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한인 사회의 번영

애틀랜타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한인 인구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인구 성장에 따라 한인 타운의 규모도 증대되었다. 이 절에서는 애틀랜타 한인 사회 발전에 기여한 애틀랜타 대한항공의 취항을 고찰하고, 한인 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번영한 한인 타운에 대하여 간략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1) KAL 취항과 그 효과

대한항공의 미주 취항은 1972년 4월 LA-서울 노선이 열리면서 시작하였다. 이어 대한항공은 1992년 시카고에 취항하였고 마침내 1994년 10월에는 대한항공 애틀랜타-서울 운항이 시작되었다. 대한항공의 애틀랜타 운항은 애틀랜타 하계 올림픽 개최와 더불어 애틀랜타 한인 사회를 급성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91년 6월 11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항공 협장에 따라 미주 노선 중 애틀랜타를 비롯하여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달라스, 워싱턴 DC 등 5개 도시가 한국 항공사에 개방되기로 하여 애틀랜타-서울 간의 운항이 결정되었다. 이 애틀랜타-서울 간 항로 유치는 이와 관련하여 애틀랜타 한인 상공회의소와 한인회가 한국의 교통부 장관에게 애틀랜타 유치의 당위성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달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한 결실이기도 하였다. 처음 출항을 시작한 애틀랜타-서울 간 항로는 애틀랜타 하츠필드 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로 출발하여 달라스를 경유하여 서울로 가게 되었다.

취항 3년이 되는 1994년 9월 22일부터 대한항공은 화, 목, 토요일 마다 오전 10시 50분에 애틀랜타를 출발하여 다음날 오후 4시 30분에 서울에 도착하던 운행 스케줄을 월, 수, 금요일 오후 5시에 애틀랜타를 출발하여 2일 후 오전 6시 115분에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발 애틀랜타 행 운행 스케줄은 월, 수, 금요일 오후 5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오후 7시 45분에 애틀랜타에 도착하는 것으로 변경하지 않았다.

2001년 2월 1일부터 5월 4일까지는 승객이 다소 적은 기간이기 때문에, 화, 금요일만 운항하였고, 5월 5일부터는 기존의 월, 수, 금요일에서 화, 금, 일요일로 운항 요일을 바꾸어 운항하였다.

대한항공 운항은 2001년 9월 11일 뉴욕 테러 참사의 여파로 인한 이용객 감소와 항공 보험료 등의 인상을 이유로 2001년 10월 8일부터 12월 13일 까지 비수기 기간 중 애틀랜타-인천 노선을 잠정적으로 중단하였다. 그래서 애틀랜타 지역은 물론 미국 동남부 지역 주민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시카고나 뉴욕까지 가지 않고서는 대한항공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1994년 2만5천여 명에 불과했던 애틀랜타 한인인구가 2001년 5만여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애틀랜타 한인 인구의 급소한 성장에 서울과 애틀랜타 간의 항로 개설이 크게 기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한항공 여객기 취항은 애틀랜타 한인 인구의 증가 이외에도 한국 자본의 유입과 한국 기업의 지사와 상사의 개설 등 애틀랜타 지역 한인 경제의 번영에도 크게 기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