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디지털, 감성으로 대변되는 21세기. 그 무엇보다 문화적 코드가 절대강자로 군림하는 시대다.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인터넷 매체로 앞다퉈 보도되고, 스마트폰을 사용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친구들과 실시간 소통한다. MP3를 귀에 꽂고 아이돌스타의 음악을 소비하며, 절대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상대주의 풍조가 만연하는 시대……. 복음을 전하기 여간 까다롭지 않다. 문화를 통로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회들을 소개한다.

경기도 안양시 안양역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오가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그 인파를 헤치고 5백미터 가량 들어가면 역전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조용한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한 편에는 옹기장이, 컨티넨탈싱어즈 등 익숙한 CCM가수들의 콘서트 소식을 알리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그리고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인 듯한 카페 하나가 눈에 띈다.

은은한 커피향과 파스텔톤으로 장식한 세련된 인테리어, 할로겐 조명을 갖춘 이 곳은 영락없이 카페로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엄연히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다. 교회 이름은 좀 색다르다. ‘문화와 교회가 만나다, 가스펠’(이하 가스펠교회). 교회와 복음, 문화의 삼중적 대화를 주장한 선교학자 레슬리 뉴비긴의 저서에서 영감을 받아 담임인 송승현 목사가 직접 작명했다.

찬양사역자 출신 목회자… 다양한 기독문화 컨텐츠 고민
▲최근 안양시에 가스펠교회를 개척한 송승현 목사 ⓒ가스펠교회 제공

컨티넨탈싱어즈, 남성 보컬그룹 유턴, 솔로사역 등 11년간 찬양사역에 매진해온 송승현 목사는 지난 3월 27일 입당예배를 드리며 교회 개척에 도전하면서 배송희 목사(등대선교교회), 천관웅 목사(뉴사운드처치) 등과 더불어 찬양사역자 출신 목회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CCM사역만 전념하던 송 목사가 개척을 결심한 데는 남다른 계기가 있었다. “제가 처음 찬양사역을 시작할 때 CCM이 왕성하게 일어났지만, 이제 점차 위축되고 침체기를 겪게 돼 사역의 한계를 느끼게 됐죠. ‘찾아가는 사역’보다는 ‘불러주는 사역’이라는 수동적인 패턴에 머물러 있었어요.”

전도사로서 예배사역을 하던 그는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찬양 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문화목회의 비전을 꿈꾸게 됐다. 좀 더 넓은 문화적 식견과 토대를 갖추기 위해 숭실대학원 기독교문화학과 과정을 입학했고, 개척의 비전을 꿈꾸기 시작했다. 목사 안수를 받은지 1년도 채 안돼 지난해 가을부터 개척을 준비하며 교회건물을 물색하고, 11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장 먼지에 뒤덮여도 행복하기만 했다.

안양 한복판에 교회를 세울 만한 개척자금 한 푼 없고 개척멤버는 20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외면치 않으셨다. 기도제목과 후원계좌가 적힌 브로셔를 들고 무작정 동역자들을 찾아갔다. 큰 금액을 후원해준 이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십시일반 모인 작은 금액들이 모여 소중한 개척자금이 마련됐다. 송 목사는 개척과정에 대해 “마치 하나님께서 기다렸다는 듯, 강력하게 역사하셨다”는 간증을 털어놓았다.

안양 지역 주민들의 기독교문화에 대한 갈급함을 해갈시킬 수 있는 문화목회 비전을 향한 각오를 새롭게 한 송 목사는 다각도로 전략을 고민해 실행했고, 개척을 앞두기 전 지역주민들의 반응을 살폈다. 예상보다 많은 주민들이 관심을 보였다.

송 목사는 그간 CCM사역을 하며 친분을 유지했던 컨티넨탈싱어즈, 옹기장이, 강찬, 유효림, 시와그림, 유은성 등 찬양사역자들을 초청한 CCM콘서트를 2월 28일과 3월 14일 두 차례 개최했다. 50명 정도 수용할 만한 카페 공간이 백여명이 넘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콘서트에 대한 세대별 반응은 뚜렷하게 갈렸다. ‘옹기장이’를 초청한 2월 콘서트에는 지역 내 거주하는 30-40대 중장년층이 주를 이뤘고, ‘화이트데이’ 대안으로 기획한 강찬, 유효림 초청 콘서트는 10-20대 청소년과 청년들로 성황을 이뤘다.

매주 주일 오후 찬양예배 형식으로 열리는 ‘가스펠워십’도 계획 중이다. 송 목사가 예배인도를 담당하고 매주 게스트를 초청한다. 지난 3월 28일 첫 예배에는 ‘시와그림’이 초청됐다. 문화예배라는 타이틀을 붙인 만큼 아마추어 교회찬양팀보다 영성과 실력을 갖춘 컨티넨탈싱어즈 출신의 전문사역자(보컬, 연주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인 ‘The gospel’이 찬양팀으로 섬긴다. 또 콘서트, 댄스,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기독문화 컨텐츠들을 소개해 예배와 문화가 공존하는 ‘구도자예배’와 같아 불신자들도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예배나 콘서트를 기획한 후, 장소와 시간, 내용을 소개하는 티켓을 제작해 주변 안양역 근처나 상업지구에 배포한다. 송 목사는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전도를 하는 그간의 노방전도 방식보다는 저항감이 덜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콘서트 티켓을 나눠준다”고 했다. 티켓을 받고 콘서트나 문화예배에 참석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로 인도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노방전도는 기동성 있는 엠프시스템, 비보이댄싱팀과 함께한다.
▲지난 2월 가스펠교회에서 열린 찬양팀 옹기장이 초청공연 모습. 길거리서 티켓을 받아 든 지역주민들이 교회로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가스펠교회 제공

뿐만 아니라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30-40대 부모들을 대상으로 성품학교나 어린이요리교육과 같은 문화강좌를 신설해 불신자들이 교회로 발걸음할 수 있는 다양한 접촉점을 마련했다. 송 목사는 “일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개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문화강좌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용이 심화될수록 자연스럽게 복음의 전략들이 녹아들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밖에 서울에 위치한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열리는 예배학교들에 참여하기 어려운 안양 지역주민들을 위해 대형 예배학교와 비슷한 수준과 퀄리티를 갖춘 예배학교가 4월 중 시작한다.

한국적 상황 고려한 ‘선교지향적 교회’ 소망

송 목사는 가스펠교회가 문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하는 문화사명공동체이자 ‘선교지향적 교회’(Missional Church)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문화선교(cultural mission)를 담당하는 일종의 특수목회와도 같다.

그는 “해외선교가 타문화에 대한 배려 없이 불가능하듯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 우리가 선교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리고 있는 문화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면서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거룩한 행위로 규정해 인간의 문화가 개입하는 것을 경시하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인간을 배려하는 문화적 조건이 잘 준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중장년층에게 열린예배나 찬양예배의 문화적 코드가 잘 맞지 않고, 10대나 20대 청년들이 전통예배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송 목사는 창세기 1장 28절 ‘문화명령’을 언급하면서 “문화예배나 성품교육, 콘서트 등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임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일 뿐”이라며 “좁은 카페공간을 차지한 교회지만 하나님의 복음전략, 문화전략이 숨쉴 수 있게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생명력 있는 문화사역을 위해 그는 기존에 만들어진 컨텐츠를 대충 카피하거나 짜깁기하기보다 시대의 영적인 요구를 고려해 경쟁력을 갖추면서도 철저한 복음의 전략이 스며든 기독문화 컨텐츠들을 치열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교회 문화사역이 발전하기 위해 ‘전략’ 있는 문화전문사역자들이 길러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물량 투자도 중요하지만 감성을 다루는 문화사역은 전략과 기획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특성을 읽어내고 성경적 가치관을 배경으로 문화현상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대안을 찾는 작업들을 병행할 수 있는 사역자들이 곳곳에 포진돼야 한다는 주장과도 같다.

송 목사는 “세상문화를 터부시하거나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교회와 복음, 문화가 삼중적 대화를 왕성히 해 교회가 지역에 문화적 힘을 갖고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는 역할을 감당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