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음란물의 확산은 어떤 제동장치를 한다 해도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음란물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상은 인터넷 발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정소를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음란물은 이제 많은 음란물 중독자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음란물은 성인 뿐 아니라 초등학생까지 해당하고 있어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음란물중독을 과연 치료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지만 전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본 장에서는 치료의 원리와 과정에 대해 다루기로 하자.

1. 성적 본능을 정확하게 이해하라

음란물 치료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성적 본능과 관련되는 것이다. 모든 음란물이 그 형태를 달리하더라도 성적인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것은 음란물의 정의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인터넷에서 음란물은 음란 사진, 음란 동영상, 음란소설 등과 음란 채팅 등 인터넷 상에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란성 정보를 총칭한다고 했다. 음란물에는 성적 충동을 일으키게 만드는 이성의 나체, 성행위 장면이 담긴 사진, 비디오, 소설, 만화, 그림, 성기구 등을 모두 해당한다.

거기에는 비교적 건전한 나체 사진도 있지만 대부분 감추어진 욕구의 표현이므로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와 규범을 벗어난 내용이 대부분이다. 특히 문제로 지적되는 점들은 성기 노출 포즈, 적나라한 성행위, 강간, 근친상간, 변태 성행위, 동성애, 아동 추행, 동물과의 성행위 등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 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핵심은 음란물이 인간의 성적 본능을 자극해 무제한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실제 음란물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대개 타인의 통제를 받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음란물을 접할 수 있으며, 원하는 만큼 많은 양의 자극적인 음란물을 계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그 바탕에 성적인 특성이 자리하여 인간의 성적 본능을 자극하는 방법을 통해서 음란물의 확산을 꽤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본능을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성적 본능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음란물은 성적 본능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를 고찰해야 한다. 인간에게 성(性)의 강력한 힘은 종족을 보존하도록 복잡한 호르몬의 작용으로 표현되는 본능과 인간의 마음에 프로그램된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그런 이유로 성은 건강한 방법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인간성마저 손상시키는 왜곡된 방법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이때 음란물중독은 성이 왜곡된 방법으로 표현되는 것과 관련된다. 음란물이 성을 정상적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음란물에 중독된 사람은 대개 처음에는 성인잡지를 보다가 점차 포르노를 빌려보거나 포르노에 집착하는 증상을 보인다. 결혼한 사람의 경우 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소극적이거나 음란물을 위주로 성을 발산하려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부부와 함께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고,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어려워지게 된다. 이로 인해 점차 부부관계에도 이상이 생겨 가정생활이 전체적으로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이것이 나중에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性)중독자로 이행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은 ‘익명의 성 중독자들(Sexaholics Anonymous)'이라는 모임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모임은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자기 파괴적임을 인정하는 남녀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는 성을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표출하는 문제임을 시사한다.

음란물중독을 치료하기 위하여 인간의 성적 본능을 이해하는 것은 치료의 일차 문제다.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식으로 다룬다면 본질을 덮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성(性)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것이 정상적으로 사용되지 못할 때 추한 것이 되고, 오히려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전락된다. 치료자는 인간의 성적인 본능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성적 본능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음란물의 바탕에 성적인 본능이 자리함을 간과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성적 본능은 굳이 프로이트를 들추지 않더라도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성욕에 대한 문제와 씨름하고 갈등하면서 살고 있다. 성적 본능으로 인간은 사회적으로 불미스러운 사건도 일으킬 수 있고, 개인적으로 수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살고 있다. 여기에 음란물은 인간의 성적 본능과 호기심 자극 수단이기에 인류가 생존하는 그날까지 어떤 형태로든 끝없이 발전할 것이다. 이는 음란물 치료에서 무엇보다 인간의 성적 본능을 이해해야할 이유다.

2. 성적인 호기심에서 벗어나라

음란물 중독은 대개 성적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성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음란물 접속이 점차 빈도를 높여가면서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대에 들어 성적 호기심은 더욱 가중되는 추세다. 각종 미디어 매체들이나 수단들이 성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를 접하는 수단이 용이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적 자극에 일조하여 호기심이 더욱 유발되어간다.

현대의 성은 더 이상 지하에 감춰지지 않는 편이다. 여러 분야에서 성을 중심으로 하는 주제가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더 보이면서 상품 판매에도 은근히 활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인터넷의 발전은 성을 더욱 확산하는데 일조했다. 음란물 사이트가 동영상을 직접 띄움으로써 시각적 자극을 부추겨 절시증적 성적 본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사회적 통제력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통제력으로 제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성을 계속 논의하고 탐구해도 사회적인 힘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혹자는 성 담론이 설교라는 전통을 대체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다. 이제 성은 쾌락의 중요한 수단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날까? 이전에도 시대마다 성에 대한 관심은 한 번도 감소된 적이 없었지만, 왜 오늘날 더 활성화될까? 지금까지 성을 지나치게 억압했던 반작용은 아닐까? 성을 억압하는 고삐가 완전히 풀려서일까? 알 수는 없지만 성 문화가 지금처럼 자유로운 때가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동안 쉬쉬하며 보던 음란 방송도 이제는 ‘성인물’이라는 이름 아래 합법적으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사이트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통제가 불가능하다. 음란물중독 뿐 아니라 성 관련 사회 범죄도 더욱 빈발하고 있다.

그 결과 양심에 거리낌이 되던 자위행위(masterbation)는 일상·보편화되었고, 심지어 변태적 문제인 성도착(perversion)도 개인 행동이나 인격,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공공연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문제시보다 분석적, 가시적, 의미적 가치를 부여하려는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 금지된 행위로 개인의 행동유형 또는 자질로 여겨지지는 않았던 전근대적인 남색(男色, sodomy)조차, ‘하나의 삶의 유형과 형식, 형태(morphology)’일 뿐 아니라 ‘하나의 인물, 과거, 역사적 사례’가 됐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서 음란물중독의 치료는 어렵기만 하다. 사회적 통제에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개인이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개인에게 책임을 구가하면서 구차스럽지만 성에 대한 호기심을 줄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물론 매우 소극적인 치료에 해당한다. 그래도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지 않는가 말이다. 성에 대한 호기심을 줄이면 점차 음란물을 보는 습관을 줄일 수 있고, 대신 다른 건설적인 일, 이를테면 독서나 선행의 긍정적인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이렇게 음란물 중독자들은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고 주변의 다른 좋은 환경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건설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사회적 환경에 순응만 하는 소극적 존재가 아니라 환경을 적절히 이용하거나 대항하면서 생활하는 적극적 존재로 스스로를 발전시킴을 의미한다. 행동의 궁극적 책임은 자신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고 발전되었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은 모든 행동에서 유익한 것과 해악적 결과를 깊이 생각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피해야 할 것은 피해야 한다.

3. 성적 충동을 조절하라

음란물중독은 성적 충동 조절과도 관련이 있다. 음란물중독은 성적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면서 무분별 자행되기 때문이다. 실제 성적 충동은 내면의 욕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음란물 중독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음란물 중독자들은 발휘하고 싶은 성적 욕망을 건전하게 발현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여 반복적, 만성적 그리고 점진적으로 음란물에 집착하는 경우다. 이런 충동성 때문에 음란물중독은 당사자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만들고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성적 충동을 건전하게 발현하지 못하거나 조절하지 못하는 충동성으로 음란물에 빠져들게 되고 급기야 중독으로 이행되어 개인의 존재나 자기 가정 또는 직업생활에도 해를 끼치고 파탄을 가져온다.

물론 성적 충동을 제어하기란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충동의 제어보다는 건전한 발현이 더 바람직할지 모른다. 아직도 끊이지 않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이를 말해준다. 인류의 가장 어렵고도 흔한 갈등이나 범죄의 문제가 바로 성적 본능과 관련된다. 억측이 아니라면 인류가 생존하는 그날까지 성 관련 갈등이나 범죄는 중단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음란물중독은 조금 소극적이지만 성적 충동을 스스로 적절히 조절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런 성적 충동이나 본능의 문제는 더욱 음란물중독을 양산하리라는 어두운 전망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성적 충동과 관련된 음란물중독은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을 때 더욱 심해지는 편이다. 이들은 반복되는 중독에 시달리면서도 가정과 직장에 대해 책임지지 않거나 소홀하다. 이 정도면 성적 충동이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성적 충동이 무엇이기에 그런 행동을 멈추지 못하게 되는가 말이다. 성적 충동을 밝히기 전, 충동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충동(impulse)이란 심리학에서 마음을 자극하는 세력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유발시키는 특성이다. 확실히 충동에는 억제 문제, 긴장감 고조, 그리고 해방감 등 공통적 특징이 있다. 억제 문제는 물론 조절하기 어려운 문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런 현상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가 될 만한 행동을 하려는 충동, 욕구, 유혹을 억제하지 못하는 특성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음란물중독자들은 유달리 성적 충동과 관련된 특성을 갖는다. 음란물중독자들이 성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결과다. 그들은 성적 충동을 의식적으로 억제할 수도 있고 아니할 수도 있고, 그런 행동을 계획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정도를 넘어선다. 물론 이들에게는 성적 긴장감이 고조된 것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충동 행동을 저지르기 전까지 긴장감이나 각성상태가 고조되는 현상이다. 그들에게 성적 충동이 자극되면 일단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반면 해방감이란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성적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벗어나는 느낌을 경험한다. 그러면 성적 충동을 해소하기 위해 일단 음란물을 접하는 행동으로 옮기면 쾌감, 만족 또는 긴장에서의 해방감을 경험하는 형태다. 이들의 충동 행동은 대체로 자아동조 측면이 있지만, 행동으로 옮긴 후 즉각 후회나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점은 심리적 현상에서는 인정되는 편이다.

음란물중독의 치료는 성적 충동을 제어하기도 한다. 어떻게 그것을 제어 또는 통제, 조절할 수 있을까? 관심을 다른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보다 건설적인 면에 집중해야 한다. 할 일이 많아 바쁜 사람은 성적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거나 그곳에 신경을 기울일 에너지도 없다.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이 부부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등한시하는 경향에서 나타난다. 당장 처리할 업무가 많은 사람, 과제를 앞둔 사람들은 그만큼 정신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음란물을 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치료자는 그들의 성실성을 점검하여 무료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해야 할 일에 신경을 기울이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음란물을 보는 것에 탐닉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음란물중독의 치료에서 성적 충동을 조절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즉각적 만족을 경계하라

즉각적 만족은 음란물중독자들에게 최대의 유혹이다. 음란물중독에서 일시적이란 환상이 오래가지 못하는 점이라면, 즉각적 만족이란 기대감이 즉각 이뤄지는 차이 뿐이다. 그들이 쾌락을 찾거나 도피 수단으로 음란물을 이용할 때 그 효과는 항상 즉각 나타나 긴장감은 빠르게 사라지고 흥분과 쾌감이 찾아온다.

그런 점에서 즉각, 그리고 단번에 긴장감을 피하거나 만족감을 얻는데 음란물보다 빠른 길은 없다. 그들은 음란물을 볼 생각만으로 즉시 흥분되고 설레며 가슴이 뛴다. 음란물에 탐닉하다 보면 즉시 쾌감과 스릴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의 만족이 일시적이지만 즉각적이라는 점이 그들에게는 매력이다. 성적 욕구를 지연시킬 능력이 낮지만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이유다. 그들이 정상적으로 성적 발현을 늦추지 못하고 음란물로 인한 즉각적 만족감을 찾게 되면 파국적 결말을 피할 수 없는 데도 말이다. 그들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여 성적 욕구를 충족하지만 효과는 일시적인 데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 순간적 유혹에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강력했던 효과가 점차 감소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다.

사회가 점차 전문화되는 상황에서 모든 기대는 시간적으로 지연되고 있다. 오랜 노력과 정력을 들여야만 바라는 것을 어느 정도 거두게 되고 있다. 이런 특성은 능력과 기술이 부족한 사람들,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구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즉각적인 것에 심취하는 특성이 더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나 기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즉각 대가가 주어지거나 결과를 볼 수 있는 것들에 더 심취하기 쉽다. 인내심이 점차 약화되는 현대인들에게 즉각적인 음란물은 더 기세를 올리며 중독을 부추길 위험성이 높다.

더욱이 음란물은 상업주의에 기반을 두고 더 발전한다. 전세계를 휩쓰는 황금만능주의는 돈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과 더불어 돈 되는 일이면, 부정적 영향과 관계없이 성업을 이룬다. 상업주의에 편승하여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음란물의 범람이 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누구든 원하면 음란물 접속이 가능해진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즉각적 만족보다 노력해서 얻는 성취감이나 만족감에 더욱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5. 음란물중독의 치료 요령

앞에서 치료에 대해 몇 가지를 다뤘다. 대개 성적 본능과 관련된 것으로, 어떻게 조절하고 제어하는가에 치중됐다. 이런 방법은 구체적이라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데 초점을 두고 치료를 진행하는 점에 모아졌다. 그러다 보니 과학적 방법보다는 중독자의 무의식적 심리에 착안해 그 심리를 조절하는 의도가 강했다. 여기서는 단순히 일상적으로 행동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는 단순한 방법으로 그 치료 요령을 다루기로 한다.

1) 스스로 통제력을 향상시키기

음란물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통제력을 길러야 한다. 때로 성적 호기심에서 음란물에 접속해도 그 해악을 생각하고 통제해야 한다. 이는 성적 호기심이 가장 많은 청소년들이 더욱 유의해야 한다. 청소년기는 음란물보다는 성적을 떠나 자신이 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의 좋은 경험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때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전심전력하거나 건전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필수적인 삶의 요소들을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음란물에 빠지면 불필요한 시간을 혼자 비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시간을 아껴서 그 시기에 해야 할 과업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청소년들의 통신중독이나 음란물 중독을 깊게 생각해야 할 이유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원하지 않지만 때로 도박이나 음주, 오락과 같은 해악에 빠져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위험과 유해함을 깨닫고 빠져나와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속 거기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고 자기를 파멸로 몰아가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해악을 주는 행동을 한두 번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음란물에서 빠져 나와 자신의 삶을 충실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더 큰 유익과 승리를 위해서다.

중요한 것은 자기 통제력 향상이다. 반두라(Bandura)는 작인(agent)으로 인간의 생성적 능력을 강조하고 ,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인간의 심리 행동에 관심을 가졌다. 이를 이중 인과모형(dual causal lingkage)으로 표현했다. 능동적 삶을 구성하는 인간에 대한 관점은 그의 사회인지이론 틀 속에 용해되며, 익히 알려진 자기효능감 개념은 인간의 이러한 속성에 대한 철학을 가정한다. 만일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만 반응한다면, 의미나 의지에 있어 자기조절이 불가피한 창의성 같은 심리가 산출하는 개념들은 진가를 발휘하기 어렵다. 실제 인간은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며, 이러한 노력에 의해 사람들은 보다 바람직한 미래를 실현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미래에 대처할 수 있다.

2) 주어진 과제에 충실하기

음란물에서 빠져나오려 많이 고민하고 결심을 한다고 해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해악을 주는 음란물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심을 여러 번 하지만, 어느새 음란물에 또다시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 실망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실망은 삼가야 한다. 지나친 자기비하나 비판은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기운을 잃고 의기소침해져 자신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주 음란물 보기를 중단하려는 노력을 계속 시도하면,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주어진 과제에 충실할 것을 강조해야 한다. 주어진 일이나 하고 싶은 일, 이제까지 해온 즐거운 일을 계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설령 그것이 그들에게 별로 재미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도 하고 나면 분명 기분이 좋아진다. 우선 중독자들에게는 음란물 중독이 자신에게 주는 결과를 분명히 알고 벗어나겠다는 마음으로부터의 결심이 필요하다. 다음에는 자신의 방에 있는 컴퓨터를 다른 가족들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앞에서 기술했듯 습관의 힘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어떤 습관이라도 어느 정도 몸에 배고 나서 이를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버리려는 습관을 유도하거나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접근 통로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바뀔 것이다. 컴퓨터를 공개적인 장소에 놓으면 음란물 접속이 거의 불가능하고, 컴퓨터를 건전하게 이용하는 데 아무 불편이 없다.

이는 자신의 과제, 할 일에 충실하기를 말한다. 자기 일에 충실하면 불필요한 곳에 정신이 활용되지 않는다. 이런 점이 가능하기 위해 목표지향적 삶을 권하고 싶다. 하루라도 목표를 갖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시간 사용에서 차이가 난다. 목표를 갖는 생활은 행동 선택과 지속에 영향을 미치므로, 인간 행동의 이해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목표지향적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내면의 힘도 강하지 못하다. 이 정신적 힘은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점에서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기 능력에 대해 자신감이 없을수록 쉽게 포기하며, 반대로 자신감이 강할수록 그 과제에 많은 노력을 투입하고 행동을 지속하는 시간도 길다. 바움(Baum) 등의 연구에 의하면 기업가들의 일반적인 특성은 기업가로서의 성공적 수행, 즉 4년간 판매 고용 이익의 증가와 관계가 적었다. 그러나 성취하기 바라는 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강한 자기 목표가 있는 기업가들은 점차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혁신적 생산전략과 마케팅 전략을 제안하였으며, 기업을 크게 성장시켰다. 그런 점에서 치료자들은 음란물 중독자들이 과제에 충실하되 목표를 세워나가는 일을 독려해야 한다.

3)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기

음란물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혼자 있으면 여러 생각을 하고, 부정적 행동에 견제해줄 사람이 없어 음란물에 빠지기 더 쉽다. 주중에는 학교나 직장에서 공부나 취미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다 식구들이 귀가했을 때 자신도 귀가해 규칙적인 수면을 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가급적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학생이라면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식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게 좋다. 여러 사람과 공부, 운동, 취미활동을 하면 학습성과나 대인관계가 좋아지고 음란물을 생각할 여지도 줄어든다. 전술한 대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 몰두하는 것이 좋다. 일은 잘못 생각하면 마치 따분하고 하기 싫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쉽지만, 몰두하면 불필요한 고민이나 공상을 하지 않고 성취감과 보람을 맛볼 수 있다.

혼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음란물을 본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혼자서도 중요한 일을 더욱 집중하여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란물중독자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얼마간 혼자 있어도 음란물에 빠져들지 않는다면 해당되지 않지만, 여전히 혼자 있을 때 음란물에 심취한다거나 빠져들면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아직 치료되지 않은 것이므로 기본적인 훈련부터 다시 해야 한다. 우선 음란물이 자신에게 주는 피해를 분명히 확인하고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결심을 한 다음 음란물에 다가갈 통로를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이 내용을 따라 두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이전의 건강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6. 음란물중독의 치료 사례

남고 3학년이다. 외아들이며, 지나친 음란물중독으로 정신과에 입원했다. 정신과에 한 달간 입원했다가 퇴원했지만 힘들어서 상담소에 오게 된 경우다. 부모의 말에 의하면 혼자 방문을 걸어 잠근 시간이 많고 화장실에 가면 두 시간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급기야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정신과에 입원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급기야는 학업을 중단했다. 담임목사님께 상담하다 필자에게 상담치료를 받으러 온 경우다. 내담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담치료를 시도했다.

1) 진단을 위한 기초작업

그는 인터넷 통신을 통해 음란물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거의 매일 접하게 되었고 그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습관적으로 접속하고, 아울러 자위행위를 했다. 공부할 때도 음란물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집중이 잘 안 됐다. 음란물중독이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도록 유도했다. 우선 음란물로 인한 지나친 자위행위를 솔직하게 말하도록 시도했다. 그렇다고 말했다. 내담자는 음란물을 보면서 하루 서너번씩 자위행위를 한 것이다. 그 결과 신체의 생리적 균형을 잃어 정신을 잃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부모에게 알려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고 내담자를 설득했다. 이런 사실을 부모는 전혀 알지 못했다. 치료자는 청소년기에 성욕이 가장 올라오는데 공부에만 집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일러주고, 이해와 협조를 부탁했다.

그는 부모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랬을 것이다. 부모 눈을 피해 혼자 음란물을 보는 행동에 죄책감도 들었을 것이다. 기독 학생인데다 내성적임을 감안하면 심리적 압박감이 더했을 것이다. 그는 사실을 드러낸 것만으로 용서받은 것 같은 후련함이 들었을 것이다. 얼굴에서 상당한 안도감을 볼 수 있었다. 작지만 치료의 출발인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2) 증상 완화를 위한 기본교육

음란물은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동시켜 결국 자위행위를 하게 만든다고 일러줬다.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자주 자위행위를 하면 생리적인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그가 자위행위를 자주 하는 원인이 음란물을 자주 보는데 있음은 물론이다. 심하면 정신적 혼란 뿐 문제가 아니라 죽을 수도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한 달이나 음란물을 보지 않고 자위행위를 금했다. 치료자의 강한 역설이 상당한 효과를 봤다.

음란물로 인해 신체의 균형을 잃으면 정신의 혼란은 물론 공부도 할 수 없다. 공부하는 일은 학생이 해내야 하는 과업이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친구들과도 좋은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음란물에 빠지면 많은 시간을 혼자 비효과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만큼 청소년기에 해야 할 과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는 통신중독이나 음란물중독의 폐해다. 그는 음란물의 위험과 유해함을 깨닫고 빠져나와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돼야 한다. 계속 거기에 빠져 있으면 인생을 낭비하고 자기를 파멸로 몰아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점이 그에게 잘 이해됐다.

3) 정신의 강화를 위한 시도

음란물의 폐해를 인식시키는 것과 아울러 한 가지를 실행했다. 정신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담임목사님에게 주일마다 기도받기를 시도했다. 마음을 다스리기는 생각대로 쉽게 되지 않음을 인지시키고 기도받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고 일러줬다. 음란물에 고정되는 것을 탈피하려는 한 방법으로, 신앙적 무장을 시키려는 의도였다. 신앙적인 힘은 불필요한 생각을 누를 수 있다. 특히 유혹에 끌리기 쉽고 마음을 조절하기 어려운 학생 시절에는 신앙이 많은 도움이 된다. 신앙이 강력해지면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충동을 어느 정도 누를 수 있다. 강한 생각은 의지를 작동해 약한 생각을 압도할 수 있다. 그는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면서 놀라운 심리 변화를 경험했다. 그런 사실에 감사하다고 스스로 말했다.

4)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기

시간 사용은 목표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목표를 갖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시간 사용에 차이가 난다. 목표를 가진 사람은 가급적 목표를 이룩하고 쉬려 한다. 그러나 목표가 없는 사람은 누가 놀러가지고 하면 쉽게 따라나선다. 그만큼 시간 사용이 허술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필요한 생각에 끌리는 것은 시간 사용에 문제가 있다. 그가 자주 음란물을 접한 것도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결과다.

목표와 의지는 상관관계에 있다. 목표를 갖고 노력하는 사람은 의지가 있지만, 목표가 없는 사람은 의욕이나 의지가 없다. 목표는 의지에서 나오고, 의지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목표가 있기에 이 둘은 상관관계에 있다. 의지는 무엇인가? 심리학에서 의지(意志, will)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인간의 의식적 노력이다. 이런 의지는 지성과 감정의 복합체이며, 항상 목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목표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의지는 행위를 통해 실현되며, 인간의 사회적·자연적 환경으로 인한 저항을 극복해야 실현 가능하다.

의지와 행위는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의지에 의한 행위는 보통 의도의 형성과 결심, 마음 속에 품은 결심의 실행이라는 2단계로 이루어진다. 철학의 역사에서 의지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사유·인식 등 지성과 의지의 관계 문제와 밀접히 결부된다. 그러나 이런 의지와 행동도 모두 견해가 일치되지는 않는다. 특정 견해를 기준 삼아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는 의지가 지성에 의존해 생겨난다고 주장한 인물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로크, 홉스, 칸트, 헤겔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의지가 모든 존재를 규정하는 근거이자 원동력이라고 주장한 인물로 쇼펜하우어, 니체 등이 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의지론은 비합리주의 구성요소가 되었고, 특히 니체의 의지론은 파시즘의 인종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을 움직이는데 의지가 그만큼 중요한 점을 보여준다.

5) 정신의 힘으로서 의지력을 향상하기

의지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의지는 정신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가? 이는 정신과 행동을 기초로 하여 파악되어야 하는 문제다. 이때 인간의 의지력(意志力)은 자신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의지력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주체로서의 주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런 경우의 주관성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인식하고, 욕망하는 것, 느끼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와 이런 의지력의 특성과 관련하여 칸트(I. Kannt)는 정신의 능력으로 이해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간을 움직이는 주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지력이라는 것이다.

의지력은 심리적인 것들의 영역에 있어서의 동기, 자연적인 사물들의 생성의 세계에 있어서의 작용원인 등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런 현상은 개인에게서 정신적으로는 능동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들어 행동의 주체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지력의 능동성은 데카르트(Ren Descartes)의 의식론에서 이해된다. 데카르트는 의식의 내용을 능동적인 상태와 수동적인 상태로 구분하였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의지력에 대한 상태의 구분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능동적인 상태란 의지력의 여러 형식들이고, 수동적인 상태들이란 감각과 인식에 의해서 생겨나는 모든 것, 즉 여러 가지 표상들을 말한다. 이런 개념이 라이프니츠(G. W. Leibniz)에서는 “단자”(Monade)로서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특성으로서 자연의 참된 원자로 이해된다. 이런 것을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영혼의 개념을 보다 좁은 뜻으로 사용하고, 즉 의식적인 표상을 가지고 있는 존재자에 대해서만 사용하게 되자, 이런 단자의 개념은 영혼에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

라이프니츠의 영혼에 대한 시각은 다소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에서는 “근원적인 힘”(forces primitives)으로 더 사용하게 되었다. 실제로 단자의 현실은 영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단자의 활동은 영혼의 행동 속에, 즉 “지각 속에", 다시 말해서 짜 맞춰진 것과 단순한 것에 의해서 인간의 밖에 있게 되는 것이 되었고, 정신의 현상을 표현하는 데에 성립되었으며, 또 단자들의 욕망 속에서, 이를테면 하나의 지각으로부터 다른 지각으로 옮겨가는 노력 속에 성립되었다.

그러면 라이프니츠가 사용하는 근원적인 힘이란 오늘날에는 아마도 의지력(意志力)으로 사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내면에서 힘을 가지고 움직이는 실체라는 점에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그에게 의지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3주간이나 훈련을 하였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그에게 긍정적인 의지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의지력이 그에게 불필요한 생각을 해소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압도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치료의 과정을 거쳐서 내담자는 음란물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1년 후에는 다시 입시에 도전하여 좋은 결과를 가지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이 사례는 음란물중독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 상담치료에 해당한다. 음란물중독의 치료가 어려운 것에 비하면 매우 특이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이라는 특이한 점에 그 방향점을 분명하게 하여 기대 이상의 결과를 거둔 것이기는 하다. 그리고 이 과정은 비교적 단순한 과정이고 치료자의 말에 잘 따라준 그의 노력이 함께 하여 상담치료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면 이를 잘 활용하면 학생 뿐 아니라 직장인에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7. 결론: 음란물 아닌 건전한 긴장해소 방법 찾아야

지금까지 음란물중독의 치료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음란물중독의 치료는 성충동과 관련하여 그 치료기법을 제시한 것이다. 음란물중독이 대개는 성적 충동이 바탕이 되어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거기에 압도되는 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충동의 본능을 이해하고 그 충동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시됐다.

성적 충동으로 자극을 받으면 개인은 자연적으로 긴장하고, 긴장감을 다시 해소되려는 수단의 하나로 음란물을 보려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하면 성적 충동은 긴장감을 해소하려는 작용을 유발하는 알 수 없는 심리적인 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충동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일치되지 않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충동을 본능적인 욕구, 즉 성욕과 공격성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프로이트는 이를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개념, 그리고 억제기능의 수준으로 파악한다. 이는 정신분석학이 충동의 문제를 구순기에의 고착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페니헬(Fenichel)은 충동을 내적인 측면을 행동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로 이해한다. 충동적 행동이 불안, 죄의식, 우울 그리고 기타 고통스러운 감정 내지 내적 위험을 행동이라는 수단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다르지 않고 성적인 측면에서는 일치점을 이룬다고 보고 있다. 충동은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공격적이며 왜곡된 또는 성적 만족을 시도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충동적 행동은 자연히 처벌받는 행동도 포함되므로 그 원인에 죄책감과도 상당 부분 관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처벌받고자 하는 욕구는 때로 충동조절을 방해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의 자기심리학자인 코헛(Kohut)은 충동적 행동을 불완전한 자아감각 때문이라고 보았다.

충동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할 때 환자들은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자아가 분열된다고 본 것이다. 이는 자아가 분열을 막고 인격의 전체성을 유지하려고 본의 아니게 충동적 행동을 시도한다는 점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물론 그런 충동의 결과는 자기 파괴적이기 쉬운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위니코트(Winnicott)는 아동의 충동행동에 대하여 언급했는데, 아동의 충동적 행동은 무관심한 상태를 포기하는 대신 관심을 끌어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시 수립하려는 수단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건전한 방법으로 성적 충동을 해소하기를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란물로 그 긴장감을 해소하려는 방법이 동원되기 쉽다. 현대에 들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긴장감을 성적인 방법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이 증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성적 충동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성격장애로 간주된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어느 정도 충동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이런 긴장과 충동의 문제는 어릴 때 경험이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아마도 신체의 발달에 따라 심리가 성장하는 시각에서 어릴 때의 경험이 성인기까지 연속되는 측면을 상정하는 측면일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아동이 어릴 때 동일시할 적절한 대상이 없을 때, 그리고 부모가 스스로 충동조절을 잘 못하는 경우에 개인에게는 충동의 조절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실로 건전한 방법으로 성적 충동을 해소하는 방법이 필요한 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은 기독교인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신앙의 중요성만 강조하면서 직,간접으로 성적인 억압을 시도하는 것보다도 기독교인의 건전한 성적인 이해와 그 발산을 인정하고 중요시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