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한 흑 간의 갈등 문제와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
1980년대 뉴욕 시를 비롯한 미국 대도시에서 한인 상점에 대한 흑인들의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뉴욕 할렘에서 한인 상인에 대한 흑인 소비자들의 보이코트는 1982년 7월 최초로 일어났다. 이후부터 한인 상점에 대한 불매운동은 점차 가열되어 확상됐다. 이러한 불매운동이 미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다른 도시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뉴욕의 불매 운동과 마찬가지로 애틀랜타의 일부 흑인들도 애틀랜타 한인 상점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불매운동을 큰 피해 없이 슬기롭게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한인 사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던 인사들의 부단한 노력 때문이었다.
애틀랜타에서는 한인 인사들의 노력으로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사이에 갈등이 치유되거나 봉합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미국의 다른 대도시에서는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사이의 골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깊어만 갔을 지도 모른다.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 그러한 갈등이 증폭되어 폭발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서는 애틀랜타 한인 사회에서 있었던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H&E 슈퍼마켓에서 일어난 흑인 강도 사건과 흑인 절도자와의 총격 사건
1986년 1월 27일 오전 10시 30분 서양 식품점을 경영하는 강제복 씨(미국명 강제임스)의 H&E 슈퍼마켓에 흑인 권총 강도가 침입하였다. 이날 흑인 강도가 가게에 침입하여 강씨 부부와 어린아이 2명, 손님 1명을 식품점 창고에다 감금시켜 놓고 현금을 챙겨 도망가려던 순간, 강제복 씨가 창고 안에서 벽을 부수고 가게 밖으로 나와 벽을 싸고 돌면서 범인을 추적하였다. 이 때 범인이 차 뒤에 몸을 숨기고 총을 겨누자 강씨도 차쪽으로 달려가 서로 총격전을 벌였다. 강제복씨는 2발의 총을 쏘았고 범인은 5발의 총을 쏘았으나 피차간에 피해는 없었다. 강씨의 총은 3발째부터 격발이 안 되어 겨누고 쏘는 흉내만 내고 있었는 데 사건 발생 15분 만에 경찰이 출동하여 범인을 덮쳐 체포하였다. 강씨는 미국 생활 10년에 처음으로 강도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1986년 2월 23일 낮 12시30분에 강제복씨가 경영하는 H&E슈퍼마켓에서 흑인 절도자와의 시비 끝에 칼부림과 총격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 미국 TV와 애틀랜타 저널 등의 언론들은 한결같이 ‘Korean Grocery Store'라고 머리글자로 보도하는 등 인종간의 갈등이 있는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이었다. 사건 발생 다음날 1986년 2월 24일 오후 3시 한인 식품협회 손칠영 회장은 박진호 한인회장과 최진 변호사와 함께 애틀랜타 경찰서장을 방문하여 사건 신고 이후 35분 만에 출동한 경찰으이 처사에 항의하였다. 그리고 1986년 2월 26일 회원들에게 서한을 발송하여 이 사건과 관련한 주의 사항을 전달하였다.
회원들에게 발송한 서한을 통하여 식품협회 손칠영 회장은 H&E슈퍼마켓에서 일어난 흑인 절도자와의 칼부림 및 총격 사건 양상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조용히 끝나길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흑인들이 사건의 진상을 물어오면 일체함구하고 각 식품업체는 흑인 커뮤니티와 손님들에게 더욱 친절을 베풀어 이 사건이 비약되지 않게 하자고 당부하였다.
1980년대 뉴욕 시를 비롯한 미국 대도시에서 한인 상점에 대한 흑인들의 불매 운동이 일어났다. 뉴욕 할렘에서 한인 상인에 대한 흑인 소비자들의 보이코트는 1982년 7월 최초로 일어났다. 이후부터 한인 상점에 대한 불매운동은 점차 가열되어 확상됐다. 이러한 불매운동이 미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다른 도시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뉴욕의 불매 운동과 마찬가지로 애틀랜타의 일부 흑인들도 애틀랜타 한인 상점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불매운동을 큰 피해 없이 슬기롭게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한인 사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던 인사들의 부단한 노력 때문이었다.
애틀랜타에서는 한인 인사들의 노력으로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사이에 갈등이 치유되거나 봉합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미국의 다른 대도시에서는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사이의 골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깊어만 갔을 지도 모른다.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 그러한 갈등이 증폭되어 폭발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서는 애틀랜타 한인 사회에서 있었던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H&E 슈퍼마켓에서 일어난 흑인 강도 사건과 흑인 절도자와의 총격 사건
1986년 1월 27일 오전 10시 30분 서양 식품점을 경영하는 강제복 씨(미국명 강제임스)의 H&E 슈퍼마켓에 흑인 권총 강도가 침입하였다. 이날 흑인 강도가 가게에 침입하여 강씨 부부와 어린아이 2명, 손님 1명을 식품점 창고에다 감금시켜 놓고 현금을 챙겨 도망가려던 순간, 강제복 씨가 창고 안에서 벽을 부수고 가게 밖으로 나와 벽을 싸고 돌면서 범인을 추적하였다. 이 때 범인이 차 뒤에 몸을 숨기고 총을 겨누자 강씨도 차쪽으로 달려가 서로 총격전을 벌였다. 강제복씨는 2발의 총을 쏘았고 범인은 5발의 총을 쏘았으나 피차간에 피해는 없었다. 강씨의 총은 3발째부터 격발이 안 되어 겨누고 쏘는 흉내만 내고 있었는 데 사건 발생 15분 만에 경찰이 출동하여 범인을 덮쳐 체포하였다. 강씨는 미국 생활 10년에 처음으로 강도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1986년 2월 23일 낮 12시30분에 강제복씨가 경영하는 H&E슈퍼마켓에서 흑인 절도자와의 시비 끝에 칼부림과 총격 사건이 다시 일어났다. 미국 TV와 애틀랜타 저널 등의 언론들은 한결같이 ‘Korean Grocery Store'라고 머리글자로 보도하는 등 인종간의 갈등이 있는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이었다. 사건 발생 다음날 1986년 2월 24일 오후 3시 한인 식품협회 손칠영 회장은 박진호 한인회장과 최진 변호사와 함께 애틀랜타 경찰서장을 방문하여 사건 신고 이후 35분 만에 출동한 경찰으이 처사에 항의하였다. 그리고 1986년 2월 26일 회원들에게 서한을 발송하여 이 사건과 관련한 주의 사항을 전달하였다.
회원들에게 발송한 서한을 통하여 식품협회 손칠영 회장은 H&E슈퍼마켓에서 일어난 흑인 절도자와의 칼부림 및 총격 사건 양상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조용히 끝나길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흑인들이 사건의 진상을 물어오면 일체함구하고 각 식품업체는 흑인 커뮤니티와 손님들에게 더욱 친절을 베풀어 이 사건이 비약되지 않게 하자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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