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일주 박사
요르단신학대학교 교수
이슬람 국가에는 금년 2월 1일부터 3일간 이드 알 아드하(희생절)이 다가온다. 요르단은 1월 31일부터 2월 4일까지 공휴일로 쉰다. 무슬림들이 매년 가장 크게 쇠는 명절이다. 그런데 이 명절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의 하나이다. 그 다섯가지는 이슬람의 신앙고백, 하루 다섯 번의 기도, 라마단 달의 금식,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 그리고 순례인데 이 순례는 경제력이 있는 무슬림에게만 해당하고 그 나머지 4가지는 모든 무슬림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고 이를 지키면 선행의 보상(사왑)이 있다.
이제 무슬림이 경제력이 있어 이슬람력 12월달(순례의 달) 제 9일에 메카의 아라파트라는 곳에 적어도 해지기 전까지는 도착하여야 한다. 물론 메카의 성역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이흐람(순례 복장)을 하여야 한다.
해가 지면 아라파트를 출발하여 무즈달리파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하룻 밤을 보낸다. 해가 뜬 다음날 제 10일에는 무나로 가서 그곳에서 3일간 지내게 된다. 첫날 제 10일에는 사탄을 상징하는 돌 기둥을 향하여 조약돌을 던진 다음 양을 잡고 나서 이흐람 복장을 벗거나 아예 그 복장 그대로 지내기도 한다. 이흐람을 벗기 전 혹은 그 이후에 메카의 카아바 신전을 7번 돈다. 돌면서 알라에게 감사하거나 개인기도를 하면서 돈다. 그리고 나서 사파와 마르와 간에 왕복 도합 7회를 한다.
두 번째 날 제11일은 사탄을 상징하는 돌 기둥에 조약돌을 던지고 제 12일에도 역시 그렇게 하며, 이 마지막 날에는 순례를 왔던 다른 친구 대신에 사탄을 상징하는 돌기둥에 돌을 던져주기도 한다. 이로써 모든 순례 일정이 끝난다.
이슬람의 순례는 하면 좋고 안 해도 아무 상관없다고 무슬림은 말한다. 이 순례의 가치는 일종의 예배(이바다)라고 하며 그것은 아브라함이 그가 사랑하는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라고 하였을 때 아브라함이 알라를 더욱 사랑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연유되었다. 그런데 이슬람 전통에서는 희생될 제물이 이스마엘이라고들 하나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는 전혀 이스마엘이라는 말이 없다. 성경은 분명히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이 바쳐졌다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순례와 희생절의 의미는 무엇인가하고 아부 유수프에게 물으니 '그것은 알라를 사랑하며 알라에게 가까이 가려는 무슬림의 신앙심'이라고 표현하였다. 더구나 희생절에 잡는 양은 경제력이 허락되는 무슬림들에게는 의무사항인데 양고기의 1/3은 가난한 이웃에게 주고, 1/3은 자신의 가족이 그리고 나머지 1/3은 친척에게 준다. 이는 곧 이슬람이 사회적 구제를 통해 종교와 사회가 결집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희생제에 대한 아랍어 낱말 "이드 알 아드하"는 꾸란에 단 한번도 안 나온다. 꾸란 37:107절에서 <우리가 그를 존귀한 희생 제물로 인하여 구속하였다>라고 쓰여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슬림들에게 이번 이슬람의 희생제를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할 수 있을까?
꾸란 37:107절에서 <존귀한 희생물>이라고 쓰여있는데 원래 이슬람에서 <존귀한>이라는 말은 인간에게 적용되지 않고 <알라>에게만 쓰이는 어휘이다. 그리고 그 희생 제물은 이슬람에서는 숫양(kabsh)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숫양(창 22:13)을 수단으로 사용하였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 구절이 숫양의 죽음으로 인하여 인간이 구원받았다는 말이냐고 무슬림에게 재차 물어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꾸란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어 이 꾸란 구절은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의 아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꾸란은 이슬람의 명절 희생절 때 양을 잡으라는 명령은 아무데도 없다. 다만 아브라함이 양을 잡았기 때문에 무슬림도 그 예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이 숫양을 잡았는가? 꾸란 26: 82절은 "내가 바라기는 심판의 날에 누가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겠는가?"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당시 죄인은 그의 죄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구속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무슬림들도 아브라함이 온전히 알라만을 의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아들을 바치었다고 말한다. 이상과 같이 짧게 이슬람의 꾸란을 통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무슬림에게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여 보았다. 이제 이슬람의 희생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요르단신학대학교 교수
이슬람 국가에는 금년 2월 1일부터 3일간 이드 알 아드하(희생절)이 다가온다. 요르단은 1월 31일부터 2월 4일까지 공휴일로 쉰다. 무슬림들이 매년 가장 크게 쇠는 명절이다. 그런데 이 명절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의 하나이다. 그 다섯가지는 이슬람의 신앙고백, 하루 다섯 번의 기도, 라마단 달의 금식,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 그리고 순례인데 이 순례는 경제력이 있는 무슬림에게만 해당하고 그 나머지 4가지는 모든 무슬림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고 이를 지키면 선행의 보상(사왑)이 있다.
이제 무슬림이 경제력이 있어 이슬람력 12월달(순례의 달) 제 9일에 메카의 아라파트라는 곳에 적어도 해지기 전까지는 도착하여야 한다. 물론 메카의 성역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이흐람(순례 복장)을 하여야 한다.
해가 지면 아라파트를 출발하여 무즈달리파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하룻 밤을 보낸다. 해가 뜬 다음날 제 10일에는 무나로 가서 그곳에서 3일간 지내게 된다. 첫날 제 10일에는 사탄을 상징하는 돌 기둥을 향하여 조약돌을 던진 다음 양을 잡고 나서 이흐람 복장을 벗거나 아예 그 복장 그대로 지내기도 한다. 이흐람을 벗기 전 혹은 그 이후에 메카의 카아바 신전을 7번 돈다. 돌면서 알라에게 감사하거나 개인기도를 하면서 돈다. 그리고 나서 사파와 마르와 간에 왕복 도합 7회를 한다.
두 번째 날 제11일은 사탄을 상징하는 돌 기둥에 조약돌을 던지고 제 12일에도 역시 그렇게 하며, 이 마지막 날에는 순례를 왔던 다른 친구 대신에 사탄을 상징하는 돌기둥에 돌을 던져주기도 한다. 이로써 모든 순례 일정이 끝난다.
이슬람의 순례는 하면 좋고 안 해도 아무 상관없다고 무슬림은 말한다. 이 순례의 가치는 일종의 예배(이바다)라고 하며 그것은 아브라함이 그가 사랑하는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라고 하였을 때 아브라함이 알라를 더욱 사랑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연유되었다. 그런데 이슬람 전통에서는 희생될 제물이 이스마엘이라고들 하나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는 전혀 이스마엘이라는 말이 없다. 성경은 분명히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이 바쳐졌다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순례와 희생절의 의미는 무엇인가하고 아부 유수프에게 물으니 '그것은 알라를 사랑하며 알라에게 가까이 가려는 무슬림의 신앙심'이라고 표현하였다. 더구나 희생절에 잡는 양은 경제력이 허락되는 무슬림들에게는 의무사항인데 양고기의 1/3은 가난한 이웃에게 주고, 1/3은 자신의 가족이 그리고 나머지 1/3은 친척에게 준다. 이는 곧 이슬람이 사회적 구제를 통해 종교와 사회가 결집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희생제에 대한 아랍어 낱말 "이드 알 아드하"는 꾸란에 단 한번도 안 나온다. 꾸란 37:107절에서 <우리가 그를 존귀한 희생 제물로 인하여 구속하였다>라고 쓰여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슬림들에게 이번 이슬람의 희생제를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할 수 있을까?
꾸란 37:107절에서 <존귀한 희생물>이라고 쓰여있는데 원래 이슬람에서 <존귀한>이라는 말은 인간에게 적용되지 않고 <알라>에게만 쓰이는 어휘이다. 그리고 그 희생 제물은 이슬람에서는 숫양(kabsh)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숫양(창 22:13)을 수단으로 사용하였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 구절이 숫양의 죽음으로 인하여 인간이 구원받았다는 말이냐고 무슬림에게 재차 물어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꾸란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어 이 꾸란 구절은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의 아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꾸란은 이슬람의 명절 희생절 때 양을 잡으라는 명령은 아무데도 없다. 다만 아브라함이 양을 잡았기 때문에 무슬림도 그 예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이 숫양을 잡았는가? 꾸란 26: 82절은 "내가 바라기는 심판의 날에 누가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겠는가?"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당시 죄인은 그의 죄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구속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무슬림들도 아브라함이 온전히 알라만을 의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아들을 바치었다고 말한다. 이상과 같이 짧게 이슬람의 꾸란을 통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무슬림에게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여 보았다. 이제 이슬람의 희생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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