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지나 선택유무와 상관없이 관계성을 갖고 살아간다.
관계성의 기원을 살펴볼 때 태초에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아담과의 관계 즉 수직적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아담과 하와라는 인간관계, 수평적 관계와 나아가 부부라는 관계성과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의 기본단위인 가족관계가 형성이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관계가 유지되고 성숙, 발전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위해 필수적으로 동반 되어져야 하는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교제라 하겠다. 그러므로 관계와 교제는 나누어서는 생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동반자 관계이다.
가령 관계는 있는데 교제가 없다고 한다면 한 지붕, 아니 한 이불아래 산다고 해도 남보다 못한 불편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교제는 있으나 자신의 필요를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는 불건전하거나 불순한 교제라면 역시 관계성에 상처만 줄뿐임을 알아야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 식의 자동시스템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대중가요에 “잘못된 만남”이란 노래가 있다. 좋았던 연인관계가 삼각관계에 의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제가 깨지고 사랑과 우정에 상처만 남게 되었다는 노랫말이다. 심지어는 악연(惡緣 evil destiny) 이란 관계성으로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악연이 누구의 의한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차분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결국은 만남자체보다도 잘못된 교제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하겠다.
사회적으로 야기되는 수많은 사건의 원인과 이면에는 바로 관계에 있어 잘못된 교제 또는 소위 부적절한 교제로 말미암아 충동적 또는 계획적으로 일어난 사고임이 공통된 특징이라 하겠다. 구체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사건만 하더라도 여실히 증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있는 관계성을 살펴보자.
크게 가정, 교회, 이웃과의 관계로 분류할 수 있다.
목사에게 있어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교인들과의 관계는 삶과 사역에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목회를 성공시키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중대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반면에 가족관계가 소홀해져 목회성공, 가정실패라는 공식이 돌출되기도 한다.
물론 둘 다 잘 하면 되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목회도 못하면서 가정마저도 지키지 못한다면 이건 정말 큰 일이 아니겠는가? (뜨끔)
뿐만 아니라 교회는 이웃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까지 계명을 주셨다.
특히 이민목회는 이웃과의 마찰과 시비가 발생하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전도와 선교는 결국 “이웃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지역사회를 향해 문을 활짝 열고 이웃들을 위해 크고 작은 나눔을 실천해야만 한다. “여기가 좋아오니” 라든지 “우리끼리 좋아오니” 라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고방식은 하나님나라 확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산상에서 신비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체험한 제자들이 “여기가 좋아오니...” 라고 예수님에게 요청하였으나 오히려 주님은 산 아래 즉 지옥 같은 세상현장에서 귀신들려 고통과 신음 중에 있는 이웃에게 다가가셨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으리라.
곧 그들을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는 교제라는 방편을 통해 병든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구원계획은 범죄 함으로 단절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특단의 처방을 내 놓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교제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이 길만이 유일한 교제의 근거가 되고 방편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 분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축하드리고 축복합니다.
그런데 관계는 있으나 교재가 없는 불편한 관계는 아니십니까? 하늘에서 풀리면 땅에서는 자연히 풀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수직적 관계를 먼저 회복하시면 사람(이웃)과의 수평적 관계와 더불어 알게 모르게 묶였던 관계와 문제들이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교제하시기를 기뻐하시고 또한 교제의 문을 항상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무기한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뉴욕정원교회(www.nygc.us) 주효식 목사
관계성의 기원을 살펴볼 때 태초에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아담과의 관계 즉 수직적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아담과 하와라는 인간관계, 수평적 관계와 나아가 부부라는 관계성과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의 기본단위인 가족관계가 형성이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관계가 유지되고 성숙, 발전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위해 필수적으로 동반 되어져야 하는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교제라 하겠다. 그러므로 관계와 교제는 나누어서는 생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동반자 관계이다.
가령 관계는 있는데 교제가 없다고 한다면 한 지붕, 아니 한 이불아래 산다고 해도 남보다 못한 불편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교제는 있으나 자신의 필요를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는 불건전하거나 불순한 교제라면 역시 관계성에 상처만 줄뿐임을 알아야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 식의 자동시스템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대중가요에 “잘못된 만남”이란 노래가 있다. 좋았던 연인관계가 삼각관계에 의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제가 깨지고 사랑과 우정에 상처만 남게 되었다는 노랫말이다. 심지어는 악연(惡緣 evil destiny) 이란 관계성으로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악연이 누구의 의한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차분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결국은 만남자체보다도 잘못된 교제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하겠다.
사회적으로 야기되는 수많은 사건의 원인과 이면에는 바로 관계에 있어 잘못된 교제 또는 소위 부적절한 교제로 말미암아 충동적 또는 계획적으로 일어난 사고임이 공통된 특징이라 하겠다. 구체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사건만 하더라도 여실히 증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있는 관계성을 살펴보자.
크게 가정, 교회, 이웃과의 관계로 분류할 수 있다.
목사에게 있어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교인들과의 관계는 삶과 사역에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목회를 성공시키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중대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반면에 가족관계가 소홀해져 목회성공, 가정실패라는 공식이 돌출되기도 한다.
물론 둘 다 잘 하면 되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목회도 못하면서 가정마저도 지키지 못한다면 이건 정말 큰 일이 아니겠는가? (뜨끔)
뿐만 아니라 교회는 이웃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까지 계명을 주셨다.
특히 이민목회는 이웃과의 마찰과 시비가 발생하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전도와 선교는 결국 “이웃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지역사회를 향해 문을 활짝 열고 이웃들을 위해 크고 작은 나눔을 실천해야만 한다. “여기가 좋아오니” 라든지 “우리끼리 좋아오니” 라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고방식은 하나님나라 확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산상에서 신비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체험한 제자들이 “여기가 좋아오니...” 라고 예수님에게 요청하였으나 오히려 주님은 산 아래 즉 지옥 같은 세상현장에서 귀신들려 고통과 신음 중에 있는 이웃에게 다가가셨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으리라.
곧 그들을 고치시고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는 교제라는 방편을 통해 병든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구원계획은 범죄 함으로 단절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특단의 처방을 내 놓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교제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이 길만이 유일한 교제의 근거가 되고 방편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 분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축하드리고 축복합니다.
그런데 관계는 있으나 교재가 없는 불편한 관계는 아니십니까? 하늘에서 풀리면 땅에서는 자연히 풀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수직적 관계를 먼저 회복하시면 사람(이웃)과의 수평적 관계와 더불어 알게 모르게 묶였던 관계와 문제들이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교제하시기를 기뻐하시고 또한 교제의 문을 항상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무기한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뉴욕정원교회(www.nygc.us) 주효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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