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저는 주미 한국대사관 직원들의 월례 예배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한국의 외교 안보 등을 위하여 일하는 공직자들과 스태프들로 이루어진 이들의 모임을 보며 저는 다시금 일터 사역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최근에 일터 사역자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피터 와그너, 마일즈 몬로 등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를 보다 확장하기 위하여 교회체제에 대한 중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즉 이 땅의 교회는 두 가지 방법으로 운영되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역교회 외에, 일터 교회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제 24살을 맞이하는 저의 딸, Grace 의 진로를 놓고, 지난 특별 새벽 기도회기간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간구하였습니다. Grace 는 목사의 딸로 자라났고,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아이지만, 오히려 교회보다는 학교나 직장에서 더 잘 적응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이 아이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있다가 이번에 본격적인 기도를 모녀가 함께 드리게 된 것입니다. 기도 가운데 주어지는 상황의 움직임이나, 평강속에 들리는 성령님의 음성은 Grace 가 일터 사역자로 부르심 받았다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진정 이 아이를 교회 사역자가 아닌 일터 사역자로 부르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달라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를 한 날, 저는 우리 교회 큐티 가이드 순서를 따라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의 삶을 묵상하였는데, 특히 2-5 절 사이에서, 요셉이 전형적인 일터 사역자로 부르심 받았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요셉이 노예로 팔렸는데, 보디발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고 또 하나님이 요셉의 범사를 형통케 하심도 보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에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에게 위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발의 집과 밭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이 대목을 묵상하는데 조용한 깨달음이 왔습니다. "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축복하고 변화시키시는 방법이구나.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복의 근원이 되라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방법이구나!" 애굽은 세상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요셉은 하나님을 자신의 구별된 삶으로 보여주었고, 나아가 그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후에는 애굽 온 나라가 요셉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됩니다. 요셉은 전형적인 일터 사역자로 부르심 받았던 것입니다. 요셉의 삶을 묵상했던 그 날은 Grace의 생일이었습니다. 비로소 제게 이 아이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이 아이를 일터 사역자로서 사용하실 계획인 것 같습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일터 사역자는 요셉이나 다니엘입니다. 저들은 둘 다 정치가로서 부르심 받았지만 일터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을 증거하였던 하나님의 종들이었지요.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크게 경외하며 타협 없이 하나님 제일의 우선순위를 지켰고 삶에서 정직하고 순전했으며 범사에 탁월했다는 점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통한 집요한 유혹을 거절한 사건이나 다니엘 당시 바벨론의 방백이나 관리들이 다니엘을 고소하고자 모든 사생활을 조사했지만 그에게서 일체의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흠없는 삶을 살았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일터를 예수의 이름으로 장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탁월하고 정직하고 흠이 없어야겠습니다. 지난 주, 대사관 직원들에게 저는 이 같은 탁월하고 정직한 일터 사역자들이 되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부디 곳곳에서 다니엘이나 요셉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터사역자들이 배출되어 원수에게 점령당한 이 세상을 하나님께 속히 돌려드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