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고난은 인간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크기와 심각함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난 일생 동안 고난이나 고통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일이 없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인생의 굴곡을 피할 수 가 없고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 길' 이라는 걸 수긍을 하게 된다면 그 길이 한결 같이 넓고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시는 것이 되실 것 입니다. 그 나그네 길 은 험난할 때도 있습니다. 예기치 않던 폭우가 쏟아져 입은 옷과 봇짐을 적실 때가 있고 폭풍 때문에 봇짐마저 날려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인심 좋은 사람을 만나 따스한 음식과 아랫목의 대접을 받으며 은혜를 경험하는 때도 있습니다. 인삼 뿌리나 칙 뿌리를 발견하여 시장기를 해결하고 힘을 얻은 경험도 있습니다. 양지바른 땅에 곡식이 풍성하고 과일이며 비단이며 금덩이 등을 가득 채운 빈 집을 만나 마냥 그곳에 머물고 평화와 안일을 누리게 되는 행운의 경험을 하는 사람 또한 있습니다. 인생길은 반드시 굴곡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길에서 예기치 않던 일을 당할 때마다 우리의 반응은 있게 마련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강한 신념과 희망을 가지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좌절과 절망 속에 스러져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반응입니다. 인생의 고난을 경험할 때 그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 그 근본을 두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는 우리에게 정해진 시간 속에 계획되어 있지만 그 고난 속에서 우리의 반응은 무엇이 결정지어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욥기서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극심한 고난을 경험한 욥 이란 사람의 고통과 신념과 그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험난한 인생을 경험한 사람이라 해도 '욥' 에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들을 하루에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숨 쉴 틈도 없는 연속적인 시간 속에 험난한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엄청난 재물과 소유물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10명의 아들딸도 순식간에 잃었습니다. '동방의 의인' 이란 명예도 잃고 고난의 욥이 되었습니다. 권세도 존경도 하루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울부짖는 욥의 모습은 인간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극심한 슬픔과 좌절과 혼란과 분노 그리고 의문 속에서 그는 옷을 찢고 머리를 밀어냈습니다. 속수무책이 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자신이 주인 앞에 무릎 꿇으며 '포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인 듯 타인을 원망하고 그 책임을 전가하며 슬픔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쳐서 죽이는 행위였고, 참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자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 은 그렇게 자기의 고난과 역경에 대해 그런 반응을 한 것입니다. 욥은 그 극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이 정당하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신뢰했습니다. 다만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없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경지에서 혼란을 겪고 있었을 뿐이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은 슬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극심한 혼란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으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 이다." 즉 모든 주권과 권위는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과 인간은 알몸뿐, 재산이나 소유물도 모두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믿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욥은 신앙으로 사단을 이겼습니다. "그의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 이다" (1:11) 라고 참소했던 사단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믿음으로 욥 은 사단을 이기고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갑작스런 고난을 당하게 될 때 어떻게 반응하시는지요? 특별히 '평안하다. 행복하다.......' 라며 기뻐하실 때 예기치 않은 일 들이 닥치면 말입니다. 사업이 갑자기 무너지고, 예기치 않던 질병이 찾아 들고, 직장이 떨어지고, 모함의 대상이 되고, 공동체에서 왕따 당하고, 자녀들이 마약중독이란 소식을 듣고, 남편이 외도하고, 아내가 변심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되고, 모든 소유물을 다 잃게 되고, 명예손상을 입고....... 이러한 일 들을 당할 때 놀라고 분노하고 혼동하고 원망하고 좌절하는 것, 또는 의문을 갖고, 통탄해 하는 것…….그것은 인가의 모습을 당연히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신앙심이 아주 돈독한 사람들도 이러한 반응을 피할 수 는 없습니다. 초연하게 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런 분들은 존경의 대상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참모습을 고통 속에 억누르고 감추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난을 당할 때 자신의 신앙을 사단에게 넘겨주지 않는 일 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참소하는 사단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시 하고 우리를 괴롭게 하시는 하나님이라 불신하며 그분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무너뜨려 원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 이다" 라며 사단은 하나님께 아뢰고 또 자신의 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환경을 흔드소서. 아들을 치소서. 사업을 치소서. 남편을 치소서...그리하면 당신을 원망하리이다' 라고 참소하며 시험하도록 허락 받으려 하는 사단은 오늘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절대로 원망하지 말아야 하고 배신하여 돌아서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시며 모든 일에 주권을 가지신 분이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잃는 것입니다. 온 우주가 그분의 것이고 그분께서 때때로 허락하시는 한계 내에서 우리는 땅 의 축복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 은 우연히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계획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공중에 나는 새도 그 분이 허락지 않으시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역경이나 고난도 그분께서 허락하시기 때문이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 계획하신 것이란 사실을 우리는 신뢰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을 신뢰하고 믿고 자신을 그분께 맡기는 일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할 수 있는 우리의 신앙 자세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