는 “신뢰는 먼저 그림이 정확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2세 목회자를 청빙해 올 때 ‘우리는 아무리 2세 교회가 커져도 독립하지 않는다’고 명시합니다. 독립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축복해 주지만 교회의 재산권은 주장할 수 없다고 정확한 선을 긋습니다.” 1세대가 생각하는 즉 교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비전에 대한 명확한 제시가 신뢰의 첫째 요소다. 결과적으로 논리가 강한 2세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두번째 요소는 교회 전체가 2세 목회자를 동역자로 존중해 주고 우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담임목사의 몫입니다. 담임 목사가 하면 장로님들도 따라합니다. 그것을 위해 세미나도 많이 하고, 영어권 교회가 어느 정도 커지고 나서는 2세 장로가 없을 때이지만 2세 안수집사들을 당회에 함께 참여하도록 해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가장 구체적 존중은 큰 결정을 할 때 그 사람들의 의견을 포함시키고 들어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역자들이 서로 오랫동안 신뢰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금은 교회 사역자들이 늘어나고 하는 일이 다양해져 잘 할 수 없지만 예전에는 매일 만나 식사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김 목사는 “당시 5명의 교역자들이 매일 식사하면서 편안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를 쌓았다”며 “지금도 영어권 한어권 수련회도 같이 하면서 서로 접촉점을 늘이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으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게 김 목사의 지론이다.
김용훈 목사에 따르면 ‘인간은 죄인이기에 가만히 두면 악한 길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진리의 토대 위에 의도적인 접촉점을 꾸준히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시행착오가 왜 없었을까? 그러나 ‘함께 하고자 하는 꿈’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향한 비전이 명확하다면 두려울 것은 없었다. 김용훈 목사가 회고하는 큰 시행착오는 맥클린 지역에서 현재 헌돈 지역으로 교회 예배당을 옮기면서다.
“제일 어려웠던 때는 여기로 이사올 때입니다. 이사오기 바로 전에 장소가 협소해서 길 건너 학교에서 잠시 예배 드릴 때가 있었습니다. 영어권 일부 교인들이 교회도 큰 교회 사놓고 당신들이 돈을 못내면 우리가 다 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대 의견이 있었습니다. 투표를 하는 데 “한어권, 영어권 따로 물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영어권이 안가겠다고 하고 한어권에서 가겠다고 하면 갈라질 수 없으니 못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영어권 교회가 커지고 한어권이 30명 밖에 안 남았는데, 당신이 건물을 팔고 가고 싶은데 한어권이 노 하면 어떻게 할 건가?”라고요. 공동의회를 하면 한어권이 많으니까 한어권 의견이 반영되게 돼 있습니다. 예산이 같아지면 발언권도 강해지는 것이죠. 그 당시 영어권의 회중 및 예산 비율 의견 반영율은 10%, 멀리 바라보고 같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추진했습니다. 영어권 교회에서 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희생할 때 희생해야 하는 데 그것이 잘 안됐습니다. 한어권은 거의 한 명도 떠나지 않았지만, 2세들은 3분의 1 이상이 떠났습니다. 거의 다시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현재도 한어권, 영어권 회중 비율로 예산과 모든 결정권을 양분하고 있다. 원칙은 처음부터 정확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주일 장년 출석 비례제”를 채택했다. 현재 영어권은 25%를 감당하고 있다.(현재 한어권 장년 출석: 1800명 이상, 영어권 장년 출석: 600명 이상)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일방적인 부모 희생을 전제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숨은 기대감’이 있는 경우도 있다. 교회는 이런 ‘기대감’이 갈등을 불러오는 데 주목하고 차후 영어권이 커지고 한어권이 작아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소소한 변화, 큰 열매
작은 변화였지만, 돌아보면 큰 열매를 낳았던 열린문교회의 4가지 비결이 있다.
1) 교회명 변경: 한인정통장로교회에서 열린문교회로 변경했다. 기존 이름으로는 2세를 품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세 교회는 아무리 그래도 한인이 주축이 되겠지만, 한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외국인 친구를 데려올 수 없는 한계성을 느낀다. 이름이 한인에서 나아가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이름이 돼야 겠다고 생각해 10년 간 리더십과의 회의와 설득 끝에 변경할 수 있었다.
2) 장소와 시설의 변화: 두 교회가 잘 성장하려면 서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맥클린 지역에서 10여년 전 교회를 옮겨올 당시 말도 많고 경비도 많이 들었지만, 이전을 결심했기에 영어권 성장의 촉매제가 됐다.
3) 영어권 교회 지도층 세움: 한어권의 축복을 받으며 5년 전 영어권 안수집사를 세우고 2년 전부터 영어권 장로를 세웠다. 장로를 세우기 전에도 안수집사들을 당회에 초청하고 영어권의 의견을 적극 반영, 존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얼마전 완공된 2세 빌딩도 애초 교육관을 짓기 위해 논의되던 것이지만 당회에서 2세 의견이 적극 반영돼 2세 빌딩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빌딩을 짓는 가운데 1세들의 희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2세들이 모기지 페이먼트를 모두 감당하고, 1세들은 주차장 확장 비용을 감당했다.
4) 제일 좋은 예배 시간을 허락: 주일예배의 황금시간이라고 하는 오전 시간(9시~11시)을 영어권에 양보하는 것은 파격적인 변화였다. 한어권 장년 성장이 주춤하는 것은 필연적인 희생 요소였지만 과감히 감행했다. 희생 없이 성장은 없다. 결과적으로 영어권도 성장하고 한어권도 잠시 주춤했지만 결과적으로 1세 2세가 건강하게 함께 성장하는 모습으로 자랄 수 있던 기반이 됐다.
왜 해야 하는가?
왜 한인교회가 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은 자명하다. 유럽계통의 이민교회는 1세대만 지나도 없어진다. 영어만 잘 할 수 있으면 외모가 같기 때문에 미국인으로 융화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계는 조금 다른 문제다.
김 목사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도 겉모습이 동양인이면 자주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영어 참 잘한다’는 질문을 받곤 한다”며 “한인 2세들이 미국 교회에 가서도 잘 어울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 목회자들을 만나 대화해 보면 한인들은 미국 교회 안에서도 골칫거리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말이다. 교회에 깊이 참여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사역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한인들끼리 모여 교제하는 정도에 그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김용훈 목사는 “해답은 한인교회에 있다”고 했다.
“나의 세대에 화가 임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고 머물면 안됩니다. 때로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2세들을 키워야 합니다.그들의 능력이 극대화되고 귀한 선교적 재원으로 클 수 있는 기반이 한인교회에 있습니다.”
어느새 미주에서도 성공적인 1세 2세 협력 모델에 손꼽히는, 아니 오히려 유일하리만큼 드문 성공 사례로 꼽히는 열린문교회. 타주 한인교회는 물론 주변 타인종 교회에서도 세미나 등 협력 모델을 배우려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 열린문교회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고 현재의 자리까지 오게 된 비결은 2세를 위해 1세의 기득권은 과감히 양보하고 ‘(1세와 2세는) 살아도 죽어도 함께 하겠다는 신념’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열린문교회 김용훈 목사. 1.5세인 그는 영어권 목회자의 꿈을 품고 사역을 시작했으나 1세와 2세의 다리가 되는 1세 목회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 |
한인 미국 이민역사가 100여년을 훌쩍 넘었지만 본격적인 이민 붐이 불고 한인교회가 차례로 생겨나기 시작한 횟수를 따지자면 약 40여년. 소통에 서툴고, 낯선 이민 생활에 발맞춰 가기도 바빴던 한인들이 차일 피일 미뤄왔던 차세대 사역의 중요성이 이제는 발 등 앞에 떨어진 불이 됐다.
무비자 시대가 열리면서 비자 변경의 길이 줄어들고 거주 한인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한국의 눈부신 발달로 역이민이 늘고 유학생들도 졸업 후 한국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10년 전 IMF 같은 변수만 없다면 이대로 한인 1세의 숫자는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교회, 일본교회 등 초반에 강세를 보였던 아시안계통 교회들이 모두 유명무실해 진 현실 앞에 한인교회가 서 있다. ‘전철를 밟을 것이냐, 개혁할 것이냐’는 갈림길에 서 있는 한인교회들이 해야할 선택은 자명하다.
김용훈 목사는 “중국 교회의 경우 1세 자국의 문화나 전통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서 2세들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소통의 지혜를 잃어버림으로 자처한 실패의 타국 1세 교회를 바라보며 한인교회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에게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무엇이 가능하게 했는가?
1세 교회와 2세 교회의 협력과 건강한 의존 관계, 무엇이 가능하게 했을까? 가장 핵심 가치를 꼽는다면 “커뮤니케이션(소통)”이었다.
커뮤니케이션 1) ‘상호의존’ 명칭의 이해
먼저 상호의존이라는 명칭에 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목사는 “동일하게 ‘상호의존’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이해가 다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다.
“상호의존이란 부부 같아요.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가 아닙니다. 가장 성숙한 상호의존교회라는 것은 1세대 교회와 2세대 교회가 독립교회로서 활동할 성숙도가 있지만 하나님 나라라는 더 큰 이유를 위해 불편함을 불구하고 같이 있기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열린문교회도 완전한 상호의존교회는 아니에요. 과정에 있지요.”
커뮤니케이션 2) 2세 목회자와의 소통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면 2세 목회자와의 소통이 관건이다. 사실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실제적인 첫 소통의 단계를 거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세와 2세 사이에서도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가 다르니까 한어권 목회자는 계속 함께 가야겠다 생각해도 영어권 목회자들은 어느 시점에 가서 독립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열린문교회의 경우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처음에는 대학, 신학교 후배들을 모셔다가 2세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같은 신학교에 다니고 같은 은혜를 받았으니 마음이 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영어권 목회자들이 떠나면서 깨닫게 됐죠. 1세 목회자는 ‘2세 목회자를 잘 키워서 같이 목회해야 겠다’ 생각해도 2세 목회자는 ‘1세 교회 밑에 있을 때는 백날 해도 안된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생각이 달라서 생긴 어려움이었습니다.
김 목사는 우선 생각이 공유돼야 한다고 했다. 상호의존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교회의 비전, 나아가서는 소소한 교회 결정권 까지 소통과 공유의 영역은 넓어져야 한다.
그래서 열린문교회는 2세 사역자를 청빙할 때 3C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 중에서도 사역자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융화력(compatibility)’, 두번째로 ‘인격(Characteristics)’, 세번째로 ‘능력(Confidence)’을 본다. 서로의 마음을 소통하고 비전을 나누는 가운데 겸손한 성품을 가지고 잘 융화하는 사역자가 함께, 오래 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어권 김용훈 목사(우)와 영어권 이대한 목사(좌)가 지난 여름 새로 준공된 워십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커뮤니케이션 3) 신뢰 관계
소통은 존중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10년 간 분쟁 없는 교회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간의 쌓아온 신뢰를 기반으로 했다.
김 목사는 “신뢰는 먼저 그림이 정확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2세 목회자를 청빙해 올 때 ‘우리는 아무리 2세 교회가 커져도 독립하지 않는다’고 명시합니다. 독립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축복해 주지만 교회의 재산권은 주장할 수 없다고 정확한 선을 긋습니다.” 1세대가 생각하는 즉 교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비전에 대한 명확한 제시가 신뢰의 첫째 요소다. 결과적으로 논리가 강한 2세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두번째 요소는 교회 전체가 2세 목회자를 동역자로 존중해 주고 우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담임목사의 몫입니다. 담임 목사가 하면 장로님들도 따라합니다. 그것을 위해 세미나도 많이 하고, 영어권 교회가 어느 정도 커지고 나서는 2세 장로가 없을 때이지만 2세 안수집사들을 당회에 함께 참여하도록 해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가장 구체적 존중은 큰 결정을 할 때 그 사람들의 의견을 포함시키고 들어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역자들이 서로 오랫동안 신뢰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금은 교회 사역자들이 늘어나고 하는 일이 다양해져 잘 할 수 없지만 예전에는 매일 만나 식사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김 목사는 “당시 5명의 교역자들이 매일 식사하면서 편안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를 쌓았다”며 “지금도 영어권 한어권 수련회도 같이 하면서 서로 접촉점을 늘이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으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게 김 목사의 지론이다.
김용훈 목사에 따르면 ‘인간은 죄인이기에 가만히 두면 악한 길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진리의 토대 위에 의도적인 접촉점을 꾸준히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시행착오가 왜 없었을까? 그러나 ‘함께 하고자 하는 꿈’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향한 비전이 명확하다면 두려울 것은 없었다. 김용훈 목사가 회고하는 큰 시행착오는 맥클린 지역에서 현재 헌돈 지역으로 교회 예배당을 옮기면서다.
“제일 어려웠던 때는 여기로 이사올 때입니다. 이사오기 바로 전에 장소가 협소해서 길 건너 학교에서 잠시 예배 드릴 때가 있었습니다. 영어권 일부 교인들이 교회도 큰 교회 사놓고 당신들이 돈을 못내면 우리가 다 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대 의견이 있었습니다. 투표를 하는 데 “한어권, 영어권 따로 물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영어권이 안가겠다고 하고 한어권에서 가겠다고 하면 갈라질 수 없으니 못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영어권 교회가 커지고 한어권이 30명 밖에 안 남았는데, 당신이 건물을 팔고 가고 싶은데 한어권이 노 하면 어떻게 할 건가?”라고요. 공동의회를 하면 한어권이 많으니까 한어권 의견이 반영되게 돼 있습니다. 예산이 같아지면 발언권도 강해지는 것이죠. 그 당시 영어권의 회중 및 예산 비율 의견 반영율은 10%, 멀리 바라보고 같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추진했습니다. 영어권 교회에서 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희생할 때 희생해야 하는 데 그것이 잘 안됐습니다. 한어권은 거의 한 명도 떠나지 않았지만, 2세들은 3분의 1 이상이 떠났습니다. 거의 다시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현재도 한어권, 영어권 회중 비율로 예산과 모든 결정권을 양분하고 있다. 원칙은 처음부터 정확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주일 장년 출석 비례제”를 채택했다. 현재 영어권은 25%를 감당하고 있다.(현재 한어권 장년 출석: 1800명 이상, 영어권 장년 출석: 600명 이상)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일방적인 부모 희생을 전제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숨은 기대감’이 있는 경우도 있다. 교회는 이런 ‘기대감’이 갈등을 불러오는 데 주목하고 차후 영어권이 커지고 한어권이 작아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소소한 변화, 큰 열매
작은 변화였지만, 돌아보면 큰 열매를 낳았던 열린문교회의 4가지 비결이 있다.
1) 교회명 변경: 한인정통장로교회에서 열린문교회로 변경했다. 기존 이름으로는 2세를 품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세 교회는 아무리 그래도 한인이 주축이 되겠지만, 한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외국인 친구를 데려올 수 없는 한계성을 느낀다. 이름이 한인에서 나아가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이름이 돼야 겠다고 생각해 10년 간 리더십과의 회의와 설득 끝에 변경할 수 있었다.
2) 장소와 시설의 변화: 두 교회가 잘 성장하려면 서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맥클린 지역에서 10여년 전 교회를 옮겨올 당시 말도 많고 경비도 많이 들었지만, 이전을 결심했기에 영어권 성장의 촉매제가 됐다.
3) 영어권 교회 지도층 세움: 한어권의 축복을 받으며 5년 전 영어권 안수집사를 세우고 2년 전부터 영어권 장로를 세웠다. 장로를 세우기 전에도 안수집사들을 당회에 초청하고 영어권의 의견을 적극 반영, 존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얼마전 완공된 2세 빌딩도 애초 교육관을 짓기 위해 논의되던 것이지만 당회에서 2세 의견이 적극 반영돼 2세 빌딩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빌딩을 짓는 가운데 1세들의 희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2세들이 모기지 페이먼트를 모두 감당하고, 1세들은 주차장 확장 비용을 감당했다.
4) 제일 좋은 예배 시간을 허락: 주일예배의 황금시간이라고 하는 오전 시간(9시~11시)을 영어권에 양보하는 것은 파격적인 변화였다. 한어권 장년 성장이 주춤하는 것은 필연적인 희생 요소였지만 과감히 감행했다. 희생 없이 성장은 없다. 결과적으로 영어권도 성장하고 한어권도 잠시 주춤했지만 결과적으로 1세 2세가 건강하게 함께 성장하는 모습으로 자랄 수 있던 기반이 됐다.
왜 해야 하는가?
왜 한인교회가 해야 하는가? 그 질문에 답은 자명하다. 유럽계통의 이민교회는 1세대만 지나도 없어진다. 영어만 잘 할 수 있으면 외모가 같기 때문에 미국인으로 융화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계는 조금 다른 문제다.
김 목사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도 겉모습이 동양인이면 자주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영어 참 잘한다’는 질문을 받곤 한다”며 “한인 2세들이 미국 교회에 가서도 잘 어울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 목회자들을 만나 대화해 보면 한인들은 미국 교회 안에서도 골칫거리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말이다. 교회에 깊이 참여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사역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한인들끼리 모여 교제하는 정도에 그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김용훈 목사는 “해답은 한인교회에 있다”고 했다.
“나의 세대에 화가 임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고 머물면 안됩니다. 때로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2세들을 키워야 합니다.그들의 능력이 극대화되고 귀한 선교적 재원으로 클 수 있는 기반이 한인교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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