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보 교계가 최근 한 보수 정치 평론가의 ‘사회정의’ 공격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논란은 평소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 독설을 퍼붓기로 유명한 폭스뉴스 진행자 글렌 벡(Beck)이 “교회가 사회정의를 외친다면 교인들은 당장 그 교회를 떠나야 한다”고 발언한 데서 비롯됐다.

벡은 지난 주 자신의 방송에서 “미국에서 ‘사회정의(social justice)’ 또는 ‘경제정의(economic justice)’란 말들은 사실 공산주의와 나치주의의 코드 워드(code word)나 마찬가지”라며, 교인들에게 “교회 사이트를 잘 살펴 보고, 목사나 성직자들이 하는 말도 주의 깊게 들어 봐서 ‘사회정의’란 말을 사용한다면 교회에 그 말을 쓰지 말라고 충고하고, 만약 교회가 그것을 거절한다면 당장 그 교회를 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 이후 벡은 지금껏 미국 전역에서 3만 통이 넘는 교인들의 항의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 진보 교계의 반발은 그의 방송에 대한 보이콧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다.

미국 사회정의 사역의 대표격인 소저너스의 짐 월리스(Wallis) 목사는 교회가 추구하는 사회정의를 공산주의나 나치주의와 결부시킨 벡의 주장에 대해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정의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사회정의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라고 반박했다.

월리스 목사는 또 “벡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든 또는 단순히 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런 말을 했든 간에 분명한 것은 그가 기독교 신앙을 공격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고 지적하고, “나는 오히려 교인들이 벡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겠다”고 비난했다.

기근 퇴치 사역단체인 브레드 포 더 월드도 “그동안 벡의 발언들 하나하나에 대응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너무 심했다”며 “진정한 교인들이라면 배고픔과 가난에 대한 성경구절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벡의 사회정의에 대한 공격은 보수 교계 지도자들로부터도 반감을 사고 있다. 남침례교신학교 앨버트 몰러(Mohler) Jr. 총장은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정의는 성경적인 가르침이며 이를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다”고 사회정의를 공산주의로 연결지은 벡의 주장을 부정하고, 특히 “공중파 방송에서 교회에 대한 무모한 공격을 시도한 것은 변호받을 만한 여지를 남겨 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보수 교계 지도자들은 그러나 벡의 발언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발언이 나오게 된 정황에 대해서 교계 전체가 신중한 고찰을 해 볼 필요는 있다는 점은 지적하고 있다. 몰러 총장은 사회정의 추구 자체는 나쁜 것이 될 수 없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사회정의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신하고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입지의 변화를 위해 사회정의라는 겉포장을 선택하는 세태에 대해서만큼은 교회가 자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교회의 사명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교인들이 정말 떠나야 할 곳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복음을 위해 포기하는 교회”라고 말했다.

기독교 우파 지도자로 리버티대학교 총장인 제리 팔웰(Falwell) Jr. 목사 역시 “예수님은 우리 자신이 가난한 이들과 과부들을 도와야 한다고 하셨지, 우리 이웃들에서 돈을 취해 약자들에게 나눠 줄 정부를 선출해야 한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며 “교회의 주요한 메시지는 복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복음에 신실한 교회는 사회 개혁의 아젠다를 취하지 않아도 자연히 사회를 개혁하게 된다”며 “복음은 사회적 구원의 메시지가 아니지만 교인들의 삶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벡의 이번 발언은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 전까지 영적인 권면을 받아 온 트리니티연합그리스도교회 전 담임목사인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도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