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요, 구세주로 믿는 영적 진리를 말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류가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자기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 아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책임지시고 죄의 형벌인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의 죄를 한꺼번에 다 용서해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그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덕을 세우며 살아가야 되겠지만 그 전체를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가 희생당하고 참고, 끝내는 죽기까지라도 그 사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가르침이 성경의 말씀이다.

이런 기독교의 가르침을 지켜 살아가려면 많은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달콤한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은 아프고, 힘든 것이다. 그 사랑은 고독한 사랑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시53:3)

구약성경 창세기에 소돔과 고모라성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 성을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려 멸망하실 때 롯과 그 아내, 그리고 딸 둘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성을 빠져 도망가라고 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 결과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사랑은 쾌락적이고, 정욕 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단순히 사람을 좋아하고, 친근히 여기는 그런 사회적이고, 교제적인 사랑을 뛰어넘어 자기 혼자만의 수고와 땀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을 가르켜 빛을 남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고독교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앙인들에 대해서 말할 때 입만 살아서 움직인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기독교가 세상에 본이 되지 못하는 일들과 사건들이 일어날 때 마다 기독교를 바라보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성경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이렇게 말씀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2;15) 한 사람의 진실한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통하여 기독교를 자랑하고, 칭찬하게 됨으로 인해서 기독교는 세상에서 기특교가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교회로 오게 되고, 사람들의 입에서 사랑이 풍성한 기독교로서 인정받게 된다.

이러한 기특교는 한 사람, 한 가정, 그리고 한 사회, 나라를 넘어 전 세계에 까지 전파되게 된다. 1884년 대한민국의 제물포(지금의 인천)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발을 내려놓음으로 인해서 한국이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고, 130이 지난 현재의 한국은 세계가 놀랄만한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서 기독교가 해야 할 본연의 사명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부탁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기독교는 온 세상에 가득하도록 사랑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기독교가 사랑을 실천하는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사람들의 입에서 기특하다고 칭찬받을 때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