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라는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에 관하여 언급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이 주제에 관하여 뭔가 말해야 하는 시대적 필요성을 느끼기에 주어진 한계 내에서 동성애 문제를 간략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동성애에 관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의 본질적 개념과 그에서 도출할 수 있는 성 규범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性이라는 한자를 보면, 마음(心)과 몸(生)이 결합되어 있다. 인간의 성이란 인격적 요소와 생리적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인 것이다. 특히 인격이라는 요소는 동물의 생식과 인간의 성을 구별짓는 중요한 차원이다.

또한 영어에서 성을 가리키는 말에 sex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라틴어의 seco에서 나온 말로서 '나눈다, 자른다'(cut out)의 의미를 가진다. 성이란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진다는 것과 관련된 개념이다. 즉, 성이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인격적 관계'라는 요소를 그 개념 속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성이란 異性 간의 인격적 관계 내에서 표현되며 지속적으로 인격의 총체적 발전과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규범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동성애는 '성이 본질상 이성애적 결합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벗어나므로 성의 본질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에서도 시종일관 이성애적 결합을 하나님이 성에 대하여 의도한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레18:20,20:13, 롬1:26-27)

하지만 우리는 동성애라는 상태에 대한 판단과 동성애자들에 대한 판단을 구별해야 한다. 즉, 한 사람을 그의 동성애적 상태로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겸허함과 긍휼함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면, 독선과 오만에 찬 판단이 되고 그만큼 비기독교적인 판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동성애자들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성애자들은 스스로 동성애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정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발견하게 된다. 이는 스스로 통제하기에는 너무 힘든 힘의 산물이다. 이들이 지니는 이성에 대한 공포는 동성에 대한 선호 감정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이들은 인생의 초창기에 자기의 성을 두렵고 경멸스러운 존재로 취급해야만 했으며, 나아가 자기 정체감 발달이 소년기 단계 너머로 성숙하기 어려웠고, 이성에게 끌리는 자연스런 성향을 지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신체 불구자가 그의 불구로 인하여 비난받지 않듯이 동성애 성향 또한 그 자체로 인해 비난받을 수 없는 국면이 있다.

그렇지만 동성애자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져야 할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들도 삶의 청지기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도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장애물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우리는 참으로 긍휼된 마음을 가지고 이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먼저, 그들은 자신의 비정상적인 상태에 대한 불필요한 비난의 짐을 벗고 이에 용감히 직면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동성애적 상태의 저변에 깔린 자기 의심과 자기 증오를 극복하는 일을 해야만 하며, 자신의 상태로 인하여 하게 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이성애로의 치유 가능성에 자신을 개방하고 이를 추구하되, 이것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운 경우에는 독신으로 지내거나 적어도 자신의 상태 때문에 젊은이들, 특히 청소년들을 동성애로 꾀어 끌어들이는 착취나 이용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윤리적 조건을 최소한 유지해야 한다.

기독교 공동체도 동성애에 대한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교회는 동성애를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선포하되, 아울러 동성애자들이 치유 공동체 속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들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한 채 비난이나 정죄를 가하게 되면, 그들이 교회 공동체로 나아오는 길을 막게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혜롭고 사려 깊게 이율배반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다.

일단 교회는 그들이 공동체로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를 통하여 그들이 가치있는 존재임을 경험하게 해 줌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자기 가치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치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을 한 인간으로서 감싸 안으면서 도덕적인 최악의 상황들을 피할 수 있도록 돕고, 나아가 그들이 도덕적으로 최선의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책임을 짊어지는 시대적 사명에 교회가 응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글/ 문현미 상담 실장(기윤실 부설 가족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