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도어 선교대회 주강사로 초청받아 방한한 스위스 출신의 마크 버거(Marc Berger, 64) 선교사가 최근 한국오픈도어선교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을 당하는 일보다도 번영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핍박 받는 성도들은 우리의 격려를 필요로 하며, 우리는 핍박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그들의 신앙적 모범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핍박 받는 성도들을 이상화하거나 어느 한 쪽의 핍박만 보아서는 안 된다”며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전 세계 박해 받는 교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선교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한국인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며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이면에 교만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주의하고 현지 문화 수용과 타 사역단체와의 연합에 좀 더 힘써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마크 버거 선교사는 이날 “자유 세계 성도들과 핍박 받는 성도들은 서로를 부유하게 해왔다”며 한국교회가 전 세계 박해 받는 교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요청했다. ⓒ이지희 기자

무역선 선장에서 부름받은 후 28년간 박해지역 사역

-무역선 선장이었는데 어떻게 오픈도어 사역을 시작하게 됐나.

“나는 10살 때 선원이 되기로 작정했었다. 바다가 없는 스위스에서 선원이 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16살 때는 집을 떠나 독일에서 항해술을 배워 10여 년 간 선원으로 일했고 이후 선장으로 29살 때까지 일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1979년 6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헌신된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후 오픈도어 사역에 풀타임 사역자로 부름 받았다고 느끼고 1982년 내 집에서 스위스 오픈도어를 출범시켰다.

나는 오픈도어 사역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오픈도어 기도카드로 기도해 왔었다. 또 14년 간 감옥에 수감됐던 루마니아의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의 책을 읽으며 오픈도어 사역에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나는 28년 간 박해 받는 국가에서 사역하고 자유 세계에 오픈도어 사역을 소개해 왔다. 오픈도어 소식지의 로고도 내가 만들었다. 내겐 지금도 처음 사역을 시작했을 때의 열정이 있다. 공식적인 은퇴(만 65세)가 3개월 남았는데 오픈도어 사역은 계속할 것이다.”

-박해 받는 교회를 위한 사역을 하면서 얻은 신앙적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박해 받는 교회에 대해 큰 통찰력을 가지고 계신다. 자유 세계의 성도들은 핍박 받는 성도들을 굉장히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자유 세계든 박해 지역이든 더 헌신된 사람이 있고 덜 헌신된 사람이 있다. 만일 당신이 박해 지역에서 더 헌신된 사람이라면 그 대가로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나는 핍박 받는 성도들의 담대함에 대해 말하고 싶고 자유 세계 성도들과 핍박 받는 성도들이 서로를 부유하게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역사는 헌신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나는 어느 지역이든 이런 헌신된 사람들에게서 큰 격려를 받는다. 그리고 그들처럼 진짜 섬기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내 경험으로는 ‘네, 제가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헌신하지 않았다. 진짜 헌신하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그냥 헌신해 왔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좀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생 동안 수많은 사람을 역할모델로 삼았지만 이 나이가 되니 정말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모범이며 예수님께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도, 파키스탄, 에리트레아 등이 박해 가장 심한 곳

-최근 박해가 심각한 국가는 어디인가. 이 곳을 위해 한국교회 성도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가장 박해가 심각한 곳 중 한 곳이 인도다. 또 이슬람 국가 중 종교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곳이 파키스탄이다. 에리트레아에서도 기독교인들이 혹독한 대우를 받고 있고 라오스도 상황이 어렵다. 우리가 이들 국가들을 위해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오픈도어 소식지를 읽으면 세상 신문이 주지 않는 정보와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식지에서 얻은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길 바란다. 만약 한국에서 이슬람을 위한 배려가 커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왜 모스크가 많은 국가에서는 교회 문을 닫게 하고 이집트에서는 모스크가 지어진다는 조건이 없는 한 교회를 세울 수 없는지 물어야 한다. 덧붙여 한국에서도 모스크를 지으려면 항상 교회와 같이 지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야 공평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슬람권에서 사역 경험이 풍부한데 국내외에서 이슬람 선교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슬람 선교는 기본적으로 무슬림이라는 과녁에 예수님이라는 화살을 꽂는 것이 아니다. 복음적 방식은 사랑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무슬림을 타겟이 아닌 친구로 여겨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친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면서 1분만에 ‘당신이 무슬림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우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실제 많은 무슬림이 기독교에 열려 있다. 몇몇 무슬림은 신학교에 와서 치유 받고 사랑 받길 기대한다. 어떤 무슬림들은 신약을 반박하려고 성경을 읽다가 진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알제리의 기독교인들은 특별한 전략을 갖고 있지 않지만 ‘우정’이라는 전략으로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 모든 선교 전략 뒤에 사랑이 없다면 실패하고 말 것이다. 나는 한국교회 내 무슬림 사역에 강력한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이슬람 선교, 무슬림을 타겟이 아닌 친구로 여겨야

-한국 내에서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 이슬람 공포증)는 실제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전략적으로 만들어 낸 단어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 이슬람 지역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나 온건주의자들은 ‘우리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위스에서는 이슬람 국가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를 보도하는 것조차 이슬람에 대한 비판이며 ‘이슬라모포비아’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좋은 기독교인이 있는 것처럼 좋은 무슬림도 있다. 우리가 이슬람을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 하기 전에 먼저 전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아야 할 것이다. 9.11 테러 당시 방송을 보며 한 가지 놀란 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기뻐 춤추고 있었지만 이란 테헤란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미국인들을 애도하고 있었다. 모든 종류의 선전 선동에는 거리를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적그리스도적인 종교다. 꾸란을 보면 많은 구절들이 잘못된 진리를 옳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역사상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사이에는 항상 긴장이 흐르고 있었고 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이슬람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유가 없다. 이슬람의 핵심 메시지는 ‘순종’이며 특별히 이슬람 이외의 다른 종교를 믿을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 200년 전 유럽의 제국주의적 선교와는 달라야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며 세계 복음화를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해왔지만 일부에서의 과도한 경쟁적, 공격적 선교 활동이 지적을 받아 왔다. 한국교회 선교에 조언을 부탁한다.

“선교를 하려면 우선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수용해야 한다. 200년 전 유럽교회가 많은 선교사들을 내보낼 때 유럽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적 선교를 하고 유럽식 프로그램을 수출했다. 하지만 한국은 달라야 한다.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문화를 채택했던 것처럼 한국인 선교사가 현지 문화를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또 선교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들끼리 연합하여 사역하도록 애써야 한다. 나는 45개국을 다니며 종종 한국인 선교사를 만나는데 한국인들이 박해 지역에 가 있는 것이 굉장히 기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연합이 필요하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핍박 받는 지역에서는 항상 연합해서 사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일치성을 이뤄 연합해야 한다. 알제리에서 사역할 때 15년 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사역단체들이 좋지 않게 분리된 적이 있다. 이유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시기와 질투, 판단, 재정 후원 문제가 연합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보았다.”

-연합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또 연합 사역의 좋은 사례를 들어 달라.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나 타 단체에 대해 판단하게 된다. 모든 판단은 그 사람 개인의 성경 해석에 근거해 일어나므로 어떻게 보면 결함이 있는 것이다. 또 역경 속에서 대항하고 타협하지 않으면서 고집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오픈도어는 연합사역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우리는 북부 수단에서 현지의 15개 교단 소속 목사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알제리의 한 작은 도시에서도 복음주의 개신교회와 천주교 교인들을 함께 초청한 적이 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역해 온 것을 발견하고 친구가 된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함께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 발견해나갈 수 있다.”

버거 선교사는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기독교 진리의 유일성을 증거하는 선교 활동이 비판 받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기도 했다. “스위스에서는 역사 교육자들에 의해 선교사들이 많은 비판을 당한다”며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원칙적으로 모든 종교는 좋은 것이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아마존, 아프리카에 가서 굳이 원하지 않는 종교를 믿도록 해야 하느냐고 비판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우리는 승리 지상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 예수 섬기고 선교 헌신돼 있는 모습에 감동

-한국교회에 대한 첫 인상은?

“몇몇 한국교회를 방문하면서 교회가 선교에 굉장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고 헌신되어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인기 없는 주제인 박해 받는 교회에 대해 강의하는 강사지만 한국에서 방문한 모든 곳에서 중보기도를 열심히 하고 선교에 소명감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또 한국교회가 예수를 잘 섬기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한편 그는 기자회견 말미에 한국교회가 전 세계 박해 받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 받는 국가의 성도들은 항상 핍박을 받기 때문에 핍박 상황에 ‘중독’될 수 있다”며 2차 대전 당시 11년 간 노동수용소에 갇혔던 니멀로 목사의 예를 들었다. “니멀로 목사는 후에 독일교회에 범브란트 목사의 메시지를 듣지 말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나치의 위협만 보고 공산주의의 위협에는 장님이었기 때문이다”며 “우리는 눈을 열고 하나님이 보는 시각으로 전 세계 박해 받는 교회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 버거 선교사는

스위스 출신으로 28년 간 동유럽,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1백여 개 국가를 방문하여 박해 받는 교회를 위해 성경을 전달하고 세미나를 인도해 왔다. 1982년 스위스 오픈도어(개발지부)를 설립하여 대표를 역임한 데 이어 1992년 알제리(북아프리카) 오픈도어(사역지부), 1994년 독일 오픈도어(개발지부), 2003년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오픈도어(사역지부)를 각각 설립해 대표로 활동했다.

1960년부터 1982년까지 해상 무역에 종사하며 무역선의 선장으로도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비롯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세계 여러 지역을 다니며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현재는 오픈도어 국제 리더십 특별고문, 알제리,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오픈도어 대표, 인도 오픈도어(개발지부) 고문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