魯(노)나라에 ”왕태” 라는 덕망과 학식이 높은 선비가 있었다. 그는 뒷꿈치를 잘리는 형벌을 받아 외짝다리였으나,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이를 본 ‘공자’의 제자 ‘상계’가 스승에게 질문을 하였다.

“왕태는 발뒤꿈치를 잘린 자로 학문을 가르치지도 않고 도를 논하지도 않는데 왜 사람들이 그에게로 가면 충실해져서 돌아옵니까? 또 그는 자신의 지혜로써 마음의 본체를 깨달은 것이 어디까지나 자기 수양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에게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까?”

이에 ‘공자’ 가 대답하였다. “나도 그를 스승으로 섬길 작정이다. 그것은 그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평정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이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 보려 할 때에는 흐르는 물이 아니라 고요히 정지되어 있는 물을 거울로 삼을 것이다. 이와같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마음의 평정을 줄 수 있는데, 왕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모든 만물을 하나로 보는 사람이며 또한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것에 이끌리지 않아 덕이 조화를 이루어 본질을 바로 보는 사람이다. 이에 그에게 감화되어 사람들이 그를 찿는 것이다.”

공자의 이 말에서 유래한 명경지수(明鏡止水)는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처럼 사념.가식.허욕이 없는 깨끗한 심경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와같이 모든 시대에 세상이 필요로하는 스승과 지도자에게는 위의 덕목들이 요구된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도 많은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을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분리해 보면, 스스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남을 밟고 올라서는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일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부류가 있다. 반면에 다른 선한 지도자 들이 있다. 스스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감으로 하늘이 그를 일으켜 세워 만든 부류이다. 두 부류 중 우리에게 어떤 유형의 지도자가 필요할 것인가에 대하여 질문한다면 어리석다 할 것이다. 이땅에 지도자들은 왔다가는 또 사라져간다. 각기 그 시대에 지도적인 역할을 다하고는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에게 한 시대에서 탁월성은 있으나 영원성은 부족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도 또한 영원까지 변함이 없으시다. 예수의 우월성은 불변이며 그 지도력은 탁월하며 영원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땅의 모든 지도자는 그를 모델삼고, 그에게 지도를 받는 자라야 하는 것이다. 참된 지도자는 교회에서는 물론이고 세상에서도 자기 자신이 신앙 안에 明鏡止水의 삶을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인품인 것이다. 본질이 어떠한가? 지도자에게 이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한국 사회나 미주 한인사회에서 눈살을 찌프리게 하는 지도자나 단체장이 나오면 그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내 손으로 뽑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 때문에 문제는 나에게, 우리 사회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신앙 안에서 明鏡止水를 누릴 때 비로서 바른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으며, 내 스스로가 선택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에게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단체 많기로 소문난 한인 사회에 숫자만큼 훌륭한 지도자도 많이 배출되기를 소원해 본다.(dahn195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