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웨스트장로교회 원로 조인택 목사가 간암으로 투병하다 29일 오전 1시 30분경 별세했다. 향년 81세. 장례는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중부노회장으로, 31일 입관, 1일 발인, 하관예배가 엄수됐다.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에 의해 순교한 조석훈 목사의 차남인 조인택 목사의 별세는 그를 사랑하는 시카고 한인교계와 특별히 그가 14년간 목회한 노스웨스트장로교회 성도들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순교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평생을 순교자의 각오로 산 조인택 목사의 삶과 죽음은 아들 조진모 목사(한국 합동신학대학원 역사신학 교수)에겐 확신과 희망으로 다가온다.

조인택 목사는 한국에서 30여년간 목회하다 1982년 시카고 겟세마네교회로 청빙받으며 이민목회를 시작해 14년간 목회했다. 이 기간동안 교회의 성장은 물론 성전 건축까지 이뤄내며 겟세마네교회를 시카고의 주목받는 교회로 키워냈다. 겟세마네교회는 조 목사의 은퇴 후, 노스웨스트장로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아들 조진모 목사가 회고하는 아버지는 존경스러운 목회자다. 성도들에게 능력 넘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목요일이면 설교 준비를 마치고 온종일 뜨겁게 기도하던 모습, 40일 금식기도를 평생에 3번 하며 목회의 난관을 하나님께 의지해 극복해 가던 모습, 늘 참고 기도하며 성도들을 통합으로 이끌어 가던 모습, 자신의 말이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이 일하시도록 기다리던 모습을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 길이 이제 자신이 가야 할 길이란 확신을 갖게 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아버지였기에 당연히 가정사를 섬세하게 돌볼 여유는 많지 않았다. 아버지를 하나님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조진모 목사는 늘 아버지에게 불만과 반감이 있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조진모 목사를 목회자로 하나님께 바쳤지만 모태신앙으로 스스로 신앙을 선택하지 않았던 조진모 목사는 고개만 흔들었다. 그러다 대학생 때 IVF에서 디모데후서를 공부하던 조진모 목사는 바울의 모습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고 그가 목회자가 된 후부터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에게 최고의 친구가 됐다.

뉴저지 열린문장로교회에서 담임을 했던 9년동안 조진모 목사는 아버지에게 늘 묻고 기도를 부탁하며 목회해 왔다. 수십년을 목회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장 좋은 멘토요 스승이었다.

병원에서 “이젠 준비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은 후 조인택 목사는 있는 힘을 다해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을 불렀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할 가족들을 오히려 위로하고 유언하며 축복기도를 했다. 얼굴 찡그림 한번 없이 천국 소망을 바라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사후를 준비하는 모습은 “불신자가 봐도 천국을 믿을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진모 목사는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 가슴이 아픈 일이었지만 믿는 자의 죽음이 왜 복된지 진정으로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는 아버지 목회자를 두 눈으로 본 아들. 그 아들이 목회자가 되어 평생을 순교의 각오로 목회하기까지는 순교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늘 그의 가슴에 살아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렇게 목회했던 그 아들도 이 세상을 떠나며 또 자신의 아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핏빛 사명을 유산으로 남겨 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