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유은성 전도사가 애틀랜타를 찾았다. 약 열흘간 일정을 숨가쁘게 소화하고 있는 유 전도사는 “애틀랜타는 한국 전원도시처럼 친근하고 따뜻하다. 청년들도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편하게 대하는 걸 보니 찬양집회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서두를 뗐다.

한국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던 진세관 목사와 CCM 가수로 감리교 연합행사에서 인연을 맺은 유은성 전도사는 오는 토요일(6일) 아틀란타한인감리교회 ‘청년비전센터 오픈기념 찬양집회’를 인도한다.

진세관 목사는 “그랜드 오프닝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청년들과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클래스를 제공하고, 매달 콘서트 같은 문화 행사를 열어 교회의 문턱을 낮출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그 포문을 유은성 전도사 콘서트로 열게 된 것.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회복 시키소서’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소위 ‘뜨는’ CCM 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가세요. 2000년도 1집을 냈는데, 유통회사가 부도나서 앨범이 중간에 날라갔어요. 막상 그렇게 되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수 천 만원 계약금을 준다는 대중가수 제의도 거절하고 하나님을 위해 노래한다고 낸 앨범인데… 그 전에도 그랬죠. 원래 꿈은 작곡이었어요. 10년 동안 작곡만 생각하며 공부했는데 개척교회를 시무하시는 부모님께 기댈 형편이 안돼 고 3때 음대진학을 포기하고 신학대를 갔어요. 이제 좀 활동을 한다 싶더니 영장이 나와 그나마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그때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어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 말씀을 붙들고 입대했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입대하고 나서 오히려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입대 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녹음하고 공식석상에서 두 번 밖에 부르지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셨죠. 군대에서 2년 동안 하루 4시간씩 보초서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만든 노래가 담긴 2집은 1번부터 11번까지 모두 조용해요. 어떤 제작자는 이게 되겠냐며 던지기도 했죠(웃음).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2006년 발매되고 그 해 모든 차트 1위를 석권했고 음반판매 1위, 각종 어워드 수상, 7대 가수상 등 1위란 1위는 다 했죠. 심지어 잠잘 때 듣기 좋은 앨범 1위까지요. 그때부터 해외에서도 집회를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어요.”

특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2006년 당시 상반기 최고 음반판매 및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듣기, 배경음악 등 기독교 전 부분에서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주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죠’ 등은 지금까지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듣기, 배경음악 및 다운로드 순위에서 10위권 안팎을 드나들고 있다.

-군대 생활은 어땠나?

“군대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했어요. 상사건 부하건 무조건 교회가자고 했죠. 신우들이 모여 부대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새로 부임할 부대장을 위해 4개월 전부터 중보를 시작했어요. 부대장이 한마디 하면 훨씬 힘이 있잖아요. 한달 뒤, 부임하실 부대장님이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해서 3개월 동안 더 열심히 기도했죠. 그런데 막상 다른 분이 오신 거에요. 기회를 봐서 부대장님께 여쭤봤죠. 교회 다니시냐. 그건 왜 물어보냐고 하셔서 몇몇 부대원들끼리 부대 복음화를 위해 오실 부대장님을 위해 기도했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비서를 하라고 하시더군요. 옆에서 기도하라고. 이후 부대장님과 다니는 곳마다 전도의 열을 올렸죠.”

유은성 전도사의 설명에 따르면 부대장 배정은 전국적으로 결정되는데 애초에 배정된 부임지가 변경되면, 같은 시기 부임하는 모든 부대장의 부임지가 바뀌어야 한다. 20년 동안 이런 일은 없었다면서 그때 부임한 부대장은 원래 지원한 부임지로 가려고 이삿짐차를 불러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부임지가 바뀌어 ‘왜 이럴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기도의 힘이다.

-2집이 위로라면 3집은 회복이다. 특별한 메시지가 담겨있나?

“2집으로 2년간 활동하고 나서 3집을 앞두고 어떤 음반을 만들까요 기도했어요. ‘내가 너를 통해 위로한 백성들을 이제 회복시키라’는 응답을 받고 만든 앨범이에요. 성공여부를 떠나 3집 앨범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앨범이 발매되고 얼마 안돼 특별한 경험도 했어요. 그래서 더 확신하게 됐죠.”

3집 앨범이 나오고 한 달여 지난 어느 날, 일산에 있는 한 교회에 집회를 간 유 전도사 눈에 가장 뒷줄에 휠체어를 타고 앉아있는 한 노(老) 권사가 띄었다. 집회 내내 별다른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그가 마지막 곡 ‘회복시키소서’를 부르기 앞서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쁘고 좋을 때는 누구나 찬양하지만 최악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라고 말하고 찬양을 시작했다. 그런데 노 권사는 전주에서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찬양이 끝날 즈음 ‘앗 뜨거!’하고 벌떡 일어난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녀는 몇 년 전 다리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던 중 넘어져 신경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자 일흔 아홉 노령에 수술을 결심했는데 일이 그르치게 되니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것이다. 평생을 가꿔온 신앙은 순간 시들해지고, 목사님에 대해서도 불만과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날 유은성 전도사의 멘트가 골수를 쪼개고 가슴을 후비고 들어와 찬양을 몰랐지만 가사를 보면서 그간 쌓아온 죄악을 절절히 회개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자신의 다리를 만지는 느낌을 받아 두려움에 떨며 더욱 집중해서 기도했고, 갑자기 뜨거운 불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타고 내려와 벌떡 일어나게 된 것. 그대로 앉으면 다시 걷지 못할까 두려워진 노 권사는 찬양이 끝날 때까지 성전을 걸어 다니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놀란 건 노 권사뿐 아니라 교회 모든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치유의 역사가 지금도 나타난다는 것과 왜 회복에 대한 음반을 만들라고 하셨는지 깨닫게 됐어요. 하나님은 지친 자녀들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애틀랜타 청년들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제 삶을 돌아볼 때 음대도 못 가고, 음반도 망하고, 군대도 가야하고…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었어요. 한국에 펜윅이라는 침례교 선교사님이 계셨어요. 공부도 못하고 가난하고 얼굴도 못생긴 그는 지금으로 보면 ‘루저’였죠. 그 분이 하루는 목사님을 찾아가 ‘저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쓰시겠습니까?’ 물으니 그 목사님은 찌그러진 깡통 하나를 집어 들더니 ‘비록 찌그러지고 보잘 것 없어도 이 깡통에 생수가 담긴다. 이 생수는 사막에서 목말라 죽어가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도구가 된다’고 하셨어요. 펜윅 선교사님은 이후 한국에 들어와 돌아가실 때까지 600개 교회를 세우셨어요. 지금 좀 어렵고 못하고 힘들어도 하나님 의지하면 아무리 안 좋은 상황도 바꿔주세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청년들이 되세요.”

유은성 전도사의 찬양집회가 열리는 아틀란타한인감리교회는 6 W. Peachtree Street, Norcross, GA 30071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