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도를 돌아볼 때 유난히도 국내외적으로 그리고 사회전반에 걸쳐서 건강과 생명에 문제가 많았던 해였다. 세계적으로는 전쟁과 테러, 국내적으로는 신용불량과 자살이 큰 뉴스이었던 것이 기억된다. 그러한 와중에서 우리의 건강도 생명도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우리가 하루에도 몇번씩 바라보는 것이 거울과 창문인데 이 두가지를 비교해 본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바라본다. 관심은 나의 모습. 나의 표정과 상태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흡족해 할 수도 있고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이 싫고 자신의 모습에 낙담하기도 한다. 그속에 있는 얼굴도 나를 보고 있어서 내면의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속없는 사람은 피부에서 피부로만 겉에서 맴돌고 있다.
우리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 그러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수 있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할까. 남들이 몸에 좋다는 것을 나도 한번 해보아야 할 터인데.
창 혹은 창문은 거울과 다르다. 창은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외부와의 연결을 의미한다. 창문은 우리를 나의 영역밖으로 인도한다. 거기에는 햇볕이 있어 밝은 빛을 비추기도 하고 때로는 비도오고 바람이 분다. 다른 사람들이 왕래하며 부지런히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저들도 건강에 관심이 있고 나와 마찬가지로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들임을 알 게 된다. 이 한해에는 거울속의 나보다 창문을 보자. 나만의 건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건강과 생명을 생각하며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난 한해동안 여러 가지 뉴스중에 우리의 가슴을 가장 답답하고 슬프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자살이었다. 사회의 지도급 인사를 비롯하여 빚에 몰린 일가족이, 신용불량의 가장이, 낙담한 수험생도 모두 자살하여 우리를 슬프게 하였다. 누가 그들을 자살로 몰아갔던가. 왜 그들은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가.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면서 자신이 사랑받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자살이 아니던가. 절망가운데서 도움을 청하는 최후의 방법이 자살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자살의 또다른 의미는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것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들을 탓하기 전에 그들이 고발하는 우리들의 사랑 없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자살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아니되는 범죄행위이다. 자살은 자신을 멸망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고 파괴하는 것이요, 남은 자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죄악이다. 이러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하여서 우리는 마음의 창을 열고 다른 이들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붙들어 주어야 한다. 나약한 각자에게는 희망이 없을 지 몰라도,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으로 묶어 줄 때 우리는 강하게 되며 사랑스러워 질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전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덤덤하게 때로는 웃기도 하며 지나칠 지라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의 육적인 정신적인 사회적인 건강에 관심을 표하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때 삭막하였던 그의 마음이 촉촉한 생기를 얻을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목말라하는 신음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고 사랑을 받기위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는 상처받은 무리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많은 병자들의 신음과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보시고 외면하지 않으시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의 삶과 모든 것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다.
우리가 우리모두의 건강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내일의 모든 희망을 끊고 이 세상을 비관하는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에 관심을 가질 때 건강과 생명의 복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박재형(서울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성산생명의료윤리연구소 소장.
우리가 하루에도 몇번씩 바라보는 것이 거울과 창문인데 이 두가지를 비교해 본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바라본다. 관심은 나의 모습. 나의 표정과 상태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흡족해 할 수도 있고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이 싫고 자신의 모습에 낙담하기도 한다. 그속에 있는 얼굴도 나를 보고 있어서 내면의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속없는 사람은 피부에서 피부로만 겉에서 맴돌고 있다.
우리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 그러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살수 있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할까. 남들이 몸에 좋다는 것을 나도 한번 해보아야 할 터인데.
창 혹은 창문은 거울과 다르다. 창은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외부와의 연결을 의미한다. 창문은 우리를 나의 영역밖으로 인도한다. 거기에는 햇볕이 있어 밝은 빛을 비추기도 하고 때로는 비도오고 바람이 분다. 다른 사람들이 왕래하며 부지런히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저들도 건강에 관심이 있고 나와 마찬가지로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들임을 알 게 된다. 이 한해에는 거울속의 나보다 창문을 보자. 나만의 건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건강과 생명을 생각하며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난 한해동안 여러 가지 뉴스중에 우리의 가슴을 가장 답답하고 슬프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자살이었다. 사회의 지도급 인사를 비롯하여 빚에 몰린 일가족이, 신용불량의 가장이, 낙담한 수험생도 모두 자살하여 우리를 슬프게 하였다. 누가 그들을 자살로 몰아갔던가. 왜 그들은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가.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면서 자신이 사랑받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자살이 아니던가. 절망가운데서 도움을 청하는 최후의 방법이 자살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자살의 또다른 의미는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것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들을 탓하기 전에 그들이 고발하는 우리들의 사랑 없는 모습을 생각해본다.
자살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아니되는 범죄행위이다. 자살은 자신을 멸망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고 파괴하는 것이요, 남은 자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죄악이다. 이러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하여서 우리는 마음의 창을 열고 다른 이들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붙들어 주어야 한다. 나약한 각자에게는 희망이 없을 지 몰라도,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으로 묶어 줄 때 우리는 강하게 되며 사랑스러워 질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전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덤덤하게 때로는 웃기도 하며 지나칠 지라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의 육적인 정신적인 사회적인 건강에 관심을 표하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때 삭막하였던 그의 마음이 촉촉한 생기를 얻을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목말라하는 신음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고 사랑을 받기위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는 상처받은 무리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많은 병자들의 신음과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보시고 외면하지 않으시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그의 삶과 모든 것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다.
우리가 우리모두의 건강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내일의 모든 희망을 끊고 이 세상을 비관하는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에 관심을 가질 때 건강과 생명의 복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박재형(서울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성산생명의료윤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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