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이티의 정부가 발표한 집계에 의하면 20만명이 이번 지진으로 죽었다고 한다. 수많은 시체들은 불도저로 땅에 쓰레기 처럼 묻쳐 버렸다. 시체를 파묻을 땅도 부족한 것 같다. 식구들도 다 죽어 버린 마당에 시체는 쓰레기 일뿐이다.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연명할 길이 없기에 전적으로 전 세계에서 도와주는 구호품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 의사도 물도 부족하고 하수도도 없다. 대소변을 볼 장소도 없다.

조용히 인류의 역사를 돌아본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전쟁은 인재라고 한다. 고통을 주는 무기를 개발하여 욕심과 뜻을 관찰 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같은 나라 안에서 싸운 시민 전쟁도 참혹하기 그지 없다. 미국의 남북 전쟁으로 남북 합하여 4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그리고 한국의 6.25 동란 그 후의 월남전 최근에 와서 동유럽의 유고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인 색체를 띤 민족간의 잔인한 전쟁 그리고 아프리카의 종족간의 피 비린내 나는 전쟁들… 투투족과 후투족의 싸움의 현장을 답사한 타임지 기자는 지옥에 있는 마귀가 아프리카에 다 내려와 있다고 했다.

인재 못지 않게 자연의 재해도 무시 무시하다. 최근에 들어서만도 큰 재해만도 인도네시아를 강타한 수나미, 중국 쓰찬성에 지진 또 해이티의 지진이 있다.

시편 107편 10절에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의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려 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 전쟁의 참혹한 역사나 자연 재해의 참상 앞에서 사랑으로 물질로 기도로 도와야 한다. 그러나 “엎드려져도 도울 자가 없는” 상황 속에서 인류는 사람들의 한계를 철저히 보아야 한다. 인간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교훈이 있다. 모든 사건들에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시편은 계속 말씀하고 있다. “이에 저희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라고 했다. 근심 중에서 여호와를 만나야 한다.. 이 것이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이유이다. 건물 더미 속에서 구출받은 한 할머니는 깜깜한 죽음 직전의 상황 속에서 도울 수 없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만 찾았다고 했다. 그 할머니를 도와주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바랄 뿐이다. 해이티 백성들이 그 절망 속에서 참 소망이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하고 싶다. 죽음의 상황에서 생명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