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나눔과 기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이다.

<나눔과기쁨> LA지부는 오는 19일(금) 오전 10시 예수님의 사랑을 지역사회와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고자 제2차 나눔과 기쁨 세미나를 개최한다. 장소는 세계성경장로교회(담임 강신권 목사, 17002 Prairie Ave, Torrance, CA 90504)에서 열린다.

<나눔과기쁨> 상임대표인 서경석 목사는 지난 7월 미주 설명회에서 한국교회의 위기는 ‘성장제일주의’라는 병에 들었기 때문이라며 ‘예수님처럼 사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 교회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경석 목사는 “기독교의 역사는 작고 어리고 약한 자들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며 “오늘날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작은 교회 목사들이며, 작은 교회가 한국교회의 미래”라고 말했다. 그는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삶에서 하나님을 체험할 때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라고 나눔 활동의 당위성을 말했다.

이밖에 이번 세미나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나눔과기쁨> LA지부 사무국장 김용호목사(714-393-4452)에게 하면 된다.

다음은 세미나 주강사로 나서는 서경석 목사가 나눔과기쁨 사역에 대해 소개한 글이다.


1. 어떻게 시작되었나?

안녕하십니까? <나눔과 기쁨>의 상임대표인 서경석 목사입니다. 먼저 <나눔과 기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십년전 IMF경제위기가 왔을 때 저는 정부나 기업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지만 일차적으로 동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네 안의 교회, 학교, 기업, 병원, 식당, 점포,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정기모금을 해서 그 돈으로 그 동네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새마을 운동이 이 일을 하면 잘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에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새마을 운동도 몇 년간 민간사회안전망이라는 이름으로 이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저의 오랜 친구인 송진섭 안산시장과 의논해서 안산시가 이 일에 앞장서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市가 나서니까 홍보는 잘 되는데 막상 동네에서 모금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울 활동가를 찾는 일은 市가 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로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이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활동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금을 만들어 작은 교회 목사님이 동네에서 나눔 네트워크를 만들어 극빈자를 돕는 일을 하면 매달 30만원씩 6개월을 돕겠다고 홍보했습니다. 그랬더니 전국에서 3백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신청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이분들을 나누미라고 호칭하고 동네에서 나눔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CMS로 모금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3개월 후에 이분들의 활동을 확인해 보니 이중 2백명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돈만 받아갔습니다. 저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1억8천만원을 그냥 낭비한 셈입니다. 저는 매달 얼마씩 정기적으로 돕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사실을 엄청난 댓가를 지불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목사님들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실적에 따른 지원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모금한 돈의 15%는 무조건 행정비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한 때가 2005년 3월이었는데 그해 말에 확인해 보니 계속 활동하는 나누미는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중 30명은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 중에는 CMS를 월 백오십만원까지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CMS에다 일시불로 내는 헌금과 물품지원까지 합하면 매월 수백만원의 지원이 됩니다. 나누미 목사님은 이렇게 모금한 물품과 돈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용돈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발 마사지를 해주고, 병원도 같이 가고, 말동무도 해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합니다. 처음에는 목사인 줄 몰랐다가 나중에 목사인 것을 알게 되면 “우리동네에 진짜 예수님 같은 목사가 있다”고 동네방네 선전을 합니다. 그러면 그 교회가 소문이 납니다. 도움받는 사람도 교회에 나오고 모금에 참여한 사람도 교회에 나옵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남의 한 목사님은 처음 시골교회에 부임했을 때에는 교인이 한명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도 어려워서 월 30만원의 지원을 받으려고 <나눔과 기쁨>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지금 CMS만 月백오십만원을 모읍니다. 그리고 교인수가 30명이 넘으면서 자립을 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목사님도 교인이 2-30명에서 1백오십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4층 건물을 사서 중형교회가 되었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충남의 한 목사님도 처음 나눔과 기쁨을 시작할 때에는 교인이 2-30명에 불과했는데 그후 교인이 백오십명까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에게 도운 사람들 중에 몇 명이 교회에 나옵니까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백 가정을 도왔는데 2-3년이 지나니까 70 가정이 교회에 나오더랍니다.

이렇게 도움받는 분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고마워서 나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분들이 나누미 목사님의 행동을 보고 감동이 되어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인생이 너무 힘들고 절망적이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나누미 목사님들의 목회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하는 일이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무엇입니까? 병자를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자기가 똑같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나누미 목사님들은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할까만을 열심히 고민하면서 수없이 교회성장 세미나를 찾아다녔는데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예수님처럼 사니까 그 모습이 감동을 주면서 교회가 성장한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누미 목사님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잘못 목회를 했구나” “교회성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분투해야 하겠구나”하고 깨닫습니다. 목회철학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부터는 교인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회의 성공여부가 교인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얼마나 분투하는가 입니다. 목회철학이 바뀌니까 그 다음부터는 큰 교회 목사님들 앞에서도 당당해 집니다. 노회에 참석해서도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너무도 신나고 행복한 목회가 됩니다. 내가 열심히 예수님처럼 사는 것만으로 나의 목회는 성공입니다.

나누미 목사님들은 제게 “목사님께서 저희에게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개척교회 명함을 가지고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매우 어려웠답니다. 전도하려고 한다며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실무자의 명함을 갖고 다니면서 누구든지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명함을 가지고 구청관리들을 만나면 종교편향 소리를 듣기 싫어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나눔과 기쁨>실무자로 가면 얼마든지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사님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주위의 친구목사들이 묻습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니? <나눔과 기쁨>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바뀌었어. 그래? 그러면 나도 하자. 이렇게 되어서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20명이 다음해에 3백명이 되었고, 다음해에 7백명, 다음해에 천삼백명, 작년말에 2천6백명, 그리고 지금은 3천5백명이 되었습니다.

2. 나눔과 기쁨의 목표 : 예수님처럼 사는 삶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눔과 기쁨>에 대한 설명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나눔과 기쁨>을 민간사회안전망운동이라고 설명했는데 지금은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전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눔과 기쁨>의 목사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도가 너무도 쉽습니다.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기만 하면 전도는 그냥 됩니다. 전도는 목표가 아니라 삶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나눔과 기쁨>전도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점은 저의 목회경험과도 일치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경실련이라는 시민운동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시민운동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입니다. 목사직을 계속 유지하려면 목회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직을 반납해야 하는데 서경석 목사가 갑자기 서경석 선생으로 바뀌면 세상사람들은 제가 교회 안에서 징계라도 받은 줄 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목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조선족 동포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에 와서 고단한 삶을 살기 때문에 심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시민운동을 하고 일요일에만 교회에 가서 설교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서울조선족교회를 세웠습니다. 목사직 유지를 위한 얄팍한 생각인 셈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세우고 조선족동포들을 만나보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고통이 너무 컸습니다. 가정이 깨지고, 빚이 천만원이고, 자식이 아프고, 감옥에 있고, 암이 걸리고.... 세상에 이렇게 불행한 민족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거의 다 불법체류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잡혀가고 추방당합니다. 빚도 갚기 전에 중국으로 추방당하면 이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동포들은 나한테 매달립니다. 목사님 살려주십시오. 나는 개인적인 필요 때문에 교회를 시작했는데 걸려도 된통 걸린 셈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조선족동포들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꾀많은 나를 꾀까지 쓰게 하면서 이들에게 보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각오했습니다.

금년 6월, 우리교회는 창립 십일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저는 죽을 각오로 단식을 여섯 번이나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25일간 단식을 했습니다. 10일, 17일, 23일, 10일, 18일, 25일이 되는데 우리가 완전히 이길 때까지 무기한으로 단식했습니다. 한 번은 단식 23일을 하던 때에 단식 17일째가 되었는데 위출혈이 났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시꺼먼 짜장면을 대야로 하나를 쏟았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다 정신을 잃었는데 붉은 피를 입으로 한 대접을 토했습니다. 즉시 병원으로 실려가서 수혈을 하고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위출혈이 무서운 줄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긴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더라면 생명이 위험할 뻔 했습니다. 레이저로 피 나오는 곳을 지진 후에 다시 단식을 계속했습니다.

단식 23일이 되니까 법무부가 완전히 손을 들었고 저는 또다시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피를 쏟던 장면을 지켜보았던 조선족 동포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끼리 토론했는데 도저히 해답을 못 찾았습니다. 왜 목사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십니까? 목사님이 중국에 와서 인민대회 의원이 될 것도 아니고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목숨을 바치십니까?”

저는 그분들에게 “당신들이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한 달 동안 예배에 참석해서 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분들이 한 달 동안 제 설교를 듣고 나서 다시 제게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아무리 예수천당을 외쳐도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전도는 전도의 때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에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예장통합측 총회가 창립 백주년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목사님들의 후손을 초청해서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증조부가 황해도 소래에 한국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운 서경조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저도 그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제주도 선교를 처음 하신 이기풍 목사님의 막내 따님을 만났습니다. 그 권사님이 이기풍목사님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목사님이 제주도에 가서 정말로 헌신적으로 주민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주민들이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듣게 되었는지 저는 정말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전도는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죽을 각오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면 됩니다. 이슬람선교가 어렵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주민을 죽도록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나라 주민들이 반드시 질문하게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왜 이역만리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때가 바로 전도의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면 그들은 반드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나눔과 기쁨>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문준경 전도사입니다. <나눔과 기쁨>이 출범예배를 가질 때 돌아가신 김준곤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처음 문준경전도사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은 전남 증도에서 병들어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거지들을 위해 “대신거지” 노릇을 했습니다. 아침밥을 짓는 집마다 돌아다니며 누룽지를 얻어다 죽을 끓여 병든 거지들을 돌보았습니다. 문준경전도사의 이 모습을 보고 섬 안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주민들 전원이 예수믿는 일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문준경 전도사님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에 전부다 예수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이야말로 <나눔과 기쁨>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온 국민이 예수 믿는 날이 얼마든지 올 수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3. 반찬나눔운동이 갖는 의미

<나눔과 기쁨>이 2009년부터 시작한 사업이 있습니다. 부산의 나누미 목사님 두 분이 반찬나눔을 시작했습니다. 반찬나눔을 하게 된 이유는 밥은 전기밥솥 버튼만 누르면 되지만 반찬은 먹거리를 사서 조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찬 없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목사님들이 매주일 일주일분 반찬 도시락을 50개씩, 70개씩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더랍니다. 뿐만 아니라 반찬 만드는 비용도 주위에서 돕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 싸졌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은 이 사업을 전국 규모로 하기로 했습니다. 큰 교회가 반찬을 만들면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그 반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남, 천안, 대구, 인천, 광주, 울산, 서울, 대전, 부산 등 거의 모든 도시에서 매주일 1만 2천개의 반찬 도시락이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반찬나눔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는 이 운동의 반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서울 구로구의 한 목사님은 매주일 25개의 반찬도시락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16가정이 교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그 중 아홉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반찬나눔사역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반찬나눔이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함께 하는 共生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작은 교회가 5개의 반찬도시락을 만들면 여기에 큰 교회가 5개를 보태주는 방식으로 이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을 통해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간의 상처가 치유되고 있습니다.

저는 전에는 작은 교회 목사님의 고통과 恨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나눔과 기쁨>을 하면서 그분들의 고통과 恨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여 목사님은 열심히 주일학교를 해서 아동들의 숫자가 50명이 되었는데 인근의 큰 교회가 하기성경학교를 하니까 아이들의 삼분지 이가 큰 교회로 옮겨 갔더랍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상가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하필이면 큰 교회 셔틀버스가 자기교회 앞에서 교인들을 실어 나르더랍니다. 그것도 후라이펜을 하나씩 선물로 주면서... 이 모습을 본 목사님은 억장이 무너지지요.

저는 전에는 큰 교회에서의 예배를 즐겼습니다. 큰 교회에서 예배를 보면 참으로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의 아픔을 알고부터는 큰 교회에서 예배 보는 것이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잘 아는 목사님이 교회를 세웠는데 교회가 급속성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축하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교회 주변의 수십 개 작은 교회가 문을 닫았겠구나하는 생각만 났습니다.

큰 교회는 더 커져서 교회당을 증축하는데 작은 교회는 매년 3천교회 씩 문을 닫습니다. 큰 교회들은 기독교가 계속 부흥하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지난 십년동안 교인수는 14만명이나 감소했습니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로부터의 수평이동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교인들이 수평이동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배려해야 합니다. 최소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교는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큰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일반 사회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襟度(금도)가 있어서 대기업은 선박,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업종만 하고 수건, 세수비누 등 중소기업이 하는 업종에는 들어오지 않는데 한국교회에는 이런 역할분담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작은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보도록 큰 교회가 도와야 합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간의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4. 작은 교회에 주신 사명

<나눔과 기쁨>의 가장 큰 성과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자신을 향해 주께서 주시는 사명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제까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어디를 가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첫 번째 자각은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작은 교회에 맡기셨다는 점입니다. 큰 교회들이 종종 조선족 돕는 행사도 하고 노숙자를 돕는 행사도 합니다. 그런데 조선족 동포들이 그 행사에 가서 오리털 잠바를 선물로 받았는데 고맙다는 생각은 없이 당연한 것처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은 작은 교회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이 반찬도시락을 들고 독거노인을 찾아가면 그분들은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큰 교회 프로그램에는 스킨쉽에서 오는 감동이 없습니다.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서 감동을 주는 일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 목사님 자신이 많은 시련을 겪어 왔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에게 힘을 주는 영적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와 큰 교회는 역할분담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작은 교회에게 맡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작은 교회 목사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해야 합니다.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국가적인 과제나 식자층, 중산층, 상류층에게 전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수평이동을 해서 교인들이 큰 교회로 갑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예수님을 따르기가 훨씬 쉽다는 점입니다. 초대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이 힘없는 자, 아무 것도 아닌 자를 들어 힘있는 자를 무력하게 하신 것처럼,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 것처럼, 작은 교회가 갖는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은 예수님을 따르기도,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편이 되기도, 큰 교회 목사님보다 훨씬 쉽습니다. 부자가 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했는데 대형교회 목회자도 부자청년처럼 가진 것이 많으면 예수님 따르기가 너무 힘듭니다. 또 작은 교회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말하기도 쉽습니다. 이렇게 작은 교회에 특권이 있었지만 이점을 깨닫지 못하다가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면서 이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껴안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나눔과 기쁨>은 주님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을 부르고 계심을 깨닫게 해주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나눔과 기쁨>과 만나면서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쓰고 나아가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사람들은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스스로 주눅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작은 교회 목사들을 주눅 들게 만들었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합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이제부터는 작은 교회가 한국교회의 갱신과 부흥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오랫동안 초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이끌어 왔는데 지난 십년간 기독교 인구는 오히려 14만명이나 감소했습니다. 대형교회가 주도해 온 한국교회 성장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지나간 70년대에는 기독교가 2.4배나 성장했는데 지금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면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성장제일주의”가 근본적으로 파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독교의 문제점을 성장제일주의로 인한 물질만능주의, 상업주의, 개교회주의와 같은 대형교회의 병리적 현상(mega church syndrome)에서 찾고 있습니다. MBC나 SBS의 기독교 고발도 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나간 70년대에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했지만 지금과 같은 성장제일주의는 없었습니다. 수백, 수천의 교회 젊은이들이 독재와 싸우다가 감옥가는 모습을 보고 예수 믿으면 저렇게 강해지는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70년대에는 자기 교회에 새 신자가 매주일 열명 씩 자기 발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전도해도 매주 한두 명의 새 신자가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왜 지금은 교회가 그렇게 열심히 제자훈련을 하는데도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않는가? 한마디로 교회가 예수님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초대형 교회는 자기들끼리 安住하고 自足하는 모습만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70년대와 같은 감동이 없다 보니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또 그래서 교회로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지금 岐路에 서 있습니다. 계속 대형교회 중심의 성장제일주의로 갈 것인가 아니면 크게 방향전환할 것인가의 기로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고 자기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할 것입니다. 이제는 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살려는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나간 70년대의 ‘기적적인 교회성장’을 再現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크기로 교회를 평가하는 태도가 바로 성장제일주의인데, 이 생각이 한국교회 위기의 근본원인이었습니다. 70년대에는 십자가를 지고 고난당하는 교회들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교회성장이 교회평가의 절대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목사들도 교인의 비위를 맞추는 설교만을 하지 않았고, 또 그랬기 때문에 교회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었고 우리민족의 희망도 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발로 교회를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작은 교회를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교회를 美化하면 안 됩니다.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으니까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도 큰 교회와 똑같이 성장제일주의라는 병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회개와 결단이 쉽습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 힘들었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쉽게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강도만난 자를 보고도 지나쳤지만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은 참된 이웃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작은 교회가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主役으로 부름 받았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부흥하지 못한 이유는 작은 교회들이 이 자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들은 반드시 연대해야 합니다. 연대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수천 수만의 작은 교회가 함께 예수님처럼 살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결단하기 어렵지만 공동으로 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중형교회, 대형교회, 초대형교회도 이 대열에 반드시 동참할 것입니다.

2013년 부산에서 WCC 총회가 개최되어 6억의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교회지도자 6천명이 2주간 한국에 머물게 됩니다. 이 기회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교회가 WCC 총회에 온 세계교회 지도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지금 뚜렷하게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눔과 기쁨>의 책임이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눔과 기쁨> 활동가가 3천5백명이지만 내년 말이면 1만명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 1만명의 목사들이 예수님처럼 살 것을 결단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놀라운 교회의 부흥을 이루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2천년전에 갈릴리에서 하신 일들을 再現해내야 합니다.

5. 예수님처럼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자.

예수님은 기적으로 사랑을 보여주셨지만 우리는 기적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작은 교회 목사님이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으로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 수 없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매일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으로 하면 가능합니다. 이를 테면 경제적 이유든, 가정분란이든, 법적인 문제든, 건강문제든 절망에 빠진 사람은 <나눔과 기쁨> “위기의 전화”에 연락하게 합니다. 그러면 나누미 목사님들이 매일 당번을 정해 그 전화를 받고 번갈아 돕는 일에 나서면 우리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데 우리도 발마사지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나누미와 교인들이 발마사지를 배워 발사랑봉사단을 만들어서 어려운 이웃에게 발마사지를 해주는 것입니다.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발사랑봉사단이 발마사지를 하면 그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개인적으로 다짐해도 그렇게 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은 나누미들이 예수님처럼 살 것을 특별히 결단하고 서약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7월에는 84명의 나누미들이 1박2일 수련회로 모여 예수님을 따르는 “따르미”가 될 것을 서약하는 비밀훈련 프로그램을 가졌습니다.

또 <나눔과 기쁨>은 작은 교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왔습니다. 제일 대표적인 것이 “민간사회안전망운동”입니다. 그래서 매월 1억5천만원을 CMS로 정기모금을 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습니다. 최근에 본부는 나누미들이 정기 후원자들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하나은행과 제휴해서 “나눔과 기쁨 가족카드”를 만들었습니다. 후원자들이 <나눔과 기쁨 가족>이 되어 서로 돕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가족” 중에 안경점이 있으면 가족들은 그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춥니다. 그대신 안경점은 가족들에게는 20%싸게 해 줍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음식점은 5%, 마트는 10%, 주유소는 리터당 백원, 이렇게 “나눔과 기쁨 가족”에게 할인혜택을 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후원자가 되어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움을 줄 수혜자도 이 카드를 갖게 하여 혜택을 받게 합니다.

반찬나눔운동도 <나눔과 기쁨>의 대표적인 활동입니다. 매달 전국적으로 5만개의 반찬도시락이 가난한 이웃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이 반찬나눔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 支部후원의 밤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금년 하반기에만 열여섯 개 市郡區 支部가 후원의 밤을 개최했거나 개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 아주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도록 교회 안에 <나눔과 기쁨>가게를 두게 됩니다. 이 가게는 두루마리 화장지, 비누 등 생활필수품, 민들레, 홍삼, 천마 등 건강식품, 생태식품들을 획기적으로 싼 값에 판매하여 월 30만원이 있어야 한 달을 사는 사람이 월 25만원에도 살 수 있게 만듭니다. 카다로그 판매를 하기 때문에 가게를 내는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나눔과 기쁨>은 이 일을 위해 지난 7월에 사업단을 만들고 민들레와 홍삼부터 배급을 시작했습니다.

또 “쓰지 않는 물건 모으기”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돈을 모금하기는 어려워도 쓰지 않는 물건 모으기는 쉽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눔과 기쁨>은 2008년에 미얀마에 40피트 컨테이너 다섯 개를 보냈고 2010년에는 대구의 학부모연합봉사단과 학생들이 모은 재활용품을 인도뱅갈로어 불가촉천민들에게 보냈습니다. 앞으로 동네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도 이 활동을 계속합니다.

또 불우청소년을 돕는 장학사업 “Wee Together"을 시작하여 멘토교사 교육을 하고 작은 교회목사님들이 불우청소년의 멘토가 되게 합니다.

<나눔과 기쁨>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나누미목사님의 교회가 중심이 되어 동네마다 <나눔과 기쁨 후원회>도 만듭니다. 동네 안의 의사, 변호사, 약사, 기업인 등 동네유지들을 후원회의 상임대표, 공동대표, 고문, 지도위원, 운영위원으로 추대하고 후원회가 중심이 되어 <00동 나눔과 기쁨 후원의 밤>행사를 개최하여 성금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습니다. 이렇게 되면 빠른 시간 내에 민간사회안전망이 자리잡게 됩니다. 발사랑봉사단도 쉽게 만들고 <쓰지않는 물건 모으기>운동도 하고, 나눔과 기쁨 가게도 하고 나눔과 기쁨 카드도 보급하고 반찬나눔도 확대되고 각종 시상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도 크게 부흥합니다.

그 외에도 정부가 지원하는 활동인 지역아동센터, 다문화센터, 요양보호사파견센터 활동도 열심히 합니다. 특별히 요양보호사파견센터는 나누미들의 사역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나눔과 기쁨>은 정부의 복지프로그램을 나누미에게 소개하는 안내자 역할을 열심히 할 것입니다.

또 병을 고치는 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특히 암과 같은 중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에는 기도밖에 할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을 현대의학은 고치지 못하지만 오히려 자연의학은 고칠 수 있습니다.

서울조선족교회의 교인인 정순옥집사(55세)가 대장암수술을 받았는데 임파암으로 轉移되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자연치유방식을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백30만원을 내고 단식원에 가서 9박10일 단식을 하면서 관장을 하여 몸의 독소를 빼내는 일을 했습니다. 전국의 나누미에게 호소하여 정순옥집사가 갈 수 있는 산골이 있는지 수소문했습니다. 이 호소에 23명의 나누미가 응답해 왔습니다. 소개하는 지역들을 답사한 후 강원도 정선지역을 택했습니다. 정순옥집사가 그곳에 가서 살면서 유기농 채식, 생식으로 식사하고 풍욕을 하여 암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나눔과 기쁨>은 이 일을 계기로 <생태건강운동본부>를 만들어 중병환자를 치유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누미목사님 교회에서 중병환자가 발생하면 그분을 <나눔과 기쁨>단식프로그램에 참석하게 하여 몸안의 독소를 빼냅니다. 그리고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이 있는 산골에 가서 생채식을 하며 살게 합니다.

또 너무도 많은 병을 <카이로프락틱>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카이로프락틱은 손으로 병을 고치는 것인데 이를 위해 <나눔과 기쁨>은 작은 교회목사님에게 아주 싼 값으로 카이로프락틱을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건강센터>가 되어 교인들과 동네사람들의 건강을 챙기자는 것입니다.

또 농촌에서는 <나눔과 기쁨>이 생태운동에 앞장설 예정입니다. 농촌의 살 길은 생태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값싼 외국농산물에도 대항할 수 있고 도시사람들도 다시 농촌으로 되돌아옵니다. <나눔과 기쁨>은 금년 12월 16일에서 18일까지 옥천군에서 생태세미나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농촌나누미들이 교인들로 하여금 농약을 치지 않는 농사를 짓도록 유도할 것인가를 논의하려고 합니다. 농약을 치지 않으려면 지력이 회복될 때까지 3년간 소출 감소를 견뎌야 합니다. 그러려면 군이나 도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도시도 소비를 도와야 합니다. 나눔과 기쁨 생태건강운동본부는 <나눔과 기쁨>옥천군지부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옥천군과 충청북도와 협의할 예정입니다.

농촌교회는 앞으로 생태운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리고 토종 간장, 된장, 고추장 담그기, 산야초 효소만들기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시의 나누미들은 생태가게를 내어 현미, 잡곡, 유기농제품, 야채, 과일, 건강식품 등 유기농 제품들을 판매해야 합니다. 농촌나누미가 생태농산물을 공급하고 도시나누미가 소비하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눔과 기쁨>은 도시의 노인들이 歸農해서 살게 하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농촌에는 매달 30-40만원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지원까지 보태지면 시골의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얼마든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또 농촌에 그룹홈이나 요양보호시설을 만들어 정부지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6. 끊임없이 <나눔과 기쁨>의 체제를 바꾸어가자

<나눔과 기쁨>은 그동안 급성장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급성장을 해 가려면 계속 체제를 바꾸어가야 합니다. 다음의 다섯가지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중심적인 활동단위가 바뀌어가는 일입니다. 초창기에는 활동이 주로 중앙본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3년 후에는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각 연합회가 중심적인 활동단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시군구 단위의 支部조직이 중심적인 활동단위가 되어 각 지부단위로 후원의 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2011년 말까지는 모든 시군구에서 지부조직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각 동네가 주요 활동단위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동네후원의 밤이 시작됩니다.

둘째, 각 연합회 본부장 및 지부장의 임기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지역책임자의 임기가 없었지만 이제는 나누미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임기제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합회 본부장의 임기는 3년, 지부장은 2년으로 제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임기도 더 단축되고 있습니다. 이미 서울<나눔과 기쁨>은 본부장 임기를 1년으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셋째, <나눔과 기쁨>이 더이상 작은 교회 목사님들만의 조직으로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 살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작은 교회가 중심이 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큰교회와 중형교회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각 연합회와 지부에서 큰 교회 목사님들이 상임대표와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넷째, 목사들의 운동이라는 <나눔과 기쁨>의 성격도 바뀌어질 것입니다. 내년부터 각 동네별로 후원회가 조직되게 되면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동이 바뀌어질 것입니다.

다섯째, 프로그램의 다양화가 이루어지면서 프로그램의 주체도 본부사무국에서 각 나누미들로 옮겨질 것입니다. 연합회본부장이나 지부장만 일하는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각 支部에서 십여명의 목사님들이 전부 나서서 프로그램을 하나씩 맡아야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됩니다. 이렇게 <나눔과 기쁨>이 끊임없이 변화되어야 나누미 1만명 시대를 맞을 수 있습니다.

7. 교포사회와 해외에서도 <나눔과 기쁨>을 만들자.

금년 7월에 뉴욕, 워싱튼 DC, 엘에이가 가서 <나눔과 기쁨>설명회를 가졌습니다. 그 결과 뉴욕에서 20명, 워싱튼DC에서 열명, 엘에이에서 20명의 나누미가 배출되었습니다. 그후 뉴욕의 <나눔과 기쁨>은 크게 활성화되어 11월 16일 출범대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교포사회에서는 교인들의 수평이동 현상이 한국보다 더 심하기 때문에 <나눔과 기쁨>운동에 대한 호응이 큰 상황입니다. 한국의 방식과 미주교포사회의 방식은 같지 않겠지만 그 원리는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산다면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복음이 반드시 전파됩니다. 그러면 미국교회도 다시 부흥할 수 있습니다.

또 해외에 <나눔과 기쁨>운동을 확산시키는 일도 필요합니다. 선교사들이 안식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나눔과 기쁨>을 알고 나서는 이 운동이 해외에서도 확산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몇 년전부터 해외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나눔과 기쁨>은 실무자를 해외에 내보내기 보다는 해외 한인선교사 중에서 헌신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사를 찾아 그 분을 도우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선교사는 한편으로 자기를 파송한 선교단체에 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나눔과 기쁨>에도 속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선교사는 <나눔과 기쁨> 덕분에 열심히 사랑실천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선교활동도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저는 <나눔과 기쁨>경험이 해외선교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재작년에 미얀마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미얀마의 토착교회 목사님들에게 봉급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50불, 백불의 돈은 우리에게는 작은 돈이지만 그들에게는 한 달 봉급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봉급 받는 목사님들은 자기 교회 교인들을 섬길 생각은 하지 않고 열심히 한국인 선교사들만 뒤좇아 다닙니다. 이렇게 되면 한인선교사들이 그 나라 교회들을 스포일(spoil)시키는 것이 됩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한국교회 초기의 미국선교사들이 얼마나 훌륭한 분들이었나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분들은 네비우스 선교전략에 의거해서 한국교회 목사님들의 봉급을 절대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또 한국교회가 건축을 하더라도 돕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교인의 헌금으로 교회가 유지되도록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선교전략이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한인 선교사들은 지금 돈으로 선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돈질’을 합니다. 미얀마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가 성장제일주의, 물질만능주의, 실적주의에 빠져 있다 보니 선교사들도 실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도 새는 격입니다. 현지교회 목사님들에게 봉급을 준다면 한국교회 교인들은 좋아하겠지만 실제로는 현지교회들을 병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눔과 기쁨>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나눔과 기쁨>은 활동가(나누미)가 동네에서 열심히 모금을 해서 그 동네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 <나눔과 기쁨>본부는 이들 나누미들에게 활동비를 지급했습니다. 이것이 민간사회 안전망의 내용입니다.

국제<나눔과 기쁨>도 해외에서 이 방식으로 현지교회 목사님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현지교회 목사님들이 동네에서 열심히 모금을 해서 동네안의 가장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나눔과 기쁨>은 모금한 돈에 매칭펀드로 돕고, 나누미목사님에게도 활동비를 지급합니다. 이렇게 하면 현지교회 목사님들이 더 열심히 지역의 어려운 사람을 섬기게 됩니다. 우리는 현지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는 방식으로 돕지 않고 현지교회를 살리는 방식으로 도와야 합니다.

금년 초에 <나눔과 기쁨>은 인도 뱅갈로어 시의 인도 목사님 50명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에게 <나눔과 기쁨>방법론을 설명했더니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과 함께 <나눔과 기쁨>뱅갈로어 지부를 창립했습니다. 뱅갈로어에서 인도의 목사님을 나누미로 훈련시켜 민간사회안전망 활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국내의 각 연합회와 지부 산하에 국제위원회를 두어 국제나눔운동에 각 지부가 활발하게 참여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이미 <나눔과 기쁨>대구연합회는 인도뱅갈로어市의 불가촉천민 돕기를 하기로 하고 금년 11월말에 뱅갈로어의 밤 행사를 갖습니다. 또한 이번에 대구의 중고등 학생들이 쓰지 않는 물건을 모아 인도 뱅갈로어에 보냈습니다.

8. 작은 교회가 성장하도록 돕자.

<나눔과 기쁨>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단체이지만 작은 교회를 돕는 프로그램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목사님들이 <나눔과 기쁨>활동에 참여할 것입니다.

2011년 여름에는 각 支部단위로 작은 교회들이 연합해서 질 높은 하기성경학교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작은 교회를 떠나지 않게 됩니다.

또 결혼중매사이트도 준비중입니다.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대부분 작은 교회를 떠나 큰 교회로 수평이동을 합니다. 만일 작은 교회를 떠나지 않더라도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작은 교회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어렵지 않게 배우자를 구할 수 있어야 작은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추천하에 “결혼중매 사이트”에서 배우자를 찾게 합니다.

작은 교회목사님은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히는 기회가 쉽지 않습니다. 목사님들이 유럽을 왕복하는 비행기값만 준비하면 <나눔과 기쁨>이 책임지고 두주간 유럽을 순방하는 연수프로그램을 마련합니다. 이미 베르린, 파리, 런던, 고펜하겐 등 각 도시의 교회교회 목사님들이 숙식제공과 교육을 담당하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작은 교회의 목회를 돕는 프로그램을 <나눔과 기쁨>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9. 교회가 민족의 희망이 되게 하자.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결단하면 가난한 사람을 섬기는 일 뿐만 아니라 교회가 나라와 민족의 희망이 되도록 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도 감당해야 합니다. 과거에 한국교회가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것처럼 우리는 지금 시대에 맞는 민족적 과제 해결에 앞장서야 합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이유는 그분들이 이러한 민족적 과제 해결에 앞장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가 사회적 책임에 무관심하면 결코 한국교회의 주체세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민족적 과제인가? 선진화와 통일입니다. 그런데 선진화라고 해서 경제선진국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경제선진국임과 동시에 생태선진국, 복지선진국, 정신선진국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선진화는 쉽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뿐입니다. 브라질, 알젠친, 체코 등 많은 나라가 선진국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이 되려면 선진화 개혁에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사회를 보다 효율적이고 경쟁적인 사회로 만들면서 사회적 형평도 실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진화 개혁이 쉽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화 세력이 결집되어 反선진화 세력을 강력하게 제압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진화 세력을 어떻게 구축하나? 지금 기독교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이 세력의 결집이 불가능합니다. 제가 그동안 시민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지금의 시민단체들은 다 좌편향이 되어버려 이들 안에서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을 찾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세력이 새롭게 결집되어야 선진화세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선진화/통일세력이 제일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종북좌파세력과 단호하게 맞서는 일입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이 세력이 우리나라에 강력하게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북한이 망하기 직전인데 무슨 종북좌파가 있겠냐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맥아더동상을 철거하려는 세력이 수천 명이 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제가 나라걱정에 밤잠을 자지 못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도대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는 세력은 어떤 세력입니까? 인천상륙작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김일성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세력입니다. 그야말로 꼼짝없는 從北좌파입니다. 그래서 맥아더동상 철거사건은 우리사회에서 종북좌파가 자기의 실체를 뚜렷하게 국민 앞에 드러내 준 사건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후 이들 세력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전교조, 민노총, 민노당, 전농, 한총련, 범민련, 통일연대, 민중연대, 진보연대 등 3-40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직화된 세력이었습니다. 물론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이 단체들은 전부 종북좌파세력의 통제 하에 있습니다. 저는 철거사건에 대해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은 어떤 입장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단체에 메일을 보내어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단체도 철거사건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단체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의 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만일 내가 종북좌파들을 반대하면 틀림없이 시민운동 후배들이 나보고 꼴통보수라고 말하고 서경석을 변절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 말이 정말로 듣기 싫었지만 나는 내가 진정으로 애국자라면 꼴통보수라는 말을 들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을 고민하다가 “지금의 시대정신은 친북좌파를 척결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저는 꼴통보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내가 보수로 불린다면 보수는 좋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종(친)북좌파 척결”은 절대로 보수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른 생각입니다. 우리 역사에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미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은 역사에서 청산되었습니다. 개인은 존재해도 세력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친(종)북좌파세력이 청산되어야 합니다. 진작에 청산되어야 했는데 아직도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보수도 진보도 다 있어야 하고 우도 좌도 다 필요하지만 종북좌파는 안 됩니다. 좌파와 종북좌파를 엄격히 구분해서 종북좌파를 악착같이 척결해야 역사가 한 단계 진전합니다.

특별히 민주당은 전교조같은 종북좌파와 손을 잡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는 한 민주당은 절대로 정권을 잡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전교조가 설칠 터인데 그 꼴을 어떻게 보나하고 생각하는 국민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종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면 당장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곧 회복이 되고 정권잡을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평생을 진보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사람조차도 민주당을 반대한다면 민주당은 정권잡기 힘들 것입니다.

사실 저는 시민운동과 기독교운동은 특정정당을 지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탈선입니다. 저는 과거에 경실련운동을 하면서 노태우정권, 김영삼정권, 김대중정권 하에서 한 번도 특정정당을 지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정권 하에 들어와서는 도저히 중도의 입장을 견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나라당을 지지했습니다. 종북좌파와 연대하는 정치세력을 반대하다보니 한나라당 지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시 과거의 중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민주당이 전교조, 민노총, 범민련, 한총련과 같은 김정일 추종세력과 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저는 즉시 한나라당 지지를 중단하고 정치적 중립을 선택할 것입니다.

특별히 저는 호남지역의 기독교인들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 광주의 기독교는 주민의 40%입니다.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히 큽니다. 그런데 광주의 교회가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그렇다면 호남의 교회지도자들은 민주당에게 친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합니다. 교회가 정당에 영향을 끼쳐야지, 거꾸로 정당이 교회를 지배한다면 이는 옳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김정일 세력과의 싸움을 영적인 싸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김정일 세력은 사탄의 세력입니다. 북한정권은 자기들의 최대의 적을 기독교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국민교육 장소인 신천 역사박물관은 反기독교 선전장입니다. 저는 신천역사박물관을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 증조부되시는 서경조목사님이 다른 초대교회 목사님과 언더우드목사님 아들인 원한경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데 그 밑에 “양키의 앞잡이 야소교인들”이라는 설명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막 항의를 하니까 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떼지 않았고 지금도 그 사진은 그곳에 걸려 있습니다. 그 사진은 신천역사박물관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한국교회가 북한에 식량을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성경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발각되면 무조건 정치범수용소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김정일세력이 기독교를 옳게 본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김정일 수령독재체제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지 않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은 다 가짜입니다. 제가 북한을 여섯 번이나 갔었고 갈 때마다 봉수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처음 봉수교회에 갔을 때는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살짝 한 여신도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까? 그랬더니 “자기 할머니가 권사님이었는데 할머니 무릎에 누워 찬송가를 배웠는데 후에 봉수교회가 세워져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 답변이 질문받을 때마다 항상 하는 상투적인 답변인줄을 모르고 저는 귀국 후에 성령님의 놀라운 役事에 감격해 하는 설교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4년전인가 워싱튼에서 프리덤하우스가 주최하는 북한인권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탈북자인 김형식교수가 발제를 했습니다. 그분은 35년간 김형직 사범학교의 국어교수를 하다가 모스크바 대학의 조선어 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부인은 반드시 평양에 “인질”로 남아야 합니다. 그래서 김형식교수는 중앙당에 부인이 봉수교회 교인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봉수교회 교인은 대남공작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주로 구성되는데 교인이 되면 외국인과의 접촉이 잦아 식량과 의복의 배급이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앙당은 봉수교회 교인이 300명인데 이미 교인이 되려고 신청한 사람이 60명이 있어서 부인을 61번째 대기자명단에 올려놓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부인이 봉수교회 교인이 되려면 십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할 수 없이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몇달 전에 인명진 목사님이 북한을 다녀왔는데 봉수교회에 가지 못했답니다. 방문객이 없는 줄로 알고 교회가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목사님이 봉수교회가 가짜임을 확인해 준 셈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20년 동안 봉수교회가 가짜인 것을 모르고 계속 교류하고 공동기도문을 교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20년간 속았으면 되었지 어떻게 가짜인줄 알면서도 사기극을 계속합니까? 아프리카 최고 독재자는 이디아민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독재국가가 미얀마입니다. 그런데 저는 북한이 이디아민처럼 되고 미얀마처럼 된다면 더 이상 願이 없겠습니다. 미얀마가 동남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이지만 그래도 종교의 자유는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도 없는 나라는 지구상에 북한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북한 김정일세력과의 담대하게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기독교가 북한을 무너뜨리려고 하거나 북한과 전쟁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절대로 북한을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평화를 추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평화만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인권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평화만을 추구하겠다는 생각은 북한의 인권참상을 외면하는 대가로 남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북의 김정일로부터 보장받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은 너무도 이기적인 생각이어서 기독교인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야당은 북한인권을 말하면 평화가 깨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권을 개선시키지 않으면서 평화만 추구하면 그 평화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아닙니다. 사이비 평화, 거짓평화입니다.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십년간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추구한 평화도 이런 평화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인권문제를 말하니까 그 순간 그대로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북한인권을 말해야 합니다. 북한체제가 조금씩이라도 유연하게 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개방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끝까지 경직된 체제로 가면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북한인권을 말하는 이유는 북을 붕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북을 연착륙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또 우리가 천안함사건 후에 북한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전쟁하자는 것나 다름없다고 야당은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