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마음선교회(이사장 최덕순 목사)가 발행하는 계간 <손과마음> 제3호에 실린 해당 글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손과마음선교회는 변화와 해방을 꿈꾸는 북한 동포들에게 생명과 자유와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인도적 구호단체다.
20여년 전, 입담 좋기로 소문난 소설가 황석영 씨가 김일성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한동안 그곳에 살면서 북한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400여 페이지의 책을 발간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살고 있었네-황석영 북한방문기(1993)’라는 책이다. 하지만 황석영은 이 책을 출간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몇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이 남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북한을 남한의 개인주의 또는 자본주의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 자체의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소설가다운 관점과 감각으로 풀어간 그의 입담은 한편으로 감동을 주었고, 남한 사람들에게 인간의 차원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황석영의 주장은 북한의 선전선동 책략에 부화뇌동하는 과장된 선전물임을 알아야 한다. 즉, 북한 체제의 오류와 거짓을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포장해 착각에 빠지게 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60년 넘도록 계속되는 비극적 진실을 외면하고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선전하는 일이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서 과연 정직한 주장인가를 되새겨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여전히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적어도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북한 사람들이 북한식 체제 가운데 겪어야 하는 고통은 단순하지 않다. 정신적·육신적으로 북한 사람들을 압박하는 정치적 지배장치들이 기묘하고 철저하기 때문이다. 정상적 인간을 비굴한 노예로 만드는 전문기술, 그 심리적 노하우를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김일성, 김정일 집단이다. 이들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적 기능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 저변을 철저히 공략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난 60년 넘도록 비인간 압제에 시달리면서도 북한 사람들이 한번도 제대로 항거하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북한 체제는 김일성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거대한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북한에서 인간의 생명과 생애는 오직 김일성이라는 유일신의 영광을 위해 드려져야 하고, 개인의 어떤 자유도 생각도 허용되지 않는다. 온 사회가 그물처럼 촘촘히 짜여진 광신적 신앙체제 아래, 북한 사람의 일생은 하나의 도구와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2300만 북한 사람들이 과연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상적 인간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힘든 고통이 이들을 덮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 사람들은 어떤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 살펴보자. 수백, 수천의 고통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대표적 고통 10가지를 소개한다. 정신적 고통 5가지, 육체적 고통 5가지가 그것이다. 적어도 ‘손과마음’ 회원 여러분이라도 북한 동포의 고통을 이해해 주시고 하루 빨리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먼저 북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정신적 고통 5가지를 열거한다. 북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고통을 감내해 왔기 때문에 특별히 고통스러움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처럼 자유를 누려온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남한에 온 탈북 형제들은 남한 생활에 적응하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였는가를 자각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고통
북한에서는 당 방침에 의해 사적인 모임을 제한한다. 두 명이 어떤 모임을 갖는 것은 금한다. 또 5명 이상 모이는 곳에서는 술이 허용되지 않는다. 술주정을 가장해 당과 체제에 대한 자기 생각과 불편, 불만을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한 마음으로 당이나 수령에 대해 불평하는 일은 어렵다. 혹시 불평하는 일이 있다면 다섯 명 가운데 한두 명은 반드시 당에 고발하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자기 속내를 들러낼 수 없다.
그런데 북한은 하부 조직까지 철저한 감시 장치를 해두고 있다. 각 지역에 지역반장과 비서를 두어 관할 지역을 철저히 감시한다. 지역반장은 20여명의 인민반장을 두어 결과를 매일 보고받는다. 인민반장은 20-30가구의 가정을 감시하고, 3-5가구를 직접 감시하는 ‘오조장’으로부터 감시결과를 보고받는다. 감시 내용은 가구마다 가족의 숫자에 변동이 없는가, 무단 숙박자가 없는가, 가족들의 특이 동향이 없는가 등이다. 말단 ‘오조장’으로부터 매일 보고받는 지역반장이나 비서는 400-600가구를 관할하는 절대 권력자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도 감시 장치가 가동된다. 작업반장, 세포비서, 청년초급단체 비서 등을 둬 상부에서 하부까지 조직적으로 구성원들을 감시하고 있다. 매일 출근률과 집단 및 개인의 동향 등을 상부에 보고한다. 지역이나 직장의 감시 시스템 위에 또 하나의 감시 구조가 가동된다. 그것은 당, 정치보위부, 인민보안성(구 안전부) 등 3곳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감시다. 2-3중의 감시를 통해 사실상 꼼짝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북한의 개인과 가정은 당으로부터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는 벌거숭이 상태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은 감시 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동물원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 모든 말과 행동이 감시받는 체제에서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의 심리와 인성이 어떠할지 생각해 보라. 인격과 자존감이 무시당하고, 사적인 생각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고발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긴장감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본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한 탈북자는 남한에 와서야 일생 처음으로 안식을 취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② 자신을 고백하고 남을 고발하는 고통
북한에서 생활하려면 ‘생활총화’를 각오해야 한다. ‘생활총화’란 소위 ‘자아비판’을 말한다. 일상생활 가운데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나 김일성, 김정일 교시에 위배되는 일이 없었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를 고백하는 모임을 ‘생활총화’라 한다. 일반인의 경우 1주일마다, 농민의 경우 10일마다 한번 씩 갖는다. 그러나 예술인의 경우 이틀마다 가지는데, 당의 방침과 지시를 전달하는 선전선동대 구성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정신이 똑바로 돼야 한다는 취지다.
생활총화, 즉 자아비판의 자리에서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시간을 갖는다. “당의 10대 원칙이나 수령님의 교시에 비춰 나는 이런 잘못을 하였다. 잘못된 내용은 구체적으로 이러하다. 앞으로 이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대책은 이러하다” 등을 조직원들 앞에서 낱낱이 고백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심각한 잘못을 고백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모면하려 꾀를 부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변명을 유창하게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심각한 상황은 따로 있다. 자기비판이 끝나면, 호상비판 시간이 오는데, 그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순간이다. 즉 내가 남을 비판하고 고발해야 하는 시간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 사정없이 비판함으로서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사람들은 서로 고함을 지르며 부르르 치를 떨고 상대를 노려보며 철천지 원수처럼 으르렁거린다. 억울한 입장에 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자리에서 자칫 꼬투리를 잡히면 개인 뿐 아니라 가족이 희생되는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의 작은 흠이라도 뒤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어려서부터 이런 자기비판과 호상비판에 길들여진 북한 사람들의 마음과 심리가 과연 어떠할까? 평생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상당한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 물론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생활총화’를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그래서 현실은 ‘생활총화’가 형식적 자아비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계속>.
20여년 전, 입담 좋기로 소문난 소설가 황석영 씨가 김일성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한동안 그곳에 살면서 북한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400여 페이지의 책을 발간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살고 있었네-황석영 북한방문기(1993)’라는 책이다. 하지만 황석영은 이 책을 출간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몇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이 남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북한을 남한의 개인주의 또는 자본주의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 자체의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소설가다운 관점과 감각으로 풀어간 그의 입담은 한편으로 감동을 주었고, 남한 사람들에게 인간의 차원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황석영의 주장은 북한의 선전선동 책략에 부화뇌동하는 과장된 선전물임을 알아야 한다. 즉, 북한 체제의 오류와 거짓을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포장해 착각에 빠지게 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60년 넘도록 계속되는 비극적 진실을 외면하고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선전하는 일이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서 과연 정직한 주장인가를 되새겨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여전히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적어도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북한 사람들이 북한식 체제 가운데 겪어야 하는 고통은 단순하지 않다. 정신적·육신적으로 북한 사람들을 압박하는 정치적 지배장치들이 기묘하고 철저하기 때문이다. 정상적 인간을 비굴한 노예로 만드는 전문기술, 그 심리적 노하우를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김일성, 김정일 집단이다. 이들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적 기능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 저변을 철저히 공략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난 60년 넘도록 비인간 압제에 시달리면서도 북한 사람들이 한번도 제대로 항거하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북한 체제는 김일성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거대한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북한에서 인간의 생명과 생애는 오직 김일성이라는 유일신의 영광을 위해 드려져야 하고, 개인의 어떤 자유도 생각도 허용되지 않는다. 온 사회가 그물처럼 촘촘히 짜여진 광신적 신앙체제 아래, 북한 사람의 일생은 하나의 도구와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2300만 북한 사람들이 과연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상적 인간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힘든 고통이 이들을 덮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 사람들은 어떤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 살펴보자. 수백, 수천의 고통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대표적 고통 10가지를 소개한다. 정신적 고통 5가지, 육체적 고통 5가지가 그것이다. 적어도 ‘손과마음’ 회원 여러분이라도 북한 동포의 고통을 이해해 주시고 하루 빨리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먼저 북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정신적 고통 5가지를 열거한다. 북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고통을 감내해 왔기 때문에 특별히 고통스러움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처럼 자유를 누려온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남한에 온 탈북 형제들은 남한 생활에 적응하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였는가를 자각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고통
북한에서는 당 방침에 의해 사적인 모임을 제한한다. 두 명이 어떤 모임을 갖는 것은 금한다. 또 5명 이상 모이는 곳에서는 술이 허용되지 않는다. 술주정을 가장해 당과 체제에 대한 자기 생각과 불편, 불만을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한 마음으로 당이나 수령에 대해 불평하는 일은 어렵다. 혹시 불평하는 일이 있다면 다섯 명 가운데 한두 명은 반드시 당에 고발하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자기 속내를 들러낼 수 없다.
그런데 북한은 하부 조직까지 철저한 감시 장치를 해두고 있다. 각 지역에 지역반장과 비서를 두어 관할 지역을 철저히 감시한다. 지역반장은 20여명의 인민반장을 두어 결과를 매일 보고받는다. 인민반장은 20-30가구의 가정을 감시하고, 3-5가구를 직접 감시하는 ‘오조장’으로부터 감시결과를 보고받는다. 감시 내용은 가구마다 가족의 숫자에 변동이 없는가, 무단 숙박자가 없는가, 가족들의 특이 동향이 없는가 등이다. 말단 ‘오조장’으로부터 매일 보고받는 지역반장이나 비서는 400-600가구를 관할하는 절대 권력자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도 감시 장치가 가동된다. 작업반장, 세포비서, 청년초급단체 비서 등을 둬 상부에서 하부까지 조직적으로 구성원들을 감시하고 있다. 매일 출근률과 집단 및 개인의 동향 등을 상부에 보고한다. 지역이나 직장의 감시 시스템 위에 또 하나의 감시 구조가 가동된다. 그것은 당, 정치보위부, 인민보안성(구 안전부) 등 3곳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감시다. 2-3중의 감시를 통해 사실상 꼼짝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북한의 개인과 가정은 당으로부터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는 벌거숭이 상태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은 감시 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동물원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 모든 말과 행동이 감시받는 체제에서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의 심리와 인성이 어떠할지 생각해 보라. 인격과 자존감이 무시당하고, 사적인 생각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고발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긴장감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본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한 탈북자는 남한에 와서야 일생 처음으로 안식을 취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② 자신을 고백하고 남을 고발하는 고통
북한에서 생활하려면 ‘생활총화’를 각오해야 한다. ‘생활총화’란 소위 ‘자아비판’을 말한다. 일상생활 가운데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나 김일성, 김정일 교시에 위배되는 일이 없었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를 고백하는 모임을 ‘생활총화’라 한다. 일반인의 경우 1주일마다, 농민의 경우 10일마다 한번 씩 갖는다. 그러나 예술인의 경우 이틀마다 가지는데, 당의 방침과 지시를 전달하는 선전선동대 구성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정신이 똑바로 돼야 한다는 취지다.
생활총화, 즉 자아비판의 자리에서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시간을 갖는다. “당의 10대 원칙이나 수령님의 교시에 비춰 나는 이런 잘못을 하였다. 잘못된 내용은 구체적으로 이러하다. 앞으로 이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대책은 이러하다” 등을 조직원들 앞에서 낱낱이 고백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심각한 잘못을 고백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모면하려 꾀를 부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변명을 유창하게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심각한 상황은 따로 있다. 자기비판이 끝나면, 호상비판 시간이 오는데, 그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순간이다. 즉 내가 남을 비판하고 고발해야 하는 시간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 사정없이 비판함으로서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사람들은 서로 고함을 지르며 부르르 치를 떨고 상대를 노려보며 철천지 원수처럼 으르렁거린다. 억울한 입장에 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자리에서 자칫 꼬투리를 잡히면 개인 뿐 아니라 가족이 희생되는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의 작은 흠이라도 뒤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어려서부터 이런 자기비판과 호상비판에 길들여진 북한 사람들의 마음과 심리가 과연 어떠할까? 평생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상당한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 물론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생활총화’를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그래서 현실은 ‘생활총화’가 형식적 자아비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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