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적 발전론과 기독교 역사 왜곡

민족주의의 부활은 한국의 역사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20세기 내내 한민족의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는 근대화였다. 근대화가 이뤄져야 한국은 선진국이 되고, 그래야 세계 무대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근대화를 한국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운동으로 보는 시각이 나타났고, 급기야 근대화의 뿌리가 서양 문명이 아니라 우리나라 내에 있다는 소위 내재적 발전론이 등장했다. 내재적 발전론에 의하면 서구 문명은 내재적 발전 과정에 방해물이 된다. 이런 민족주의 사관의 뿌리는 단재 신채호이며, 그는 모든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이해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비아이며, 결국 민족 정신을 해치는 것이 된다.

이같은 민족주의적인 역사관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소위 좌파적인 역사 이해와 접목돼 미국과 개신교에 대해 강한 비판을 퍼부었다. 6·25를 경험한 북한은 미국과 개신교를 하나로 묶어 서구 제국주의의 전형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런 입장에서 개신교에 대해 왜곡 서술한다. 노무현 정부 때 검인정 교과서로 등장한 금성출판사의 이 교과서는 이런 입장을 잘 설명한다. 전교조의 지원으로 이 교과서를 채택한 곳은 전국 고교의 50% 이상이다. 금성출판사는 기독교가 민중과 대립되며 서구 제국주의와 일제 침략을 옹호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서양 종교의 이념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충돌하여 민중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특히 지나치게 복음주의를 강조하여 제국주의 열강과 일제의 침략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인가를 물어야 한다. 먼저 개신교가 민중과 대립되는 종교인가? 이 땅에 들어온 개신교는 지배층보다 여성과 보통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종교였다. 개신교에 지식인 계층이 들어온 것은 청일전쟁이 끝난 뒤의 일이다. 그러면 개신교가 제국주의 열강과 일제의 침략을 옹호했는가? 사실 19세기 말 조선은 중국, 일본, 러시아의 제국주의적인 야욕을 헤쳐나갈 방법으로 미국과 관계를 맺기 원했다. 조선이 미국을 의지한 것은 조선에 영토 욕심이 없으며, 정교분리 국가여서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개신교 선교사는 조선이 미국과 접촉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개신교는 일제침략을 옹호했는가? 사실 조선 땅에 있던 종교들 가운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다. 심지어 가장 민족적인 종교로 알려진 대종교조차 당시 정치에 간섭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개신교는 불교나 유교, 천주교와 비교해 가장 일본의 견제를 많이 받았고, 일본 당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른 종교의 친일적 태도에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개신교만을 지적하는 것은 분명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특별히 이 교과서는 복음주의적 개신교를 공격하고 있는데, 사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정교분리 원칙 아래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천주교나 정교회에 비해 조선 정부의 법을 존중했다. 그러므로 금성교과서 같은 내용이 정부의 검인정을 거쳐 출판되고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주입되는 것은 개신교를 상대적으로 폄하하는 것이며, 사실과도 다른 비역사적인 서술이 아닐 수 없다.

근·현대사, 국사 교과서의 개신교 폄하와 과소평가

더 큰 문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국정교과서인 <국사>도 개신교 역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국사는 전통종교인 불교와 유교에 대해 민족 문화의 발달 부분에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반면,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근·현대 문화에서는 갑자기 종교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한국사 전체에서 불교와 유교 못지않게 큰 영향을 미쳤고, 현재 한국을 움직이고 있는 대표적인 종교임에도 근현대사 부분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국사>에서 한국 개신교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한 곳도 없고, 한국 근대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개신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전체를 합해도 겨우 몇 줄을 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국사교과서는 여러 종교를 설명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하고, 다른 전통 종교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으로 서술해 역사적 사실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국사교과서는 근현대의 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항 이후 종교계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서양종교의 포교가 자유스러워 진점이다. 천주교는 1886년 프랑스와 수교한 이후 선교의 자유를 얻어 포교활동을 전개하였고, 개신교는 1880년대에 서양선교사의 입국을 계기로 교세를 넓혀갔다. 동학은 3대 교주인 손병희 때 친일 세력을 내 쫒고 천도교로 개편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단군신앙을 기반으로 대종교가 창시되어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유교에서는 박은식이 유교구신론을 제창하면서 근대교육과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불교에서는 한용운이 불교 유신론을 내세우면서 불교혁신과 자주성 회복을 주장하였다.

여기서 서양 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의 활동은 교세를 확장한 것이고, 천도교와 대종교는 항일 민족운동을 했으며, 유교는 근대 교육과 계몽운동을, 불교는 자주성을 회복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국사>가 얼마나 서양 종교를 인색하게 평가하는지 보여준다. 한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면 누가 근대 교육과 애국 계몽운동에 앞장섰는지는 명백하다. 그러나 단지 국사교과서만 본 사람은 기독교보다 유교가 더 한국 근대화에 이바지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최근 한국 학계에 기존의 역사교과서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사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 등장하고 있다. 소위 뉴라이트계열의 교과서 포럼이다. 이 교과서는 지나친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실증적 입장에서 한국사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불교계는 뉴라이트계열의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개신교에 편향적 선호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불교계는 뉴라이트의 역사교과서가 근대화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며, 이는 개신교를 긍정적으로 기술하도록 만든다며 여기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종교편향 논란

마지막으로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되는 것은 공무원의 종교편향 문제다.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한 개신교 기도 모임에 참석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기도를 드린 사건에서 출발한다. 그 후 불교계와 언론은 공직자인 기독교 신자들이 자신의 공직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기독교를 강요했다고 주장하고, 이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 사례로 지역 공직자가 같은 지역의 개신교목사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하는 것, 공직자가 개신교 종교 모임에 참석해 인사하는 것 등을 든다. 그리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공직자종교편향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종교인이 자기 종교단체에 가서 신앙적 표현을 한 것을 문제삼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신문을 통해서 많은 정치가들이 불교단체에 가서 우리나라가 불국토가 되기를 원한다는 덕담을 하는 것을 봐 왔다. 그리고 불교 신자라면 이 나라가 불국토가 되기를 기원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과연 잘못일까? 개신교 목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 “예배나 기도회 등 신앙공동체 내에서의 신앙적 발언까지 종교편향으로 간주한다면 공직자의 신앙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문제는 공직자에게도 한 인간으로서 신앙의 자유가 있고, 거기에는 선교의 자유도 포함되는데, 그렇다면 이것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물론 공권력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강제적으로 신앙을 강요했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공직자가 한 개인으로 자신이 믿는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전했다면 이것을 문제삼을 수 있을까? 한국의 대표적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여기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공직자종교편향금지법은 아직 제정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무회의는 공부원복무규정에 “공무원은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차별이 없이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공직자 종교차별자문회의를 만들어 종교차별 신고를 받고 판정을 내린다. 지난해 문광부는 총 8건의 종교차별신고가 접수됐고, 그중 1건을 종교차별로 판정했다고 발표했다. 종교차별 내용은 공립중학교 영어교사가 수업 전에 학생에게 순번으로 기도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교사가 혼자 묵념으로 기도한 것으로 드러났고, 학생들을 위해 상담·기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문위원회는 이를 종교차별로 판단했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