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방언에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매우 철학적인 「암시렁 안허요!」란 말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인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암시렁 안허요!」를 연발함이 아니라 다분히 체념적이고 냉소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허벌나게 문제될 일이 많아도 암시렁 안하제! 라는 강제어법에 이르러서는 억지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동의하여야 하고 게다 암시렁 안하제 잉! 하면서 “잉”자를 덧붙이면 울고 겨자 먹기로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 버린다. 참으로 순한 백성들이 아닐 수 없다.

총회에 다녀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비싼 비행삯을 내고 가서 내가 한 일은 암시렁 안하제 잉! 하면 암시렁 안허요!를 연방 외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 같아 씁쓸하기가 그지없다. 나 뿐아니라 회원 총대 대부분이 얌전하게 앉아서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 일사천리로 그 수많은 안건들을 해결하였으니 참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고라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싹텄을때에도 이런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의제가운데는 정말로 고민하고 날 밤을 세워 토론하고 토의하여도 모자랄 의안들이 많이 있었지만 시간에 쫓겨 졸속처리된 일들이 없지 않다.

시간은 法理와 情理사이에서 저울질하면서 그 추가 정 가운데 멈추기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한 편은 부득이 암시렁 안은 일이 되어버린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은혜와 진리 사이의 투쟁과 고민이다. 정치란 것이 요상해서 세속이건 영계이건 간에 편가르기가 있고 패거리가 등장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각 편은 편들기가 속성이어서 소위 좌장이 헛기침이라도 하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아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안은 일이 되고 아무렇지도 안은 일이 아무런 일이 되어 버린다. 왜? 암시렁 안하제 잉!하고 몰아붙일때 암시렁 허요! 라고 일갈 할 수 없을까? 다 속셈을 하기 때문이다. 진정 욕심이 없는 자는 기면 기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어떻게 백이 흑이 되고 흑이 백이 될 수 있을까 보냐! 혹간은 속셈 없는 용감한 회원이 있어 제대로 된 발언을 하지만 돌출행동 쯤으로 야지를 놓으면 그야말로 암시렁 안은 일로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정치인은 일반 백성이나 교인들이거나 간에 저들의 애환을 귀담아 듣지 않고 제 편의 속셈대로 암시렁 안허제 잉 하면서 욱박지르면 안 될 것이다. 4.19가 5.10이 광주민주화가 공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암시렁 안하제 잉을 너무 전가보도처럼 휘두른 위정자들에게 민초들이 제 정신이 번쩍 들어 암시렁 허요! 일제히 들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한 반도에 급작스럽게 암시렁 한 먹구름들이 몰려오고 있다. 태평성대를 구가 할 때가 아니다. 조금 혼란이 있고 조금 불안하여도 지금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암시렁 합니다. 하고 협조와 이해와 용서를 구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