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교회(구 프리몬트연합감리교회, 윤동현 목사)에서 정태기 목사(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 원장)를 초청해 치유집회가 31일에 열렸다.
정태기 목사는 이날 집회에서 우울증에 대해 소개하면서 자신의 미국 신학교 오기 전에 있었던 경험담을 간증했다. 그는 1968년 8월에 소록도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좌절을 겪으며 7년이상 공장에서 일하면서 나의 우울증은 극도에 다다랐다. 그런던 중 친구의 소개로 소록도 목사님을 소개받아 찾아갔다"며 그는 말했다.
"8월 뜨거운 여름이었다. 당시, 그 소록도에는 2000여명의 문둥병 환자가 살고 있었다. 1,800명은 이미 병이 나은 사람들이었지만 병의 흔적이 너무 심해 밖으로 나가 살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머리에서 평생토록 잊혀질 수 없던.. 소록도 예배 광경
당시 소록도에 사는 사람들은 노동을 하면서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하루 세번 예배드리고 있었고, 1000명은 노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소록도에 오자마자 곧장 12시예배에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
"예배 시작전에 통성기도시간이 있었다. 천 명이 모인 예배당에 사람들이 '주여주여'하는데, 예배당이 날아갈 것 같았다. 거기서 한명만 아무런 의욕도 없이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러면서, 그는 등 뒤에서 난 한 남자의 격정에 찬 통곡소리를 들었다. '그 은혜를 어떻게 갚겠습니까'라는 말을 반복하며 통곡하는 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싶어서 뒤를 돌아다봤다. 그런데, 그는 코도 귀도 입도 없었다. 머리도 눈썹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불구덩이에 넣었다 뺀것 같았다. 다시 놀라 봤더니 팔도 발도 없었다. 그는 '하나님 그 은혜를 어떻게 갚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태기 목사는 그때 처음으로 마음에 '성령의 불을 받는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내 안에서 통곡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스스로가 겁을 먹었다. 놀라서 마음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소리를 막으려고 했는데 결국 버티지 못하고 넘어졌다. 울음을 참으려고 2, 3분 바닥에서 발버둥을 쳤던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그 사람외에는 예배당에 아무도 없었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알고보니 벌써 예배시작한지 90분이 지나가 모두들 예배당을 떠난 뒤였다"
'감사하고만.. 내 가족 친척 모두 나를 버렸는데, 예수가 나를 소록도까지 따라왔어..'
정 목사는 그 문둥병환자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자, 그는 두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고 했다. "고맙고만.. 감사하고만.. 내 고향, 친척 가족 모두 나를 버렸는데..그런데, 나에게 기쁨과 감사를 주시는 분이 있어. 예수가 따라왔어.. 예수가 나를 소록도까지 따라왔어.."
정 목사는 그때 가족까지 다 버린 문둥병환자에게 찾아와주고 만나주신 '예수가 과연 누구신가'에 대해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였지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가족까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문둥병환자에게 감사의 삶을 깨닫게 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싶어서였다. 며칠만 함께 그 문둥병 환자에게 자게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한 그는 14일동안 좁은 방안에서 함께 먹고 잤다.
그 환자와 함께 먹고자며 감사에 넘치는 삶을 목격했다. "그는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려왔던 나를 위해 통곡하며 기도해줬다. 나는 14일동안 같이 있는동안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그후에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1년후 미국으로 오게 됐다. 나는 미국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그분에게 4년반동안 편지를 썼다. 초등학교도 안가보시고, 자기 이름 석자 하나 못쓰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 분이었다. 내가 보낸 편지를 읽을줄 모르셔서 옆에서 다른 사람이 대신 내 편지를 읽어줬다. 그분이 있었기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도 모른다"
정태기 목사는
크리스천치유상담원(http://www.chci.or.kr/)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한신대교수를 역임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치유상담, 내적치유, 가정사역에 집중적으로 사역해 왔다. 미주각지를 돌며 치유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School of Theology at Claremont(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Kentucky State Mental Hospital(켄터기 주립 정신병원) 원목, 미국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맥코믹 신학대학원) 교환교수, 미국 Nothern Theological Seminary (노던 신학대학원) 교환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계속)
정태기 목사는 이날 집회에서 우울증에 대해 소개하면서 자신의 미국 신학교 오기 전에 있었던 경험담을 간증했다. 그는 1968년 8월에 소록도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좌절을 겪으며 7년이상 공장에서 일하면서 나의 우울증은 극도에 다다랐다. 그런던 중 친구의 소개로 소록도 목사님을 소개받아 찾아갔다"며 그는 말했다.
"8월 뜨거운 여름이었다. 당시, 그 소록도에는 2000여명의 문둥병 환자가 살고 있었다. 1,800명은 이미 병이 나은 사람들이었지만 병의 흔적이 너무 심해 밖으로 나가 살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머리에서 평생토록 잊혀질 수 없던.. 소록도 예배 광경
당시 소록도에 사는 사람들은 노동을 하면서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하루 세번 예배드리고 있었고, 1000명은 노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소록도에 오자마자 곧장 12시예배에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
"예배 시작전에 통성기도시간이 있었다. 천 명이 모인 예배당에 사람들이 '주여주여'하는데, 예배당이 날아갈 것 같았다. 거기서 한명만 아무런 의욕도 없이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러면서, 그는 등 뒤에서 난 한 남자의 격정에 찬 통곡소리를 들었다. '그 은혜를 어떻게 갚겠습니까'라는 말을 반복하며 통곡하는 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싶어서 뒤를 돌아다봤다. 그런데, 그는 코도 귀도 입도 없었다. 머리도 눈썹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불구덩이에 넣었다 뺀것 같았다. 다시 놀라 봤더니 팔도 발도 없었다. 그는 '하나님 그 은혜를 어떻게 갚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태기 목사는 그때 처음으로 마음에 '성령의 불을 받는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내 안에서 통곡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스스로가 겁을 먹었다. 놀라서 마음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소리를 막으려고 했는데 결국 버티지 못하고 넘어졌다. 울음을 참으려고 2, 3분 바닥에서 발버둥을 쳤던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그 사람외에는 예배당에 아무도 없었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알고보니 벌써 예배시작한지 90분이 지나가 모두들 예배당을 떠난 뒤였다"
'감사하고만.. 내 가족 친척 모두 나를 버렸는데, 예수가 나를 소록도까지 따라왔어..'
정 목사는 그 문둥병환자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자, 그는 두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고 했다. "고맙고만.. 감사하고만.. 내 고향, 친척 가족 모두 나를 버렸는데..그런데, 나에게 기쁨과 감사를 주시는 분이 있어. 예수가 따라왔어.. 예수가 나를 소록도까지 따라왔어.."
정 목사는 그때 가족까지 다 버린 문둥병환자에게 찾아와주고 만나주신 '예수가 과연 누구신가'에 대해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였지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가족까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문둥병환자에게 감사의 삶을 깨닫게 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싶어서였다. 며칠만 함께 그 문둥병 환자에게 자게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한 그는 14일동안 좁은 방안에서 함께 먹고 잤다.
그 환자와 함께 먹고자며 감사에 넘치는 삶을 목격했다. "그는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려왔던 나를 위해 통곡하며 기도해줬다. 나는 14일동안 같이 있는동안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그후에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1년후 미국으로 오게 됐다. 나는 미국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그분에게 4년반동안 편지를 썼다. 초등학교도 안가보시고, 자기 이름 석자 하나 못쓰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 분이었다. 내가 보낸 편지를 읽을줄 모르셔서 옆에서 다른 사람이 대신 내 편지를 읽어줬다. 그분이 있었기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도 모른다"
정태기 목사는
크리스천치유상담원(http://www.chci.or.kr/)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한신대교수를 역임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치유상담, 내적치유, 가정사역에 집중적으로 사역해 왔다. 미주각지를 돌며 치유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School of Theology at Claremont(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Kentucky State Mental Hospital(켄터기 주립 정신병원) 원목, 미국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맥코믹 신학대학원) 교환교수, 미국 Nothern Theological Seminary (노던 신학대학원) 교환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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