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처럼, 추수감사절을 위해 그로서리 카드를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모은 카드를 주변에 있는 구호 기관에 보내어 가난한 이들이 추수감사절에 신선한 음식을 사 먹도록 도왔습니다.

얼마 전에 지역 소식을 보니 채소와 과일 값이 올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에서는 집에서 기른 채소나 과일을 모아 가까이에 있는 Food Bank나 Food Pantry에 보낸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귀가 솔깃했습니다. 올 해는 철이 지났지만, 내년 봄에는 한 번 생각해 봄직한 일입니다. 내가 손수 가꾼 채소나 야채가 가난한 이들의 식탁에 올라간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보통 Food Bank나 Pantry에서는 Dry Food만을 제공합니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이 신선한 음식을 대할 기회가 없습니다.

추수 감사절에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낼 달콤한 시간을 생각하십니까? 만일 이 귀한 시기에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에게 갇힌 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리는 행복의 일부를 나누고 베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내 가족을 위해 식탁을 준비하듯, 알지 못할 가족의 식탁을 돕는 마음으로 그로서리 카드를 구입하셔서 기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 가족의 추수 감사절 식탁을 위해 사용하는 식비의 십일조(10분의 1)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성서적인 기준입니다. 우리의 과거 나눔은 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넘칠 수 있기 바랍니다.

매 년, 이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가 낸 헌금 중에서 일부를 가지고 카드를 사서 구호기관에 보내면 되지, 왜 굳이 사서 내라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교우들이 드리는 헌금의 큰 부분이 선교와 구제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교우들께 불편을 드리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가난한 사람들을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손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갑니다. 내 소비 중에서 얼마를 나눌지를 고민하는 것 그리고 굳이 카드를 사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난이 그만큼 심각한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 혼자만 가난에서 벗어나려 하면 안 됩니다. 또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목표할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며, 가난을 벗어나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가난을 치유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하지만, 작은 것으로라도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제공한 카드로 인해 한 가족이 하루만이라도 가난의 쓴 맛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충분히 값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참여를 기대합니다. (2011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