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쌉싸레하면서도 전혀 약처럼 느껴지지는 않고, 향긋한 방향(芳香)물질임은 분명한데 일반 향수나 향료는 분명 아닌 물질, 이것이 커피의 야릇한 매력이다. 이제 커피는 온 세계인의 기호식품이 되었다.
최근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고추의 매운맛의 핵심 성분인 캅사이신이 발암물질이라는 연구로 파문이 인 적이 있다(고추 발암물질에 대한 본 홈피 필자의 글을 참조할 것). 캅사이신은 아무 것도 아니다. 콩을 부실하게 관리하면 초강력 발암 물질 아플라톡신이 생성된다. 여러분, 놀라지 말라. 커피에도 최소 19 가지의 자연 발암 물질이 있다. 다행한 것은 그 양이 규정치를 훨씬 미달할 뿐이다. 커피는 그리 간단한 물질이 아니다. 화합물이 최소 2천 종류 넘게 들어있다. 그 가운데 발암 물질이 19가지이며 폴리페놀같은 항산화작용과 항암작용을 가진 물질들도 많이 있다.
커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커피는 커피나무(coffee arabica)의 종자(커피콩)를 섭씨 200-250도로 30분 내외로 볶아 가루로 만든 것이며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 콩을 볶아 그 침출액을 농축 건조한 것이다.
성경은 이 커피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 성경에 커피는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슬람 경전 코란이나 불경이나 유교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700종류의 동식물과 광물이 기록된 고대 애굽 문헌이나 식물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인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서도 커피 유사 식물은 발견되지 않는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글이나 하루 100가지 풀과 나무를 직접 먹어 효능을 시험하고 백성들에게 농업을 가르쳤다는 중국 전설의 황제 신농에게서도 커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 커피는 어디서 온 것일까? 커피나무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고원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곳 “카파” 주(州)에 커피 원목이 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 커피라는 이름이 에티오피아의 “카파”에서 유래됐다고 추측한다. 커피의 아랍어 명칭 “까훼”가 오스만 투르크어로 흘러 들어갔고, 거기서 유럽인들이 그들의 언어로 차입해 갔다. 그런데 정작 커피가 발견된 에티오피아에서는 "분나"(Bunna)라고 부른다. 2004년판 <네이처> 지에 따르면 새로 발견된 그곳 수천 그루의 커피나무 가운데 3 그루가 원목이었으며 그 가운데는 카페인이 없는 천연 아라비카 종도 발견되었다. 한국어 단어 "커피"는 영문식 표기 coffee를 차용한 외래어다. 커피가 한국에 처음 알려질 당시 영문표기를 가차(假借) 하여 가배(珈琲) 라고 하거나, 빛깔과 맛이 탕약과 비슷하다 하여 서양에서 들어온 탕이라는 뜻으로 양탕국 등으로 불렸다.
그렇다면 커피와 종교의 만남은 언제부터 일까? 지금부터 3천 년 전 유대 솔로몬 왕과 시바(또는 스바, Sheba) 여왕 후손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시바는 지명을 말하는 데 지금의 에티오피아 지역과 아라비아 남부 예멘 지역이 통치 영향권이었을 거라고 추정된다. 지난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영락 교회 예배까지 참석한 적이 있던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제 225대 후손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3천 년 전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을 만나러갔던 시바 여왕은 수많은 향신료를 가지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지금의 에티오피아는 고대로부터 향신료와 향품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왕상 10: 2; 사 60:6; 렘 6:20; 겔 27:22). 물론 그렇다고 시바 여왕이 지금의 커피라는 이름의 열매를 정식으로 가져갔을 리는 없다. 성경은 다만 향품에 대한 스바 지역 사람들의 오랜 명성을 알려주고 있다. 혹시 커피 유사 향료를 가지고 갔었을 지도 모른다고 즐거운 상상을 할 뿐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민간에 전해지던 커피가 드디어 문헌에 얼핏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오랫동안 자생하던 커피 나무는 늦어도 9세기부터 에티오피아의 고지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문헌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1671년 레바논의 언어학자 파우스트 나이로니의 저서 <잠들지 않는 수도원>에 나오는 6세기 경의 전설에 따르면 목동이었던 카르디(Kardi)가 우연히 방목해 기르던 초원의 산양들이 먹고 심하게 흥분하는 열매를 발견했다. 카르디는 이 빨간 열매를 입으로 씹어보았다. 향긋한 냄새가 입에 퍼지면서 온 몸의 기분이 상쾌해지고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열매를 마을로 가져왔고 피곤함을 덜어주는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된 마을의 수도승은 수행자들을 돕기 위해 이 열매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커피는 일찌감치 수도사들에게 전해 내려오던 향료요 비약(秘藥)이었다. 에티오피아 유대교, 기독교, 토속 종교 등에서 비밀스럽게 사용되던 커피는 마침내 이슬람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슬람의 전파와 더불어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14세기 초 페르시아 종합의학서인 <의학집성>은 아라비아 의학자 라제스의 말을 빌어 ‘아프리카에 자생하던 분(Bunn=커피)의 생두를 갈아 끓여낸 액체는 위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볶지 않은 생두를 사용하던 커피는 13세기 중반(1250년 경) 볶는 방식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아바리아 반도와 그곳 메카를 순례하던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모슬렘 순례객들은 서로 간 정보 교환의 장소였다. 커피도 자연스럽게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이집트,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 기독교 사회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커피처럼 종교와 함께 한 식품도 드물다.
20세기에 들어서 커피 제조는 산업화 되면서 급격한 발전이 나타난다. 1900년 힐스 브라더스 사가 진공 포장된 커피 제조에 성공했으며 이듬해에는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이던 사토리 카토가 인스턴트 커피를 발명했다. 1938년에는 유명 식품회사 스위스 네슬레의 과학자들이 에스프레소 커피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1946년에는 아킬레스 가기아(Achilles Gaggia)가 에스프레소 제조기계를 발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로 전파된 커피의 역사이다.
커피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이전 먼저 종교 수행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그 맛과 향 뿐 아니라 기도와 수행을 위해 잠을 쫓는 성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카페인이다. 하지만 커피의 주요 성분은 카페인만이 아니다. 볶은 커피의 경우 쓴맛을 내는 카페인(0.6%-2.2%) 뿐 아니라 이보다 훨씬 많은 섬유질(18-24%), 지방(12-14%), 단백질(13-14%), 떫은 맛의 원인이 되는 탄닌(4-9%), 당분(1-8%), 회분(3-5%)이 있고 커피 특유의 향을 내는 카페론, 식초산, 많은 에스테르류, 아세톤류, furfural, valerianic acid 등이 있다. 카페인과 탄닌은 커피 뿐 아니라 차(茶, tea)의 주성분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다. 니코틴산이나 니코틴 아미드(담배의 니코틴이 전혀 아님)는 비타민 B3로 불리는 나이아신이다. 니코틴산의 양을 늘리면 고지혈증 치료제가 된다. 이들 비타민은 커피에 존재하지는 않으나 커피를 마셨을 때 놀랍게도 체내 대사(代謝)과정에서 간단히 만들어진다. 결핵약 피라진아미드도 커피의 성분 가운데 하나이다. 최소한 커피가 제 2형 당뇨와 간암이나 만성간염, 알콜성 간경변증, 파킨슨병 등의 예방에 탁월하다는 연구가 속속 밝혀지고 있고 우울증(카페산)과 고혈압 예방에도 도음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2천종에 달하는 커피의 성분들은 이밖에도 다양한 의약적 효능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커피 나무는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 인류에게 허락한 식물 가운데 하나인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이다(창 1:11-12). 그 나무 가운데서도 그 양과 범위에 관한한 온 세계인들이 즐겨 마시는 제 1의 음료로 개발되었다. 그러니 최고의 보양식은 육식이 아니라 커피라고 해야 할 듯하다! 다만 무엇이든 과식, 과음은 해로우며 설탕과 커피 크림이 들어가므로 건강을 생각한다면 적절히 첨가물은 조절해 마시는 것이 필요하다. 임산부나 수유기 여성이 초콜릿을 지나치게 즐기면 안 되는 것처럼 커피를 하루 대여섯잔 이상 지나치게 즐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 너무 터무니없이 고급스럽고 비싼 커피를 즐기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고급 커피들이 등장하면서 커피에도 일부 양극화 현상이 생겨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치스러운 고급커피란 애시당초 없다. 카페인은 카페인이고 커피는 커피일 뿐이다. 커피맛이 하늘에서 제조하는 것도 아니고 커피는 그저 커피일 뿐이다. 그러니 강남의 고급 커피 한잔의 원가는 겨우 수백 여원에 불과하다는 언론 기사가 등장하지 않았는가. 최근에는 가난한 제 3국에서 저임금으로 생산된 커피가 고가로 둔갑하는 불공정 유통에 대응하여 커피 유통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공정 무역 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특별히 기독교인들의 관심이 많다.
커피가 모든 문화, 민족, 국가, 종교를 초월하여 많은 대중들의 사랑 받는 데서 하나님의 일반 은총은 차별이 없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커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은총을 상징하는 기호 식품이 되었다. 이제는 대형교회 뿐 아니라 중형 교회들까지 커피자판기가 설치 되어 그리스도인들도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스럽게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자연에 관한한 하나님은 이렇게 대단히 공평하시다(마 5:45). 우리 인간이 엉뚱한 차별을 가할 뿐이다. 커피 안에서 만큼은 이미 지구촌은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커피’ 안에서의 입맛 통일처럼 종교적 화목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 지난 80년대 모 유명 커피 회사 최종 면접에 갔던 필자가 그곳에 입사하였다면 지금은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www.kictnet.ne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고추의 매운맛의 핵심 성분인 캅사이신이 발암물질이라는 연구로 파문이 인 적이 있다(고추 발암물질에 대한 본 홈피 필자의 글을 참조할 것). 캅사이신은 아무 것도 아니다. 콩을 부실하게 관리하면 초강력 발암 물질 아플라톡신이 생성된다. 여러분, 놀라지 말라. 커피에도 최소 19 가지의 자연 발암 물질이 있다. 다행한 것은 그 양이 규정치를 훨씬 미달할 뿐이다. 커피는 그리 간단한 물질이 아니다. 화합물이 최소 2천 종류 넘게 들어있다. 그 가운데 발암 물질이 19가지이며 폴리페놀같은 항산화작용과 항암작용을 가진 물질들도 많이 있다.
커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커피는 커피나무(coffee arabica)의 종자(커피콩)를 섭씨 200-250도로 30분 내외로 볶아 가루로 만든 것이며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 콩을 볶아 그 침출액을 농축 건조한 것이다.
성경은 이 커피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 성경에 커피는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슬람 경전 코란이나 불경이나 유교 경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700종류의 동식물과 광물이 기록된 고대 애굽 문헌이나 식물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인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서도 커피 유사 식물은 발견되지 않는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글이나 하루 100가지 풀과 나무를 직접 먹어 효능을 시험하고 백성들에게 농업을 가르쳤다는 중국 전설의 황제 신농에게서도 커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 커피는 어디서 온 것일까? 커피나무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고원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곳 “카파” 주(州)에 커피 원목이 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 커피라는 이름이 에티오피아의 “카파”에서 유래됐다고 추측한다. 커피의 아랍어 명칭 “까훼”가 오스만 투르크어로 흘러 들어갔고, 거기서 유럽인들이 그들의 언어로 차입해 갔다. 그런데 정작 커피가 발견된 에티오피아에서는 "분나"(Bunna)라고 부른다. 2004년판 <네이처> 지에 따르면 새로 발견된 그곳 수천 그루의 커피나무 가운데 3 그루가 원목이었으며 그 가운데는 카페인이 없는 천연 아라비카 종도 발견되었다. 한국어 단어 "커피"는 영문식 표기 coffee를 차용한 외래어다. 커피가 한국에 처음 알려질 당시 영문표기를 가차(假借) 하여 가배(珈琲) 라고 하거나, 빛깔과 맛이 탕약과 비슷하다 하여 서양에서 들어온 탕이라는 뜻으로 양탕국 등으로 불렸다.
그렇다면 커피와 종교의 만남은 언제부터 일까? 지금부터 3천 년 전 유대 솔로몬 왕과 시바(또는 스바, Sheba) 여왕 후손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시바는 지명을 말하는 데 지금의 에티오피아 지역과 아라비아 남부 예멘 지역이 통치 영향권이었을 거라고 추정된다. 지난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영락 교회 예배까지 참석한 적이 있던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제 225대 후손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3천 년 전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을 만나러갔던 시바 여왕은 수많은 향신료를 가지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지금의 에티오피아는 고대로부터 향신료와 향품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왕상 10: 2; 사 60:6; 렘 6:20; 겔 27:22). 물론 그렇다고 시바 여왕이 지금의 커피라는 이름의 열매를 정식으로 가져갔을 리는 없다. 성경은 다만 향품에 대한 스바 지역 사람들의 오랜 명성을 알려주고 있다. 혹시 커피 유사 향료를 가지고 갔었을 지도 모른다고 즐거운 상상을 할 뿐이다.
에티오피아에서 민간에 전해지던 커피가 드디어 문헌에 얼핏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오랫동안 자생하던 커피 나무는 늦어도 9세기부터 에티오피아의 고지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 문헌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1671년 레바논의 언어학자 파우스트 나이로니의 저서 <잠들지 않는 수도원>에 나오는 6세기 경의 전설에 따르면 목동이었던 카르디(Kardi)가 우연히 방목해 기르던 초원의 산양들이 먹고 심하게 흥분하는 열매를 발견했다. 카르디는 이 빨간 열매를 입으로 씹어보았다. 향긋한 냄새가 입에 퍼지면서 온 몸의 기분이 상쾌해지고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열매를 마을로 가져왔고 피곤함을 덜어주는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된 마을의 수도승은 수행자들을 돕기 위해 이 열매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커피는 일찌감치 수도사들에게 전해 내려오던 향료요 비약(秘藥)이었다. 에티오피아 유대교, 기독교, 토속 종교 등에서 비밀스럽게 사용되던 커피는 마침내 이슬람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슬람의 전파와 더불어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14세기 초 페르시아 종합의학서인 <의학집성>은 아라비아 의학자 라제스의 말을 빌어 ‘아프리카에 자생하던 분(Bunn=커피)의 생두를 갈아 끓여낸 액체는 위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볶지 않은 생두를 사용하던 커피는 13세기 중반(1250년 경) 볶는 방식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아바리아 반도와 그곳 메카를 순례하던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모슬렘 순례객들은 서로 간 정보 교환의 장소였다. 커피도 자연스럽게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이집트,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 기독교 사회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커피처럼 종교와 함께 한 식품도 드물다.
20세기에 들어서 커피 제조는 산업화 되면서 급격한 발전이 나타난다. 1900년 힐스 브라더스 사가 진공 포장된 커피 제조에 성공했으며 이듬해에는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이던 사토리 카토가 인스턴트 커피를 발명했다. 1938년에는 유명 식품회사 스위스 네슬레의 과학자들이 에스프레소 커피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1946년에는 아킬레스 가기아(Achilles Gaggia)가 에스프레소 제조기계를 발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로 전파된 커피의 역사이다.
커피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이전 먼저 종교 수행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그 맛과 향 뿐 아니라 기도와 수행을 위해 잠을 쫓는 성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카페인이다. 하지만 커피의 주요 성분은 카페인만이 아니다. 볶은 커피의 경우 쓴맛을 내는 카페인(0.6%-2.2%) 뿐 아니라 이보다 훨씬 많은 섬유질(18-24%), 지방(12-14%), 단백질(13-14%), 떫은 맛의 원인이 되는 탄닌(4-9%), 당분(1-8%), 회분(3-5%)이 있고 커피 특유의 향을 내는 카페론, 식초산, 많은 에스테르류, 아세톤류, furfural, valerianic acid 등이 있다. 카페인과 탄닌은 커피 뿐 아니라 차(茶, tea)의 주성분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다. 니코틴산이나 니코틴 아미드(담배의 니코틴이 전혀 아님)는 비타민 B3로 불리는 나이아신이다. 니코틴산의 양을 늘리면 고지혈증 치료제가 된다. 이들 비타민은 커피에 존재하지는 않으나 커피를 마셨을 때 놀랍게도 체내 대사(代謝)과정에서 간단히 만들어진다. 결핵약 피라진아미드도 커피의 성분 가운데 하나이다. 최소한 커피가 제 2형 당뇨와 간암이나 만성간염, 알콜성 간경변증, 파킨슨병 등의 예방에 탁월하다는 연구가 속속 밝혀지고 있고 우울증(카페산)과 고혈압 예방에도 도음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2천종에 달하는 커피의 성분들은 이밖에도 다양한 의약적 효능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커피 나무는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 인류에게 허락한 식물 가운데 하나인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이다(창 1:11-12). 그 나무 가운데서도 그 양과 범위에 관한한 온 세계인들이 즐겨 마시는 제 1의 음료로 개발되었다. 그러니 최고의 보양식은 육식이 아니라 커피라고 해야 할 듯하다! 다만 무엇이든 과식, 과음은 해로우며 설탕과 커피 크림이 들어가므로 건강을 생각한다면 적절히 첨가물은 조절해 마시는 것이 필요하다. 임산부나 수유기 여성이 초콜릿을 지나치게 즐기면 안 되는 것처럼 커피를 하루 대여섯잔 이상 지나치게 즐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 너무 터무니없이 고급스럽고 비싼 커피를 즐기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고급 커피들이 등장하면서 커피에도 일부 양극화 현상이 생겨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사치스러운 고급커피란 애시당초 없다. 카페인은 카페인이고 커피는 커피일 뿐이다. 커피맛이 하늘에서 제조하는 것도 아니고 커피는 그저 커피일 뿐이다. 그러니 강남의 고급 커피 한잔의 원가는 겨우 수백 여원에 불과하다는 언론 기사가 등장하지 않았는가. 최근에는 가난한 제 3국에서 저임금으로 생산된 커피가 고가로 둔갑하는 불공정 유통에 대응하여 커피 유통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공정 무역 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특별히 기독교인들의 관심이 많다.
커피가 모든 문화, 민족, 국가, 종교를 초월하여 많은 대중들의 사랑 받는 데서 하나님의 일반 은총은 차별이 없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커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은총을 상징하는 기호 식품이 되었다. 이제는 대형교회 뿐 아니라 중형 교회들까지 커피자판기가 설치 되어 그리스도인들도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스럽게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자연에 관한한 하나님은 이렇게 대단히 공평하시다(마 5:45). 우리 인간이 엉뚱한 차별을 가할 뿐이다. 커피 안에서 만큼은 이미 지구촌은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커피’ 안에서의 입맛 통일처럼 종교적 화목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 지난 80년대 모 유명 커피 회사 최종 면접에 갔던 필자가 그곳에 입사하였다면 지금은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www.kictnet.ne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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