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한창 공부만 해야 할 것 같은 당신의 중학생 딸이 “나 남자친구랑 영화 보러 갈래”라고 말할 때 당신은 그 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당신이 “어디 부모 앞에서 말대꾸야”라고 했을 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자녀는 몇이나 될까?

많은 한인 이민가정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부모와 자녀” 때문에 고민이다. 두 그룹 모두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으며 몸 안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점에서 분명 비슷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양자 간에는 세대차 뿐 아니라 넘어서기 힘든 문화 차이까지 엄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면, 백인 부모는 백인 자녀의 반항을 대할 때, 자신이 고등학생 때 겪었던 동일한 문제를 기억하며 그 반항의 원인을 대략 유추라도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한국인 부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녀가 직면한 고민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자녀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적 문화 속에서 살아 온 부모의 한국적 행동과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식의 갈등이 대부분의 한인가정에 존재하며 가족 구성원 간에 상처와 아픔을 야기시킨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많은 한인가정과 교회들이 고민하고 있지만 의외로 답도 간단하다는 사실을 아이린 박 교수가 밝혀냈다. 노틀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박 교수의 연구팀은 2006년 가을부터 2009년 초까지 미중서부 지역의 15개 한인교회와 4개 학교에서 166명의 청소년들과 96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Enculturation과 Acculturation이란 개념으로 풀어냈다. 이 연구에서 청소년 그룹은 11세에서 15세까지였으며, 남성은 90명, 여성은 76명이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삶의 83.6%를 미국에서 살았으며 119명이 미국에서 태어났고 47명이 한국에서 태어났다. 부모 그룹은 37세부터 55세까지였으며 남성이 19명, 여성이 77명이었다. 그들은 인생의 35.4%를 미국에서 살았으며 94명이 한국에서 1명은 일본, 1명은 중국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Enculturation과 Acculturation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념이다. Enculturation은 문화화(文化化)로 번역되며 말 그대로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의 문화에 적응하며 문화를 익혀 가는 것이다. 반면, Acculturation은 문화접변(文化接變)이라 번역되며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접촉되며 이것이 새로운 문화 형식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어린이가 가정에서 한국 문화를 배우는 것은 Enculturation이며 이 어린이가 학교를 다니며 미국 문화를 배우는 것도 Enculturation이다. 그러나 이 두 문화 속에서 문화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을 가고 있다면 이것은 Acculturation이다.

박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2년 반동안 조사하며 재확인한 사실은 Enculturation과 Acculturation의 격차가 이민가정의 갈등 문제에 분명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Enculturation을 볼 때, 부모들은 한국에서 익힌 한국적 문화를 보다 오랫동안 간직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녀들은 한국에서 혹은, 미국에서 부모로부터 얻은 한국 문화를 빨리 잃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한국 문화를 습득하더라도 자라면서 금새 그것을 잃게 된다는 그 사실은 부모와 자녀의 한국어 구사 능력, 한국문화에 대한 친숙도 등의 설문에서 확인됐다.

처음 시작이 부모나 자녀나 모두 한국문화에서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와 미국문화를 상호 적응시켜 가는 과정인 Acculturation에 있어서는 부모는 천천히 적응하는 반면, 자녀들은 빠른 속도로 적응한다. 이것은 부모의 영어 구사 능력과 자녀의 영어 구사 능력을 비교하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이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우리는 이민가정의 갈등과 아픔을 싸매기 위해 무엇을 해 왔는가? 박 교수의 본격적인 연구는 이 두 과정의 차이로 인해 자녀에게 발생하는 문제와 이것을 완화시키는 방법에 관해서다.

부모 자녀의 갈등은 표출되건 혹은 내재되건 간에 자녀에게 광범위한 우울증, 불안, 폭력성과 일탈을 야기시킨다. 근래에 한인 청소년들에게 발생한 폭력적 사고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 교수는 가족 간의 상호의존성과 결합이 강할수록 자녀에게 우울증세나 분노 폭발, 일탈 행동이 적다는 사실을 이번 연구에서 확인했다. 이 상호의존성과 결합의 정도는 Enculturation과 Acculturation 간의 격차와 반비례한다. 즉 서로 의존적이며 화목한 가정은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와 충격이 적다는 말이다. 이 차이가 적을수록 자녀들은 안정적이며 분노를 잘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양자간의 상호의존성과 결합을 강화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사실에 대한 대화와 감정적인 대화를 모두 포함한다”고 강조했다. 서로의 문화를 액면 그대로 아는 것만으로도 이해가 넓어질 수 있지만 감정까지 터놓고 이야기 함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줄여 갈 수 있다. 자녀들은 이민자 부모가 겪는 문화적 충격과 어려움은 물론, 그들이 모국에서 어떻게 자랐는지를 배워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학교 생활은 어떤지, 친구들은 어떤지를 알아야 한다. 자녀의 한국 방문, 부모의 학교 투어 프로그램 등은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박 교수는 또 한 예를 들었다. 필리핀 이민자 부모와 자녀를 대상으로 서로의 삶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 줬다. 서로 전혀 몰랐던 모습을 본 두 그룹은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자연히 갈등이 완화됐다. 박 교수는 “일주일에 한번씩 20분만이라도 서로 대화해 보라”고 권했다.

▲박 교수 연구팀이 이번 연구의 결과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일에 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아주 좋은 질문”이라며 “부모와 자녀가 한 자리에 모이는 교회야말로 양자를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라고 말했다. “한인교회가 현재 잘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A부터 F까지 다양한 점수가 나오겠지만 A를 받은 교회에게도 ‘좀더 노력하자’고 말하고 싶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한편, 이 연구는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로부터 그랜트를 받아 시작됐으며 박 교수를 중심으로 한 노틀담대학교의 Culture & Family Processes Lab이 연구와 자료 수집을 맡았다. 박 교수는 “이 연구를 위해 참여해 준 한인교회 성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