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은 미국 땅에 와서도 남북 분단에 따른 고통을 받고 있었다.

(1996년 애틀랜타)하계 올림픽에 참여하는 북한 선수단이나 방문단을 지원할 것인가의 주제를 놓고 애틀랜타 한인 사회 내부에서 뜨거운 논쟁이 있었고, 올림픽이 지난 후에는 색깔논쟁이 있었다.

당시 한국의 김영삼 정부는 정권 유지를 위해 수구 세력을 등에 업고 공안 정국을 형성하고 있던 시기였다. 즉 김영삼 정부는 재야 혹은 학계의 진보 인사들을 보안법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사정없이 잡아들이고 있었고, 어떠한 형태의 남북 교류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북한 선수단이나 방문단을 지원하는 애틀랜타 한인단체나 개인은 공산주의자 혹은 친북 성향으로 몰아갈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호해야 하는 애틀랜타 총영사관은 애틀랜타 한인 사회가 북한 선수단이나 북한 방문단을 지원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아야 했고, 나아가 북한 선수단이나 북한 방문단을 고립시키는 데는 힘을 쏟았다.

그런데 애틀랜타 총영사관이 애틀랜타 한인 사회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인 사회의 우익 보수 단체나 인사를 배후에서 조정하여 애틀랜타 한인들의 북한 선수단 혹은 북한 방문단과의 접촉을 봉쇄하는 데 안간힘을 쏟았다.

이러한 여건에서 조지아 대한 체육회(회장 정윤동)가 올림픽에 참가할 북한 선수단 지원 의사를 처음으로 공식화 하였다.

정 체육회장은 1996년 1월 17일 오전 11시 체육회 사무실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조지아 대한 체육회는 이데올로기를 떠나 타국에 와서 고생할 북한 선수들을 외면할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순수한 동족애를 공론화 시켜 보자는 데 이르렀다.”고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어서 “한인사회가 본 체육회의 이러한 충정을 사시적이나 편견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순수한 동족애와 순수한 스포츠 정신으로 받아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였다.

1996년 5월 16일 한인교회협의회(회장 최상선)는 한우리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북한 방문단을 지원키로 결정한 취지와 진행과정을 밝혔다. 주간동남부 5월 17~23일자 신문 기사에는 최 회장의 기자 회견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의 순수한 뜻과 의지가 자칫 한인들에게 왜곡되어 전달될 우려가 있다. 수십 년 동안 북한의 선교를 위해 애쓰고 갈망하였어도 정작 갈 수가 없어 안타까웠는데 그들이 먼저 지원 요청을 해 왔기 때문에 한인교회협의회는 임원회에서 순수한 선교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인사회에서는 공작원들이 뻔한데 이용만 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도 충분히 고려하고 검토하고 있으니 우려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한다.

우리도 무조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북한에 지원 대상의 인적 사항과 활동 계획을 보내주도록 했으며, 우리의 선교 행사와 일정에 참가해 주길 요청해 놓고 있다. 그런 조건이 확실해야 비로소 지원할 것이다. 북한 선수단 지원이 최종적으로 결정될 경우 북한 방문단은 영락 장로 교회 사택을 이용하며 아침 식사는 영락교회가 맡고 저녁 식사는 각 교회 별 선교행사와 병행해 해결해 줄 것이다.

한인 교회협의회가 북한 방문단을 지원하기로 하자 애틀랜타 한인 단체들(재향군인회, 장교동우회, ROTC 동우회, 해병동지회, 한인 타운 번영회, 안전대책위원회)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우익 성향의 인사 혹은 단체 대표들은 1996년 6월 6일 서울가든에서 영락 장로교회 공원용 목사와 교회협의회 서석구 부회장, 노동국 총무 등과 회동하고 교회협의회의 북한 방문단 지원 결정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김광현 재향군인회 남부지회 회장은 이 자리에서 “교회협의회가 지원키로 한 북한 방문단에 고도로 훈련을 받은 상당수의 공작원이 끼어 있어 올림픽 이후 지하 조직을 구축해 한인 사회를 분열시킬 우려가 있는데, 본국 정부에서 찬성하지 않는 일을 굳이 교회협의회에서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따져 물었다.

김광현 회장은 “최근 총영사관의 모 영사와 두 번이나 만나서 알아보니 직접 반대는 못하지만 자제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면서 “자칫 잘못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추궁하였다.(한인이민사 1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