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수정성결교회(담임 스티브 황 목사)는 작년 12월 1대 담임목사와 2대 담임목사 이. 취임 예배를 가졌다. 박수복 목사는 뉴욕수정성결교회를 개척해 1대 담임 목사로 23년간 시무하며 교회를 부흥시켜 기반을 마련해 놓았다.

박수복 목사는 서울신학대학(BA). 목원대학교 대학원(M.M)을 졸업하고 페이스 신학대(Faith Theological Seminary, D.Min)에서 목회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목회는 서울남북성결교회를 개척하고 시무했으며 김천 나환자촌 동문성결교회, 만리현성결교회에서 시무하다 뉴욕수정성결교회를 1986년 7월 개척했다.

본지는 또 하나의 시작과 마침의 자리에 서있는 박수복 목사를 만나 45년 목회 인생이 남긴 귀한 생각들과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 보았다.

한편 박수복 목사는 은퇴 후 거처도 뉴저지로 옮겼다. "뉴저지 중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 피신해왔다."(웃음)고 박 목사는 표현했다. 원로 목사가 교회 일에 자꾸 연결되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는 생각에서다. 후임자가 힘에 부치더라도 스스로 해결해가라고 될 수 있으면 교회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자도 몇 번의 연락 후에 박수복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1. 근황이 어떠십니까?

은퇴하고 하는 일은 첫째 기도하는 일이에요. 성도, 자녀, 나라, 선교지 위해서 기도합니다. 개인적으로 영적 보충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목회할 때는 너무 바빠서 영적인 교제를 많이 못했는데 하나님과 직접 만나는 영적인 교제를 좀 더 깊이 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기도하다 보니 그동안 목회하면서 영혼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덜 가졌던 것을 회개하고 됐고, 하나님 중심보다 나 중심 생활을 할 때가 많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필요해서 달라고 하는 그런 기도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과 정말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기도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희가 선교를 중국과 도미니카 공화국 밧데이에서 집중적으로 하고 있는데 저 지난 주간(1월 12일부터 열흘간)에는 도미니카에 가서 사역하는 지역의 교회를 돌아봤어요. 교회 짓기 위해 땅 산 것도 봤고요.

근데 도미니카공화국에 출발하는 시점에 아이티에 지진이 나서 폐허가 됐으니 비행장 내리는 사람을 공항에서 아이티로 인도하는 일을 하게 돼 뜻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돕도록 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가족들과 시간도 갖고 부인에게 제대로 하지 못했던 위로도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 은퇴를 앞두고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 있으시다면?

목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받아서 정말 헌신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목회하다보니 오랜 시간이 흐르며 첫사랑을 잊어버린 때가 많이 있었어요. 그걸 느끼게 됐지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거예요. 처음에 사명 받았던 마음, 그 초심을 잃지 않고 날마다 목회하는데 바쁘지만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을 날마다 가지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정말 칭찬들을 수 있기를 바래요.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속 중심을 보시니 중심이 서서 목회를 해왔나 생각하게 됐지요.

3. 이민교회 목회가 많이 어렵다고들 합니다. 어떤 원칙이나 철학을 갖고 목회 해 오셨는지요?

이민교회 목회가 한국 목회보다 어렵다 하는 건 내 생각과 다른 것 같아요. 이민 교회대로의 특성이 있으니까요. 섬김 받으려 하는 것보다 섬기려고 하는 마음만 가지면 이민 교회라 해서 더 어려운 건 없다고 생각해요.

이민교회 신자들은 오히려 더 갈망하는 마음이 많으니 그들의 마음을 복음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채워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받아들입니다.

목회 철학이라고 하면 첫째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목회는 하나님이 해주시는 거라는 생각이에요. 물론 사람이 노력도 하기는 하지만 하나님과 동역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물어보고 인도하시는 데로만 해야 됩니다.

둘째는 영적인 목회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기도를 많이 해서 자신이 성령 충만하면 내게 있는 영적인 은혜와 은사가 신자들에게도 전달이 되고 영적인 분위기 속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서 성령의 역사만 자꾸 강조하게 되면 말씀이 약해질 수 있으니 말씀을 목회자가 먼저 체계 있게 가지고 신자들에게도 말씀 중심의 가르침을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영적인 목회라 봐요.

세 번째는 사람 중심의 목회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예배 때마다 흔히 범할 수 있는 문제가 목회자가 성도 머리 숫자를 세고, 헌금 액수에 관심을 갖기 쉽다는 거예요.

그것보다는 목축업을 할 때 양 한 마리 한 마리에 대해 병이 들었나, 무슨 문제가 생겼나 살피는 것처럼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 관심을 갖고 돌보는 것, 그러한 것이 사람 중심의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섬기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특별히 이민 교회 성도들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그런 여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목회자가 섬기게 되서 그 섬김을 통해서 만족감 갖게 되면 자신들도 주님의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있으니 섬기는 목회를 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면서 전체를 100%라 하면 설교에 40%, 심방에 20%, 행정에 20%, 상담에 20%, 그 정도 비중을 두고 하려고 노력을 했지요.

4. 롱아일랜드 지역으로 교회를 옮기려고 하셨다가 후세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교회를 옮기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롱아일랜드에 땅을 사놓고 거기에 교회를 지으려고 여러 가지 계산을 했는데 첫째는 재정적으로 많은 빚을 지게 생겼더라고요. 내가 계속 목회하면 그 빚을 짊어지겠지만 목회를 오랫동안 못하는 실정인데 이 빚을 후세들에게 넘겨주게 되면 이게 과연 현재 목회자로서 바른 생각인가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 지역이 그전까지는 외곽 지역이었는데 근래 들어오며 칼리지 포인트가 발전이 많이 되고 있어 구태여 롱아일랜드 깊숙한 데까지 들어갈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자들 분포도 롱아일랜드 지역은 10% 정도였고요.

교회는 신자들의 교회인데 예배당의 땅이 넓다고 해서 그쪽으로 옮길 것인가 생각해 볼 때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첫 번째 목적대로 이곳에 있는 것이 더 좋겠다는 판단 하에 이쪽으로 다시 정착을 하게 됐지요.

5. 처음에 이 지역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있으셨나요?

시작했을 때는 목적보다는 교회당이 우선 있어야 되니, 찾을 때는 한가한 지역이라 돈이 없는 상태에서 조건이 적당했기 때문에 샀어요. 살다보니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뜻이 계셨다는 것이 느껴졌고요.

교회를 사게 된 동기가 있어요. 그때 저에게 한국 큰 교회에서 청빙이 왔는데, 가려고 그쪽과 약속을 하고 이사 비용도 다 오고 했는데 미국에 있는 성도들이 장로님 중심으로 "목사님 가면 이 교회는 없어집니다."하고 울면서 호소를 했어요.

그래서 집사람과 밤을 새워 기도했는데 요나 생각이 나더구먼요. 나만 생각해서 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겠다 해서 결국은 머물게 됐는데 청년 집사들이 갑자기 목사님 붙들어 왔는데 뭔가 해야지 않겠나 해서 모금해서 이 교회를 사게 됐어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이라 믿어져요.

6. 사모님께서 목사님께 큰 힘이 되어주셨을 것 같습니다.

목회를 45년 했는데 집사람이 수고를 많이 했어요. 제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세밀하지를 못한거에요. 집사람이 세밀하지 못한 부분을 다 채워주었어요.

한국에 있다 여기 온지 23년이 됐는데 오자마자 바로 개척을 했어요. 한국에서 막 와서 생활하기가 어려우니 집사람이 채소가게에서 일하면서 주일에는 밥과 반찬을 해서 신자들을 대접하는 일을 3년을 했어요. 처음에 개척할 때는 9명이 시작했는데 3년이 지나니 교회가 기반이 잡혔지요.

또 제가 목회를 잘 할 수 있었다고 하면 아이들이 믿음 생활을 잘 해 주었기 때문이에요. 참 고마워요.

첫째 딸은 목사의 아내가 됐고 둘째는 아들인데 신학교 졸업하고 EM 목회하고 막내는 산호세 이베이(eBay)에서 모든 컴퓨터 책임을 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 곳 영어권 교회의 찬양을 인도하면서 장로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큰 딸은 피아니스트, 아들은 학생회. 청년회 리더로, 딸은 주일학교 교사 노릇을 하면서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줬어요. 봉사도 봉사지만 신자들에게 본이 되니까 '우리 아이들도 이 교회에서 신앙하면 목사님 자녀들처럼 자라게 되겠구나.'하게 되서 교회에 부흥을 준 것이라 생각해요.

7. '목회'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목회하시면서 가장 기쁘셨을 때는 언제였나요?

제가 고등학교 때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받았는데 군대 갔다 오면서 사명감을 잃었어요. 그랬는데 한번은 철야기도를 하는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는 요한복음 21장의 그 말씀이 계시로 임하더라고요.

세 번 나를 불러서 "여기 있사오니 말씀하옵소서." 했더니 "내 양을 먹이라. 치라"하셔서 그때부터 바로 대학에 가서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며 여태껏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이 지나왔어요.

목회는 주님의 양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목회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교회를 4번을 옮겼는데 첫 번째는 신학교를 바로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해서 개척을 한 것이 서울남북성결교회라는 곳인데 그곳에서 목사 안수도 받고 교회도 짓고 했어요.

근데 미국에 오려고 했을 때 갑자기 하나님께서 기도를 시키시더라고요. 기도를 하던 중에 방언 기도가 나오면서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말씀을 하시는거에요. 처음 당하는 경험이었지요. "네가 내가 시키는 대로 가라."고 하시는데 생각이 김천에 있는 나환자촌이 확 떠오르는거에요.

그곳에 친구가 있어 한번 가본 적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반복해서 "네가 가겠느냐."하셔서 집사람을 불러서 기도했더니 똑같은 역사가 임했어요. 그때는 미국에 오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인데 때가 되면 보내주시겠다 하시고 나환자촌에 연결돼서 가게 됐어요.

8년 있을 동안에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여러 가지 은사를 체험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것을 나환자 지역의 사람들을 통해 보게 됐어요.

그러다가 서울에 만리현성결교회 창립 62년이 됐는데 초청을 받아서 가게 됐어요. 거기서 짓던 교회를 완성을 하고 미국에서 오라고 했을 때 기도하는 가운데 허락이 되서 미국에 와서 이 교회를 시작을 하게 된 것이고요.

가장 기뻤을 때는 교회가 조금씩 조금씩 부흥되어 갈 때에요. 그때마다 기쁘고 보람이 있었어요.

한국에 안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이 교회를 사게 되고 깨끗이 수리하고 첫 번째 예배를 드렸을 때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한 순간이었고 기쁜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은퇴를 하면 모두 섭섭하다고들 하는데 저는 제 후임자가 목회를 저보다도 더 잘해주니 기쁘고 좋습니다.

▲(왼쪽)박수복 목사, 황영송 목사
후임자는 황영송 목사인데 제 사위이지요. 그런데 이 사람을 제가 추천한 것도 아니에요. 교회가 완성이 되면 은퇴하겠다고 장로님들에게 후임자를 물색하라고 했는데 그때 우리 교회 영어 목사로 황영송 목사가 있었는데 만장일치로 황영송 목사를 청빙하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회 결의에 의해서 청빙하게 됐어요.

그리고 나서 3년 동안 행정적인 준비와 여러 가지 실습을 하고 지난번에 취임을 하게 됐는데 이 사람은 참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신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우리 교회 학생부 전도사로 와가지고 사역했어요. 한 10년 동안은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에서 훈련을 받았지요.

신앙과 인격성과 또 지적인 면과 행정적인 리더십이 잘 갖춰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러한 목회자에요. 취임하고 몇 달이 지나는 가운데 장로님들이 결정을 잘해주었구나 느끼고요.

그리고 제가 감사한 것은 저는 부족한데 제가 인덕이 있어서 장로님들이 훌륭하고 우리 성도님들이 훌륭해서 제가 23년 동안 목회를 편안하게 해올수 있었던 겁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고, 그 다음에는 성도님들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낍니다.

8. 은퇴 후 계획하신 사역이 있으십니까?

은퇴하고 나니 많은 교회에서 설교를 해달라고 해서 요새도 바쁩니다. 목회하는 목사님들의 빈자리를 메꿔드리도록 그렇게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전에는 자유롭게 부흥회를 많이 못했었는데 이제는 시간적으로 자유로우니 한국이나 다른 지역에 가고 선교지도 자주 방문해서 선교사님들 힘을 돋구어주고 현지인들도 섬기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