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63개 교단의 대북 관계자들이 투명성을 전제하고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계속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투명성 외엔 과거의 입장과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의 퍼주기 지원 후 북한주민의 실생활은 별반 나아진 것이 없는 반면, 핵실험은 성공했다고 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 ‘투명성’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투명성은 무엇인가? 북한 주민을 위해 보낸 물품이 북한 주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 정권이 현금은 말할 것도 없고 지원된 현물까지 팔아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는 소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남한이 보낸 식량이 군과 당에만 돌아갈 뿐 주민들의 몫은 없었다고 증언한다. 이런 것을 불투명하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지원을 계속했다. 북한에 투명성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다. 교회 내 대북지원단체들은 성도들의 헌금, 헌물로 북한을 지원한다. 응당 대북지원 후에는 그 결과를 보고하고 여론을 모아야 한다. 여론이 좋아야 다음에도 성도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여론이 나쁠 경우 차후 후원에는 차질이 생기고 최악의 경우 단체가 존폐 위기에 놓인다. 북한 당국의 ‘고맙다’, ‘잘 쓰겠다’는 말 한마디가 중요한 만큼 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다. 수년간 열심히 갖다 바쳤더라도 한번 눈 밖에 나면 안 받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오히려 받아달라고 빌어야 할 형편이다. ‘지원 결과를 확인해 보겠다’는 당당한 요청은 아예 불가능하고 ‘이런 식이라면 지원을 끊겠다’는 용단은 꿈도 못꾼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먼저 창구단일화가 필수적이다. 대북지원단체 및 교단들의 과다한 경쟁을 방지할 수 있고 북한 입장에서도 거절할 경우 심각한 손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깨지면 대북지원단체들은 북한 주민 살리기보다 자기 공적 홍보만 앞세우게 되고 북한은 이것을 이용해 더 큰 도박판을 벌인다.
창구단일화 후엔 지원 방법이다. 지금 북한에선 성도들의 헌금으로 쌀 수천톤을 퍼주는 것보다 콩비지를 매일 만들어 나눠주고 그것이 주민들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까지 세심하게 돌봐줄 수 있는 겸손한 사람, 겸손한 지원이 필요하다.
대북지원단체들에게 묻는다. 지원한 물품 혹은 현지의 공장, 목장, 농장에서 생산된 물품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주민들에게 배분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배분된 물품을 주민들이 섭취·사용하는 것을 직접 보았는가? 주민들의 실생활이 개선되었는가? 이중 하나라도 대답을 못한다면 이것을 ‘불투명하다’고 한다.
불투명할 경우 모든 지원을 일단 중단하는 것이 인도적 지원이다. 한줌의 콩비지는 주민의 생명을 살리지만 수천톤의 쌀은 마지막 한톨까지 강도의 배만 불려 오히려 주민의 생명을 위협한다. 콩비지는 거절하고 수천톤의 쌀만 원한다면 의도는 자명하다. 의도가 자명한만큼 우리의 대응도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변화된다.
투명성은 무엇인가? 북한 주민을 위해 보낸 물품이 북한 주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 정권이 현금은 말할 것도 없고 지원된 현물까지 팔아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는 소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남한이 보낸 식량이 군과 당에만 돌아갈 뿐 주민들의 몫은 없었다고 증언한다. 이런 것을 불투명하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지원을 계속했다. 북한에 투명성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다. 교회 내 대북지원단체들은 성도들의 헌금, 헌물로 북한을 지원한다. 응당 대북지원 후에는 그 결과를 보고하고 여론을 모아야 한다. 여론이 좋아야 다음에도 성도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여론이 나쁠 경우 차후 후원에는 차질이 생기고 최악의 경우 단체가 존폐 위기에 놓인다. 북한 당국의 ‘고맙다’, ‘잘 쓰겠다’는 말 한마디가 중요한 만큼 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다. 수년간 열심히 갖다 바쳤더라도 한번 눈 밖에 나면 안 받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오히려 받아달라고 빌어야 할 형편이다. ‘지원 결과를 확인해 보겠다’는 당당한 요청은 아예 불가능하고 ‘이런 식이라면 지원을 끊겠다’는 용단은 꿈도 못꾼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먼저 창구단일화가 필수적이다. 대북지원단체 및 교단들의 과다한 경쟁을 방지할 수 있고 북한 입장에서도 거절할 경우 심각한 손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깨지면 대북지원단체들은 북한 주민 살리기보다 자기 공적 홍보만 앞세우게 되고 북한은 이것을 이용해 더 큰 도박판을 벌인다.
창구단일화 후엔 지원 방법이다. 지금 북한에선 성도들의 헌금으로 쌀 수천톤을 퍼주는 것보다 콩비지를 매일 만들어 나눠주고 그것이 주민들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까지 세심하게 돌봐줄 수 있는 겸손한 사람, 겸손한 지원이 필요하다.
대북지원단체들에게 묻는다. 지원한 물품 혹은 현지의 공장, 목장, 농장에서 생산된 물품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주민들에게 배분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배분된 물품을 주민들이 섭취·사용하는 것을 직접 보았는가? 주민들의 실생활이 개선되었는가? 이중 하나라도 대답을 못한다면 이것을 ‘불투명하다’고 한다.
불투명할 경우 모든 지원을 일단 중단하는 것이 인도적 지원이다. 한줌의 콩비지는 주민의 생명을 살리지만 수천톤의 쌀은 마지막 한톨까지 강도의 배만 불려 오히려 주민의 생명을 위협한다. 콩비지는 거절하고 수천톤의 쌀만 원한다면 의도는 자명하다. 의도가 자명한만큼 우리의 대응도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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