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인 사제를 두 차례나 주교직에 임명한 미국 성공회를 세계 성공회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으나 세계 성공회 지도부에 의해 기각됐다.

세계 성공회 수장인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를 포함해 총 15명으로 구성된 상임위원회는 런던에서 열린 5일간의 비공개 회의 끝에, “동성애 문제를 둘러싼 성공회 내의 불안들을 감지할 수는 있지만 미국 성공회의 제명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진행 중인 대화를 중단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며 결정을 전했다.

미국 성공회를 탈퇴시켜야 한다는 제안은 지난 5월 미국 성공회가 레즈비언인 메리 글래스풀 사제를 로스앤젤레스 교구 부주교로 임명한 이후 말레이시아 성공회 스탠리 아이작 주교에 의해 제기됐다. 미국 성공회는 앞서 2003년에는 게이인 진 로빈슨 사제를 뉴햄프셔 교구 주교로 임명해 세계 성공회 내에서 최초로 동성애자에게 주교직을 허용했다.

미국 성공회는 이외에도 교회 내에서 사제에 의한 동성결혼 축복을 허용하고 있어서, 이 역시 세계 성공회 내 보수 진영으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 미국 성공회를 세계 성공회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제안은 그동안 수차례 제기되어 왔으나 교단 분열을 막기 위한 노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왔다.

그러나 동성애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보수 지도자들과 교구의 이탈은 또다른 교단 분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동성애를 찬성하는 교구들에 대한 분명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캐너스 키어런 세계 성공회 총무는 “지도부에 대한 의문 제기나 비판이 직접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이같은 분위기를 확인했다.

이를 입증하듯, 올해 초 우간다 앙리 오롱비 주교 등 보수 지도자들은 상임위에서 물러날 것을 표시하며 위원들을 “세계 성공회를 지속적인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장본인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상임위의 결정은 교단 내 동성애 관련 문제에 대해 선포된 모라토리엄 방침을 고수한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