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저희가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사무엘하 5:11)

2005년 히브리 대학의 고고학자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는 다윗성(city of David)을 발굴하였다. 마자르가 발굴한 지역은 비잔틴 시대와 2차 성전 시대의 유적터로 그녀는 이 곳에서 거대한 석조 건물(Large Stone Structure)을 발굴하였다. 비록 이 석조 건물의 본래 크기는 알 수 없지만, 발굴된 건물의 동쪽 벽 두께는 약 6.5미터에 이르며, 이 건물의 북쪽 벽 약 30미터가 발견되었다. 한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집으로서는 지나치게 큰 건물이다.

이 지역은 이미 1961-1967년 영국의 고고학자 캐트린 캐년(Kathleen Kenyon)이 발굴했던 지역이다. 캐트린 캐년은 이 지역을 발굴하면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약 1.3미터의 초기 이오닉 기둥 머리(Proto-Ionic capital)를 발견하였다. 캐년에 의해 발견된 이 기둥 머리는 전형적인 왕실 건축 양식으로, 한 때 이 곳에 이스라엘 왕궁이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둥 머리가 포함된 궁전이 어느 시대인지는 학자들 간에 논란이 되었다.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은 그 시대를 다윗과 솔로몬 시대로 이해한 반면, 진보적인 학자들은 훨씬 후대로 이해하였다.


마자르는 이 거대한 석조 건물(Large Stone Structure)의 연대를 토기 분석(pottery analysis)과 유기물의 화학 실험(chemical examination of organic material)을 통하여 주전 10세 초로 이해한다. 그러면서 마자르는 이 건물을 사무엘하 5:11절에 기록된 다윗의 백향목 궁(House of Cedar)으로 주장한다. 다윗 궁전은 다윗성 전체가 잘 보이는 북쪽 언덕 높은 곳, 가나안의 여부스 족속이 쌓은 계단식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이 위치는 기드론 골짜기와 중앙 골짜기, 성의 동쪽과 서쪽 전체가 잘 보이는 곳이다. 이 석조 건물은 북쪽에서 공격하는 적을 염두에 두고, 보다 북쪽에 성벽 건축까지 계획에 둔 위치이다. 사무엘하 5:17,18절에 따르면, 다윗은 블레셋의 공격에 맞서 요새로 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았다 함을 블레셋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해처로 나가니라. 블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여기에서 ‘다윗이 듣고 요해처로 나갔다’는 이 문장의 본래의 의미는 다윗이 듣고 (자기 궁전을 떠나) ‘요새로 내려 갔다(hd"(WcM.h;-la, dr,YEßw: dwIëD" [m;äv.YIw:)’는 의미이다. 곧 다윗 궁전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블레셋과의 전쟁을 위하여 다윗성을 잘 방어할 수 있는 궁전에서 남쪽,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는 말이다. 마자르가 발굴한 거대한 석조 건물의 위치는 이 같은 성경의 본문과 잘 일치한다.

성경에 기록된 다윗 궁은, 예루살렘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높은 궁전에서 목욕하는 여인 밧세바를 볼 수 있었다 (삼하 11:2). 여기에서 밧세바의 집은 다윗궁 가까운 남쪽 아래 쪽에 위치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단 선지자는 밧세바 사건으로 인하여 다윗의 죄를 책망하였고, 하나님의 벌은 오랫동안 다윗의 집에 임하게 되었다.


다윗 왕궁 뜰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이사야, 예레미야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행실, 사회 정의,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왕과 백성들에게 선포하였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장차 태어날 모든 세대에게도 해당되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사 2:4).

석조 건물(Large Stone Structure)은 솔로몬의 새 궁전 건축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마자르는 석조 건물에서 유다 왕국의 말기, 두 귀족에게 속했던 진흙 인장(bullae) 두 개를 발굴하였다. 다윗에 의해 건축되어 바벨론에 의해 멸망되기까지 사용된 석조 건물에서 발견된 두 개의 인장은 바스훌의 아들 그달랴의 인장(위)과 셀레먀의 아들 유갈의 인장(아래)이다. 예레미야 38:1-3절에 이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이 있다: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가 취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이에 그 방백들이 왕게 고하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치 아니하고 해를 구하오니 청컨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마자르에 의해 발견된 거대한 석조 건물(Large Stone Strucutue)과 엘라 골짜기에 위치한 히르벳 케야파(Khirbet Qeiyafa)의 발굴 결과, 이스라엘은 이미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강력한 국가 체제였음이 입증되었다. 이런 증거들은 다윗과 솔로몬을 신화적 인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는 학자들을 무척 당혹스럽게 하는 명확한 증거들이다.

.
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