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은 얼굴도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형에 비해 외모도 딸리고 학교 성적도 형편없었다.

어머니는 큰 아들을 볼 때마다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작은 아들에게는 늘 불만이 많았다. 자연히 좋은 음식, 좋은 물건등이 생기면 큰 아들에게 먼저 챙겨주고 작은 아들을 볼 때는 늘 핀잔을 주었다.

“네 형은 저렇게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데 너는 왜 매일 그 모양이냐? 네 형의 반이라도 따르라.“ 고 하면서 꾸중을 늘어 놓기 일수였다. 하루는 이 어머니가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려 자리에 몸져 눕게 되었다. 아침에 큰 아들이 어머니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와 도서관에 가야 하니 도시락을 달라고 하였다. 몸이 너무 아파서 도시락을 미쳐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니 큰 아들은 “감기만 걸리면 다야?“ 하고 화를 발끈 내면서 방문을 꽝 닫고 나가 버렸다.

옆 방에서 이 소리를 들은 둘째 아들이 조용히 집을 빠져 나갔다. 감기 몸살에는 콩나물국이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기억을 하고 콩나물을 사다 물을 붓고 고춧가루까지 얼큰하게 풀어 어머니 앞에 바쳐 드렸다. “어머니, 많이 아프시죠? 감기엔 콩나물국이 좋데요. 이것 드시고 어서 일어 나셔야죠.“ 둘째 아들이 끓여다 놓은 콩나물국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때 그 어머니는 ‘아! 공부잘하는 자식보다 효도하는 자식이 진짜 자식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고 그 다음부터는 둘째 아들을 더 이상 구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영재 교육이나 천재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명문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정작 참다운 인성 교육인 효자 교육에 대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부모는 많지 않음을 보게 된다.

필자는 몇 년전 교회의 학생부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명 “효자 세미나 (Hyo Ja Seminar)”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효자가 뭐냐고 물었다. 효자를 굳이 영어로 표현한다면‘filial child' 쉽게는 ’good son'이나 ‘good daughter'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아이들은 나의 효자 세미나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며 들었다. 효도라는 말을 생전 처음 들어 보는 그들 중 어떤 아이의 눈가엔 강의중에 이슬이 어리기도 하였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제 오 계명에도 나와 있듯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예외나 조건이 있을 수가 없다. 타락한 현대 사회에서는 재력이 있는 부모에게는 자녀들이 서로 효도하려고 애를 쓰나 돈이 없고 나이 든 부모는 무시하고 돌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가난한 목수였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해야 한다는 사명을 앞세워 가난한 아버지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가난한 아버지를 도와 목수일을 도우셨던 효자였다. 부모가 가난해도 효도해야 한다. 부당한 행동으로 상처를 준 부모라해도 효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 해결함을 받지 못하고 부모를 용서치 아니하고 부모가 자신에게 행했던 부당한 행동 때문에 효도를 베풀지 않아도 된다고 정당화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이지 못한 생각이다. 이삭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무 이유도 없이 부당하게 자신을 밧줄로 묶고 칼로 찌르려 했지만 반항하지 않고 또, 그 사실로 인해 후에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았다. 이삭은 끝까지 아버지께 순종하고 공경했던 효자였다. 가정 환경이 아무리 나빠도 효자가 되어야 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재혼을 했으나 몇 번이나 결혼생활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클린턴은 효자였다. 그는 한번도 그의 어머니를 실망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불행했던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는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J. F.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전국 고등학교에서 모범생 40명을 백악관에 초청했을 때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클린턴이었다. 가정 환경이 안 좋다고 효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 크리스챤이 아닌 부모에게도 효도해야 한다. 어느 목사님이 어렸을 때 주일날이 되면 아버지가 아들이 교회를 못 다니게 하기위해 밭의 일을 많이 시켰다고 한다. 주일 아침이 되어 교회에 가려고 하자 아버지가 일을 다 마치면 가라고 하였다. 일을 다했다고 대답하자 아버지가 깜짝 놀랐다. 그 많은 밭일을 언제 다 했냐고 묻자 “어젯 밤 달빛 아래에서 밤을 새워 다 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감동을 받은 아버지가 그 다음부터는 주일날 일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효자가 되어야 믿지 아니하는 부모님도 전도할 수 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있으면서도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그 부모가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겠는가?

부모에게 무조건적으로 공경하고 효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부모님 때문에 오늘의 내가 이 땅위에 존재할 수 있었고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셨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평생토록 부모님께 감사해도 부족할 따름이다.

나는 목회자 아내의 빠듯한 살림을 하면서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오고 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따르는 법이다. 효를 행함에 있어서 부모님께 물질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절대로 빠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도 물질로 표현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나는 나의 자녀들에게 이 사실을 늘 공개한다. 때로는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을 그들의 손으로 전달하게 하기도 한다. 부모님의 생신을 맞아 식당에서 잘 대접한 후에는 자녀들에게 돈을 주어 그들이 대신 지불하도록 한다. 효도의 구체적인 행함의 실천을 간접적으로 가르치기 위함이다. 효도는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들의 효도를 기꺼이 받을 줄 알아야 한다. 사양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때로는 강요해서라도 자녀의 효도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의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2-3)

김경신 사모 (뉴욕 초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