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거꾸로 세운 유리컵에다 가두고 막힌 쪽을 향해서 빛을 쏘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꿀벌은 빛이 들어오는 쪽을 지향하게 되어 있어서 빛이 들어오는 유리컵의 막힌 부분에서만 헤메기 시작합니다. 아래쪽에 뻥 뚫린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빛이 들어오는(막힌쪽)쪽에서 방황하다가 나오지 못하고 굶어 죽습니다. 반면 파리를 상대로 똑같은 실험을 해보면 파리는 꿀벌과는 달리 햇빛 지향적이지 않기 때문에 좌충우돌하다 결국은 유리컵 밖으로 빠져나와 목숨을 구합니다. 꿀벌은 햇빛 지향적인 생각의 틀에 갇혀 생명을 잃게 되지만, 이런 생각의 틀이 없는 파리는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결국 꿀벌은 빛을 향하여야 하는 본능적인 생각의 틀에 자신을 가두어 자멸하고 만 것입니다. 유리컵에 갇힌 것이 아니고 자기생각의 틀에 갇힌 것입니다. 화물선의 비어있는 냉동컨테이너에 청소하러 들어 갔다가 문이 잠기는 바람에 얼어 죽은 사건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냉동컨테이너는 꺼져있는(가동이 안 되는) 컨테이너였습니다. 그 안에 갇힌 사람은 냉동컨테이너라는 사실을 알고 생각에 의해 동사한 것이 죽어가면서 쓴 그의 낙서로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세상에서 높이뛰기를 가장 잘하는 동물은 벼룩입니다. 벼룩은 자신의 몸길이보다 몇 십 배의 높이를 뛰어 오를 수 있습니다. 벼룩을 거꾸로 세운 유리컵에 가두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벼룩은 평소의 실력대로 높이뛰기를 시도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장애에 가로 막히게 됩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당황한 벼룩은 포기하지 않고 몇 차례 더 시도해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결국 몇 번 더 시도해보다가 곧 포기하고 맙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다음에 벌어집니다. 이와 같은 상태로 벼룩을 가둬두었다가 풀어줍니다. 그러면 벼룩은 유리컵 높이만큼만 뛰게 된다고 합니다. 벼룩은 여전히 유리컵보다는 훨씬 높이 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은 유리컵 높이만큼만 뛸 수 있다는 새로운 생각의 틀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능력이 변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변한 것입니다. 능력이 어떤 능력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어떤 생각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능력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생각의 한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도 나의 생각의 한계 때문에 무능한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1954년까지는 인간이 1마일(1.6km)을 4분 안에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가정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로저 배니스터(Bannister)가 옥스퍼드의 한 경기장에서 이 마의 기록을 깨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3분59.4초였습니다. 배니스터는 기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1마일을 4분의1로 나눠서 달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4분의1마일을 1분내 달리는 연습을 하다가 기록이 61초까지 근접했을 때는 훈련을 중단하고 하이킹과 바위타기 등의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기록을 59초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결국 배니스터는 1954년 마의 4분대 기록을 깨게 됩니다. 그로부터 기적 같은 일이 연달아 발생합니다. 두 달 후 오스트리아의 존 랜디(Landy)가 핀란드의 한 경기장에서 다시 4분대의 기록을 깨는 기적이 생긴 것입니다. 3분58초의 기록이었습니다. 그 후로 2년간 300명의 육상선수가 마의 1마일 4분 기록을 깨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954년간 깨지지 않던 기록을 2년 동안 무려 300명의 선수가 넘어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900년간 변하지 않던 인간의 달리기 능력이 3년 안에 갑자기 진화했다고 볼 것인가?
이 사실에 대한 가장 유력한 해석이 있습니다. 배니스터가 인간의 신체적 능력에 대한 조건적 훈련을 넘어서 인간정신에 대한 조건적 훈련에 성공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가 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는 인간이 가진 달리기에 대한 생각의 틀 안에서의 가정은 1마일을 4분 내에 달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배니스터가 기록을 깨고 나서야 비로소 이 가정도 무너졌으며, 인간도 1마일을 4분 내에 달릴 수 있다는 가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정이 새롭게 세워지자 우수한 능력을 갖춘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도전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배니스터가 가정을 깨기 전까지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가정이 바뀜에 따라서 도전을 하고 좋은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1954년까지는 1마일을 4분 안에 달릴 수 없다는 부정적인 가정에 갇혀 아예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의 틀이 감옥 역할을 하여 능력과 가능성을 제한했었으나 배니스터에 의해 고정관념의 틀이 깨어지자 도전이 시작되고 그 도전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고정관념이라는 틀을 빨리 깨는 사람이 선구자요 개척자입니다.
지능이 뛰어나고 우등생이었던 사람이 실패의 확률이 높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학교생활에서의 성공의 틀에 갇혀 현실에서의 실패를 받아 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실수를 할 경우 과거 자신의 영광을 지켜내기 위해서 자신을 변호하고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고객의 불만이 높아지고 그것이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어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 결국은 퇴출당하고 맙니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닥이 그랬고 IBM이 그랬고 GM이 그랬습니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여 현재의 실패를 빨리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다 기업 전체가 붕괴되기 직전까지 갔던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의 틀이든지 성공에 기인된 생각의 틀이든지 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때 환경을 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생각의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우리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틀입니다. 성령께서 그의 능력으로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변화시키려 할 때 순종하여, 말씀이 가감없이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높이뛰기를 가장 잘하는 동물은 벼룩입니다. 벼룩은 자신의 몸길이보다 몇 십 배의 높이를 뛰어 오를 수 있습니다. 벼룩을 거꾸로 세운 유리컵에 가두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벼룩은 평소의 실력대로 높이뛰기를 시도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장애에 가로 막히게 됩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당황한 벼룩은 포기하지 않고 몇 차례 더 시도해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결국 몇 번 더 시도해보다가 곧 포기하고 맙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다음에 벌어집니다. 이와 같은 상태로 벼룩을 가둬두었다가 풀어줍니다. 그러면 벼룩은 유리컵 높이만큼만 뛰게 된다고 합니다. 벼룩은 여전히 유리컵보다는 훨씬 높이 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은 유리컵 높이만큼만 뛸 수 있다는 새로운 생각의 틀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능력이 변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변한 것입니다. 능력이 어떤 능력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어떤 생각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능력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생각의 한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도 나의 생각의 한계 때문에 무능한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1954년까지는 인간이 1마일(1.6km)을 4분 안에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가정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로저 배니스터(Bannister)가 옥스퍼드의 한 경기장에서 이 마의 기록을 깨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3분59.4초였습니다. 배니스터는 기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1마일을 4분의1로 나눠서 달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4분의1마일을 1분내 달리는 연습을 하다가 기록이 61초까지 근접했을 때는 훈련을 중단하고 하이킹과 바위타기 등의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기록을 59초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결국 배니스터는 1954년 마의 4분대 기록을 깨게 됩니다. 그로부터 기적 같은 일이 연달아 발생합니다. 두 달 후 오스트리아의 존 랜디(Landy)가 핀란드의 한 경기장에서 다시 4분대의 기록을 깨는 기적이 생긴 것입니다. 3분58초의 기록이었습니다. 그 후로 2년간 300명의 육상선수가 마의 1마일 4분 기록을 깨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954년간 깨지지 않던 기록을 2년 동안 무려 300명의 선수가 넘어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900년간 변하지 않던 인간의 달리기 능력이 3년 안에 갑자기 진화했다고 볼 것인가?
이 사실에 대한 가장 유력한 해석이 있습니다. 배니스터가 인간의 신체적 능력에 대한 조건적 훈련을 넘어서 인간정신에 대한 조건적 훈련에 성공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가 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는 인간이 가진 달리기에 대한 생각의 틀 안에서의 가정은 1마일을 4분 내에 달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배니스터가 기록을 깨고 나서야 비로소 이 가정도 무너졌으며, 인간도 1마일을 4분 내에 달릴 수 있다는 가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정이 새롭게 세워지자 우수한 능력을 갖춘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도전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배니스터가 가정을 깨기 전까지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가정이 바뀜에 따라서 도전을 하고 좋은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1954년까지는 1마일을 4분 안에 달릴 수 없다는 부정적인 가정에 갇혀 아예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의 틀이 감옥 역할을 하여 능력과 가능성을 제한했었으나 배니스터에 의해 고정관념의 틀이 깨어지자 도전이 시작되고 그 도전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고정관념이라는 틀을 빨리 깨는 사람이 선구자요 개척자입니다.
지능이 뛰어나고 우등생이었던 사람이 실패의 확률이 높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학교생활에서의 성공의 틀에 갇혀 현실에서의 실패를 받아 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실수를 할 경우 과거 자신의 영광을 지켜내기 위해서 자신을 변호하고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고객의 불만이 높아지고 그것이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어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 결국은 퇴출당하고 맙니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닥이 그랬고 IBM이 그랬고 GM이 그랬습니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여 현재의 실패를 빨리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다 기업 전체가 붕괴되기 직전까지 갔던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의 틀이든지 성공에 기인된 생각의 틀이든지 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때 환경을 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생각의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우리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틀입니다. 성령께서 그의 능력으로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변화시키려 할 때 순종하여, 말씀이 가감없이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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